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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너에게 대회란

입신양명의 등용문이란 한계를 넘어야 한다

by 조아

요즘 퇴근 후 새롭게 생긴 루틴이 있는데 마라톤 대회 일정과 신청일을 확인하는 것이다. 러닝 열풍으로 마라톤 대회 신청도 어렵기도 하지만 내가 활동하는 곳과 거리가 있어 참가하고 싶은 대회라 할지라도 선 듯 신청하는 게 어렵기도 하다. 이동의 편의성이나 가성비를 고려해서 부산 경남에서 진행하는 대회를 주로 검색하는데 이마저도 쉽게 신청하지 못하는 이유는 이동거리가 만만치 않고 대회 코스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한 예로 안동마라톤은 풀코스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약 20번 이상 반복되는 업힐과 다운힐이라는 극악의 고도를 견디어야 한다.


아직 정식 하프 코스를 완주하지 못한 나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지만 올해 꼭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하고 싶은 욕망을 주체할 수 없기에 매일 저녁 하반기 마라톤 대회 일정을 검색하며 가장 만만한 대회를 찾곤 한다. 사실 이 말에도 어패가 있는데 그 어떤 마라톤도 결코 만만한 대회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만만한 대회를 찾으려고 하는지 나조차도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다. 아직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42.195km라는 극기의 매운맛을 모르기에 철없는 생각을 하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김해 숲길마라톤 이후 경미한 부상으로 쉬엄쉬엄 달리기 훈련을 하고 있는 나에게 대회라는 자극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대회가 끝나면 그동안의 긴장이 풀려 봄날의 따스한 햇살에 눈 녹는 사라지는 달리기의 의무감과 동기부여가 되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꼭 부여잡고 있지만 대회 전보다 긴장이 풀린 것은 사실이다. 달리다가 조금 숨이 차거나 목이 마르면 "여기까지만 달릴까"라는 생각이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한 번 정한 목표 거리를 채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모습과 다른 나를 볼 때마다 강한 이질감을 느끼곤 한다.



하프 마라톤 대회를 준비하며 일주일에 한 번 21K 달리기 훈련을 한 덕분에 이제 하프 코스에 대한 두려움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출발선에서 21Km라는 거리를 상상할 때면 과연 내가 완주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때도 있지만 20번 넘는 하프 달리기 훈련을 통해 어느 정도는 적응되었다고 생각한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하는 까닭에 몇 번 해봤다는 경험의 산물은 몸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머릿속에도 남아 있어 앞으로 동일한 도전을 할 때마다 큰 유산으로 작용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해 도전한 코스를 완주하게 되면 완주증을 받게 된다. 대회에서 기준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는 없지만 러너들 사이에서 보통 회자되는 말에 의하면 10K는 한 시간 이내, 하프는 두 시간 이내에 돌파하면 상당히 좋은 기록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기에 혹여 조금 훈련이 부족하더라도 대회 당일 무리해서 좋은 기록을 얻으려는 시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물론 나도 이런 시도를 해봤고 초반 페이스 조절 실패로 완주를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기 때문이다.


완주증이 러너의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것은 아니지만 완주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에 개인적으로 기록보다는 완주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지만 타인의 시선을 고려한다면 완주와 함께 좋은 기록을 가지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당연함 속에 하나의 오류가 있다. 예를 들어 하프 코스를 두 시간 안에 완주했음을 알려주는 완주증을 가진 러너라 할지라도 다음 대회에서 반드시 하프 코스를 두 시간 안에 완주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도전에서 더 좋은 기록을 무조건 기대하는 것은 욕심일 것이다.



"입신양명"이란 말은 말 그대로 출세하여 이름을 세상에 떨친다는 뜻이다. 러너에서 대회는 자신이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록을 가지고 있기에 대회에 참가하여 상대적으로 좋은 기록, 지난 대회보다 1초라도 빠른 기록을 가지고 싶어 한다. 특히 세계 메이저 대회는 물론 국내 3대 마라톤 대회에서 최상의 기록을 얻는다면 그룹의 우선순위와 입상의 기쁨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문자 그대로 피나는 노력을 해야만 한다.


개인적으로 대회를 신청하는 이유는 그동안의 훈련에 대한 평가를 받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런데이 애플리케이션에서 런데이 마라톤을 매월 참가하고 있기에 꾸준히 대회 감각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래도 일 년에 한두 번 정도는 대회에 참가하여 러너들 사이에서 내 수준이 어떤지 비교 분석하고 싶은 마음으로 대회에 참가하려고 한다. 아직 10K 코스는 50분의 벽을 넘지 못했고, 두 번 정도 하프 코스를 2시간 안에 완주한 경험만 있기에 더 많은 훈련으로 단련해야 함을 느낀다.



단지 나를 알리려는 목적으로 대회에 참가한다면 욕심에 지배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회를 통해 입신양명이 아닌 성장과 성숙의 등용문으로 사용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성공의 경험은 없을 것이다. 이제 달리기 세계에 들어온 지 일 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달리기는 겸손함이 필요하다는 진리를 깨닫는 중이다. 한 번의 기록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을 몸과 마음에 세기며 참가하는 대회마다 겸손한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달리기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이 태도는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린다 할지라도 진정한 러너로 성장하는 문을 열어줄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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