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늦어서 대학부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대학부를 참석할 나이는 꽤 지났지만 오랜만에 대학부 예배를 참석하니 확실히 몇 년 어린 분들의 열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어린 학생들의 열성적인 모습을 보면서 내 대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대학 시절 나는 예배를 꾸준히 참석하긴 했으나 교회 내에서 직책을 맡으며 다니지는 못했다. 대학 시절의 내 일과는 월요일부터 주일(일요일)까지 알바로 가득 차 있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낮에는 대학교 도서관에서 교내 근로 학생으로 일했고, 주말과 평일 저녁에는 홍대에서 마포구청역까지 3~4시간씩 진행하는 과외로 가득 차 있었다. 시간당 과외비를 생각하면 버스를 타는 것은 경제적이지 못한 행동이었다. 그땐 그 거리를 그렇게 걸어 다녔다.
그러다 보니 일요일에 교회를 가는 시간은 내가 알바를 다하고, 대학교 공부 일부를 끝낸 후에 가던 잠깐의 휴식이었던 셈이었다. 또래 친구들은 교회 내에서 여러 역할을 배분받고 활동했다. 누군가는 한 모임의 리더로서 봉사했고, 다른 사람들은 성가대에서 찬양을 하곤 했다.
나 역시도 나름 꾸준히 참석한 성실한 학생이었기에 종종 리더로서 함께하는 게 어떻게냐고 권유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내게 그런 활동은 버겁게 느껴졌다.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도 귀한 일종의 사치로 느껴졌다.
"저런 건 여유 있는 친구들이나 하는 거야. 나는 아르바이트해서 대학교 졸업을 우선 하는 걸 목표로 삼자!"
언젠가부터 대학에서 무언가를 이루기보다는,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는 것 자체가 내겐 그 무언가가 되었다. 하나님은 만인에게 평등하게 사랑을 베풀어주셨지만 우리 사회는 주머니 사정이 얇은 청년에게 같은 대학, 같은 교회, 같은 공간에서도 사람들 간의 구별됨이 어떤 의미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해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도 열심히 교회에서 활동하던 친구들도 아마 다들 저마다 아픔이 있고, 알바를 하면서도 시간을 내어서 교회 봉사활동을 했었을 터였다. 그럼에도 어쨌든 당시에 내 눈에는 교회 활동을 하는 것은 참 사치스러운 부르주아들의 취미 활동으로 느껴졌다. 하나님은 과연 교회 봉사보다 한 푼 더 벌겠다고 알바를 했던 나를 구원해 주시려나.
그렇게 대학 시절 나는 교회 공동체에서 활동할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함께 웃으며 공동체 생활을 하던 친구들의 모습이 참 부럽게 느껴졌다. 주머니는 한 없이 가볍고 무언가를 꿈꿀 시간도 부족했던 내가 감히 그런 행복을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 알바만 했던 나는 큰 목표도 없었으나, 그동안 나름 고학한 경험 덕분인지 직장은 꽤 수월하게 얻게 되었다. 그리고 관성처럼 교회를 계속 다녔다. 그리고 그 중간에 코로나 시기가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앙심 좋고 교회활동도 열심히 하던 친구들은 저마다의 사정으로 떠나갔고 나는 교회에 남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코로나가 지나가고 그때의 상흔이 꿈같이 잊힌 지금에도 여전히 난 한 발자국 뒤에서 관찰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곤 한다.
불현듯 하나님께서 대학시절부터 멀찍이 앉아 예배를 드리던 나 역시도 지켜보고 계셨진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교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시절에도, 아르바이르트를 하고 지쳐 꾸벅꾸벅 졸던 그 까만 한 청년을 하나님은 늘 그 자리에서 지켜보고 계셨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하나님은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그 시간 동안 그곳에서 조금이라도 쉼을 얻기를 원했었던 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