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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당근 Oct 24. 2021

회사의 시간, 그리고 일상의 시간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내게 주어진 이 달콤한 자유 시간을 온전히 보내면 되는데 자꾸 지금 보내는 일상의 시간을 회사에서의 시간과 비교하게 된다. 가령 이런 거다.


#오전 7시

회사 가려면 일어날 시간이네. 아, 난 갈 회사가 없지. 아침 먹으라고 부를 때까지 그냥 누워 있어야지. 좋다!


#오전 9시

지금쯤이면 노트북 켜놓고 커피 한 잔 마시고 있을 시간이구만. 그럼 난 이제 슬슬 씻고 느긋하게 커피나 마셔 볼까.


지금의 여유가 좋으면 그냥 누리면 될 일이지, 왜 자꾸 회사에서 보냈던 시간과 지금의 시간을 비교하는 걸까? 그러다가도 똑딱똑딱 시간이 지나갈수록 마음 한편으로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거다.


#오후 12시 30분

오전 내 한 게 하나도 없는데, 벌써 점심 먹으러 갈 시간이라니. 회사에서라면 몇 가지 업무는 끝냈을 시간인데….


#오후 4시

아, 아무것도 안 해도 시간은 참도 잘 간다. 이제 2시간만 지나면 퇴근 시간이겠구나.


이렇게 뭔가를 하지 않고 그냥저냥 시간을 보내면 그 시간이 생산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아까워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시간을 쪼개 가며 일하고 공부하고 집안일까지 하는 슈퍼우먼은 아니었지만, 오랜 시간 쉼 없이 직장 생활을 하며 늘 바쁘게 살아서였을까. 주말이나 휴가 등의 쉬는 시간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는 것보다는 여행을 간다든지, 영화나 공연, 전시회 관람 같은 문화생활을 하며 무언가를 해야 그 시간을 ‘잘’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우린 어린 시절부터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을 보내면 안 된다는 강박을 키워 왔는지도 모르겠다. 여름 방학, 겨울 방학이 되면 으레 하루의 생활 계획을 표로 그려 벽에 붙여 놓고 생활했으니까. 물론 난 그 계획표대로 성실하게 실천하는 ‘바른 생활’ 어린이는 못 되었지만. 그래도 계획표대로 일찍 일어나지 못하고, 정해진 시간에 공부하지도 않고 실컷 놀아 버리고 난 후에는 알게 모르게 어떤 자책감을 느끼진 않았을까.

시간을 귀중하게 여기며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지만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아니 그런 시간이 필요하단  배울  있는 기회는 거의 없었던  같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충만한 기분이 들고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보냈다는 만족감을 느낄  있음을 시간을 통해 지친 몸과 마음이 회복되고 무너진 자신만의 리듬을 되찾을  있다는 그리고 그것이 다음으로 나아갈  있는 에너지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어쨌거나 ‘시간을 금(?)’처럼 여겼던 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종일 하는 일 없이 멍때리다 하루를 보내도 '그럼 어때,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쿨하게(?) 생각한다.

비싸도 빨리 갈 수 있는 교통편을 선호하고, 걷기보단 차를 타는 편이 시간을 아낀다 생각했던 내가 걸을 수 있는 거리는 웬만하면 차를 타지 않는다. 시간 많이 걸린다고 부담스러워했던 먼 거리 약속도 척척 잡는다.   

퇴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와 만날 장소를 정하며 집에서 먼 곳인데 흔쾌히 간다고 했더니 친구가 웬일이냐고 물었다. 그동안 친구들이 먼 장소에서 만나자고 하면 내가 밥 살 테니 가까운 데로 오라고 부추길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 이제 시간 부자야. 내가 갈게, 네가 밥 사줘.”


여유로워진 시간만큼 한동안은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친구, 이웃에게도 그 시간을 나누며 사는 부자로 살아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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