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내게 주어진 이 달콤한 자유 시간을 온전히 보내면 되는데 자꾸 지금 보내는 일상의 시간을 회사에서의 시간과 비교하게 된다. 가령 이런 거다.
#오전 7시
회사 가려면 일어날 시간이네. 아, 난 갈 회사가 없지. 아침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그냥 누워 있어야지. 좋다!
#오전 9시
지금쯤이면 노트북 켜놓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을 시간이구만. 그럼 난 이제 슬슬 씻고 느긋하게 커피나 마셔 볼까.
지금의 여유가 좋으면 그냥 누리면 될 일이지, 왜 자꾸 회사에서 보냈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비교하는 걸까? 그러다가도 똑딱똑딱 시간이 지나갈수록 마음 한편으로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오후 12시 30분
오전 내 한 게 하나도 없는데, 벌써 점심 먹으러 갈 시간이라니. 회사에서라면 몇 가지 업무는 끝냈을 시간인데….
#오후 4시
아,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은 참도 잘 간다. 이제 2시간만 지나면 퇴근 시간이겠구나.
이렇게 뭔가를 하지 않고 그냥저냥 시간을 보내면 그 시간이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아까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시간을 쪼개 가며 일하고 공부하고 집안일까지 하는 슈퍼우먼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쉼 없이 직장 생활을 하며 늘 바쁘게 살아서였을까. 주말이나 휴가 등의 쉬는 시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보다는 여행을 간다든지, 영화나 공연, 전시회 관람 같은 문화생활을 하며 무언가를 해야 그 시간을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린 어린 시절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는 강박을 키워 왔는지도 모르겠다. 여름 방학, 겨울 방학이 되면 으레 하루의 생활 계획을 표로 그려 벽에 붙여 놓고 생활했으니까. 물론 난 그 계획표대로 성실하게 실천하는 ‘바른 생활’ 어린이는 못 되었지만. 그래도 계획표대로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정해진 시간에 공부하지도 않고 실컷 놀아 버리고 난 후에는 알게 모르게 어떤 자책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며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아니 그런 시간이 필요하단 걸 배울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충만한 기분이 들고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는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음을. 그 시간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무너진 자신만의 리듬을 되찾을 수 있다는 걸, 그리고 그것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어쨌거나 ‘시간을 금(?)’처럼 여겼던 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종일 하는 일 없이 멍때리다 하루를 보내도 '그럼 어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쿨하게(?) 생각한다.
비싸도 빨리 갈 수 있는 교통편을 선호하고, 걷기보단 차를 타는 편이 시간을 아낀다 생각했던 내가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웬만하면 차를 타지 않는다. 시간 많이 걸린다고 부담스러워했던 먼 거리 약속도 척척 잡는다.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와 만날 장소를 정하며 집에서 먼 곳인데 흔쾌히 간다고 했더니 친구가 웬일이냐고 물었다. 그동안 친구들이 먼 장소에서 만나자고 하면 내가 밥 살 테니 가까운 데로 오라고 부추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 이제 시간 부자야. 내가 갈게, 네가 밥 사줘.”
여유로워진 시간만큼 한동안은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친구, 이웃에게도 그 시간을 나누며 사는 부자로 살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