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으로 기억하는 독서
6개월 전부터 책 읽기 후 내용을 잊지 않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당시 브런치스토리는 신청할 때마다 보기 좋게 떨어지고 있던 때라 지금도 포스팅을 하고 있지만 책리뷰 관련 글쓰기를 하는 블로그를 주로 하고 있었다. 도서인플루언서의 포스팅을 보면 작가 소개, 책의 구성, 책 내용 요약 등의 콘텐츠가 있었지만 나는 주로 책 읽기를 한 후의 나의 생각과 느낌을 정리한 글쓰기였기에 조회수도 100을 겨우 넘을 때였다.
올해 야심 차게 일 년 365권 책 읽기와 글쓰기에 도전하면서 책 내용을 요약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개인적으로 책의 내용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서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단순히 책 읽는 행위와 읽은 책의 양에 집중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름대로 책을 분석하고 저자의 의도를 알고 싶었다. 책 한 권을 통틀어 '저자가 주장하는 것은 무엇이며,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에 대한 나만의 답을 찾기 시작하면서 단순히 나만의 생각과 느낌을 넘어 새로운 것을 추가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이런 변화를 하려는 의도는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책을 잘 이해하고, 내용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수일을 고민한 후 기존 콘텐츠에서 핵심 단어, 책 속의 한 문장, 조아의 한 줄 요약, 삶에 적용하기, 필사 등의 추가 사항을 더해서 글쓰기를 하기로 했다. 이 중 필사는 글쓰기만큼의 시간이 걸리는 것이라 처음에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포스팅하는 것을 방해하기도 했다. 필사를 전문적으로 하시는 이웃님의 블로그를 보면서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나는 올해 목표가 있음을 인지하고 나만의 방법을 따르기로 했다.
필사를 별도의 콘텐츠가 아닌 책 읽기 후 연속으로 이어지는 글쓰기의 세부 사항을 작성하기를 확정한 후 내가 생각하기에 이 책에서 정말 중요한 문장과 문단이 어떤 것인지 찾으려고 했다. 물론 나의 생각이라 틀릴 수도 있지만 나만의 논리적인 접근법이 있다면 나의 생각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왜 이 문장과 문단을 선택했는지 먼저 나 스스로에게 물어보기 시작했다. 수없이 많은 고민 중 내가 찾은 답은 내가 기억하고 싶은 문장과 문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말 책 읽기에 집중이 안 될 때는 낭독을 하면서 읽기도 하지만, 필사를 할 때는 틀리지 않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하기에 며칠이 지난 후에 다시 봐도 다른 방법으로 책 읽기를 했을 때보다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여행이나 출장을 갈 때도 필사 노트를 항상 챙기고 다녔기에 나의 분신처럼 느껴지며 필요할 때 언제든지 다시 읽을 수 있어서 좋다. 그리고 필사를 할 때 내가 좋아하는 다양한 문구류를 이용해서 기록하다 보니 필기구에 대한 애정도 더욱 좋아졌다. 특히 만년필을 이용하여 필사할 때의 새벽 적막한 시간 속 '사각사각' 나는 소리는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이제 겨우 필사 노트 한 권을 썼을 뿐이지만, 필사의 독서법이 나에게 점점 익숙해져 감을 느낀다. 매번 필사를 할 때마다 시간에 대한 부담감과 하기 싫은 거부 반응이 들 때도 있지만 나는 필사를 계속할 것이다. 어쩌나 새벽에 아이가 일찍 일어나 나의 필사하는 모습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면서 "아빠는 정말 작가 같아 보여"라고 말해주었을 때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것 이상의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아이가 나의 필사 독서법을 알고 있는 이상 이제 하지 않을 수도 없게 되었다. 가끔 하기 싫은 때도 있지만 절대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가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 중 하나가 나의 필사 노트이다.
최근 유영만 교수님의 <언어를 디자인하라>라는 책을 읽은 후 포스팅한 글에 교수님도 필사를 하시며 다시 읽어 보시겠다는 답글이 아직도 눈앞을 떠나지 않는다. 어떤 이에게는 그저 답글일 수 있지만, 말하기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선물해주고 싶은 책이라 더욱 정성스럽게 고르고 고른 문장과 문단을 필사한 것을 알아봐 주시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다. 마치 스테르담 작가님의 답글이 내가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글루틴을 만나게 해 준 연결고리가 된 것처럼 유영만 교수님의 답글은 소리 언어인 말하기와 기호언어인 글쓰기에 더욱 집중하기 위해 일 년 365권의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하는 도전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되고 있다.
이제 곧 글루틴 10기가 시작되는데 글루틴 130기까지 한 후 한 번 필사 노트를 정리할 계획으로 계속 필사를 하면서 책 내용을 손으로 기억하고, 필사함으로 작가의 문장을 훔쳐서 나의 문장으로 만들 것이다. 10년 동안 필사를 하며 작가의 문장을 훔치다 보면 시나브로 나도 작가의 문장을 구사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문장의 대도가 되어 독자에게 유용함과 공감을 줄 수 있는 작가가 되는 날까지, 그리고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글쓰기를 하고 싶은 욕망으로 나는 필사를 한다. 이미 필사에 중독된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