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름에 따르는 책 읽기
처음 일 년 100권의 책 읽기 루틴을 시작할 때 책을 고르는 기준은 딱히 없었고 막무가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책장에 진열되어 있기만 했던 책을 하루빨리 정리할 요량으로 신속하게 정리해야 할 책을 우선적으로 읽고, 중고책방에 팔거나 기증을 하였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정리를 위한 책 읽기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게 만들었다. 주로 자기계발과 인문학 관련 책들이었지만, 과학 기술과 역사 관련 책들도 있어서 한 분야에만 집중되지 않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배울 수 있었다. 심지어 내가 알지 못한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컸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다 보니 다양한 간접 경험을 할 수 있어서 좋았지만, 보다 자세하고 전문적인 소양이 있으면 더욱 많이 이해할 수 있을 텐데라는 아쉬움은 늘 가득했다. 책 읽기를 하다 이해 안 되는 부분은 검색해서 찾아보고 다시 읽으면서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기에 완독 하는데 시간이 더 결렸다.
책을 읽을 때마다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회의감은 ’ 어차피 내용을 다 잊어버릴 텐데 책 읽는 것이 도움이 될까?‘였다. 물론 단 한 번의 책 읽기로 책 속의 모든 내용을 기억할 수는 없다. 솔직히 예전에는 책 읽는 행위에 집중한 나머지 책을 읽고 난 후 읽었던 책 내용을 거의 기억하지 못했다.
그래서 두꺼운 책이나, 심리학, 물리학 등 최소한의 이해도가 필요한 책은 오디오북을 통해 먼저 듣고, 책 읽기를 함으로써 듣고 읽는 전략을 통해 책 읽기를 하니 그냥 막무가내로 볼 때와는 달리 조금 더 쉽게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가장 크게 변화된 점은 책 읽기 직후 바로 글쓰기를 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간단한 리뷰로 시작된 글이 스테르담 작가님을 비롯해 거장의 작가님을 글쓰기를 모방한 결과 이제 조금 나의 생각과 주장을 표현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전문적인 서평가만큼 리뷰를 맛깔나게 쓰는 것은 아니만 나만의 생각이 담긴 나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또 매일매일 글쓰기를 한다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둘 뿐이다.
내 글쓰기의 원천은 책 읽기이다. 책 선전 기준이 없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은 ‘책 속의 책’을 통해 책 읽기를 한다. ‘책 속의 책’은 내가 읽고 있는 책에서 인용된 책을 말하는데 저자의 추천도서라고 생각하며 읽는다. 이렇게 책 읽기를 하니 왜 인용되었는지 알 수 있고, 책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하는데 도움이 된다.
얼마 전 전호태 교수님의 무용총 수렵도를 읽고 난 후로는 계속 역사 관련 책을 주로 읽는다. 역사라는 것이 단편적인 시야로 접근할 수 없을뿐더러 시대적 전개과정에 입각한 자세로 보는 방법도 쉽지 않기 때문에 종합적인 관점으로 봐야만 한다.
특히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과 평가가 함께 이루어지기에 편협한 시각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역사적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나 역시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박시백 작가님의 조선왕조실록 전편을 읽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그림책이라 보기에는 편하지만 글자책처럼 한눈에 들어오지 않기에 오히려 완독 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아이의 도움으로 20권을 모두 빌려서 순서대로 읽고 있는 호사를 누리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조선왕조의 숨은 이야기와 그로 인해 전개된 사건들을 하나씩 배우고 있다.
역사에도 흐름이 있듯이, 책 읽기에도 흐름이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지금 4권까지 본 조선왕조실록의 흐름이 끊겨버린다면 다시 조선왕조실록을 볼 자신도 없거니와 지금까지 읽고 알게 된 조선 전기의 역사적 사건과 후대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마저 없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책 읽은 것이 아까워서 마지막까지 읽게 만드는 암묵적인 책임감도 있다.
역사책을 읽음으로 그 시대적 정확과 사실에 근거하여 당시를 판단할 수 있고, 그들의 선택이 옳았는지 그릇되었는지 분별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사를 통해 현재를 보고, 미래를 대비한다는 점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이 땅 위에서 실현되지 않도록 과거의 실수를 두 번 다시 하지 않도록 냉청하고 정확한 역사관을 가지기 위해 역사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