지금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흑인 인권 운동을 하던 1960년대는 아니지만, 지금도 미국 전역의 곳곳에서 벌어지는 인종 차별 사건은 TV에 심심찮게 나온다. 피부색에 따라 인간의 우위를 가르는 그 뿌리 깊은 인식은 예전처럼 대놓고 표현하지 못할 뿐이지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내재되어 있는 모양이다.
여러 인종이 모여 살아가는 뉴욕은 다양성이 공존하는 도시로, 미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인종 차별이 심하지 않은 곳이라 들었지만, 뉴욕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딜 가나 자신의 인종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고, 재수 없으면 그런 사람과 마주칠 수도 있다. 뉴욕을 여행하며 노골적인 차별이랄 것까진 겪지 않았지만, 몇몇 사람들의 냉소적인 표정을 맞닥뜨렸던 것도 같다.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러거나 말거나 넘어갈 수 있지만 썩 기분 좋은 경험은 아니다.
자신들이 흑인 또는 아시안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도, 우리 역시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나 돌아보게 된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지만 사람의 피부색이나 경제 능력 등으로 다른 나라나 사람들을 평가하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느낄 때가 있다. 뉴욕에서도 흑인들이 많이 산다는 할렘 같은 경우,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론 우범 지역이 있어 주의를 요한다는 가이드 내용을 본 적은 있지만, 굳이 혼자 찾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브롱스의 시티 아일랜드라는 곳에 가기 위해 할렘을 지나가게 되었다. 우습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긴장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들었다. 왠지 거리의 분위기도 다른 뉴욕의 거리와는 다르게 위험하게 느껴졌다.
트레인 안을 살펴보니 대부분이 흑인들. 그들 사이에 끼여 있는 우리가 왠지 더 눈에 띄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왠지 그들의 아지트를 침범한 기분에 목소리까지도 낮춰 이야기하며 목적지에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때 어디선가 약이라도 한 듯 눈이 반쯤은 풀려 보이는 백인 노숙자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구걸을 했다. 우리한테 오면 어쩌나 하는 맘에 조마조마하고 있는데, 어느 흑인 아저씨가 노숙자에게 말을 건네며 백팩을 열었다.
돈을 주려나 하며 지켜보았더니 그가 가방에서 꺼낸 것은 돈이 아니라 지퍼 백에 담긴 빵이었다.
“빵이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건강에 좋은 빵이고, 하나는 건강엔 그저 그걸 거 같지만 맛있는 빵이야. 네가 원하는 빵을 줄게.”
비썩 마른 노숙자는 씩 웃으며 맛있다고 한 빵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흑인 아저씨와 노숙자는 빵 하나를 주고받으며 쿨하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미국의 많은 직장인들이 점심으로 샌드위치 같은 간단한 음식을 싸 가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마도 그 빵은 흑인 아저씨의 점심 도시락이었을 듯싶다.
그저 빵 한 덩이였을 뿐이지만, 정신없어 보이는 노숙자도 한 사람의 인격체로 대하는 그 모습을 보고 나니, 주위의 사람들이나 그 동네가 더 이상 험상궂게 보이지만은 않았다. 빙긋 웃는 그 흑인 아저씨가 마치 덴젤 워싱턴처럼 멋져 보였다고 하면 지나친 비약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