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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새영 Mar 08. 2020

햇살보다 밝은 6명의 조카들

4년째 보육원에서 자원봉사 중입니다



 2016년 가을에 시작해, 햇수로 어연 4년.

나는 매주 일요일 보육원에서 봉사를 하고 있다.


 사실 '매주'라고는 하지만, 몸이 아프거나 혹은 회사 업무 등의 개인 사정이 있을 땐 못 나갈 때도 있어, 평균적으로 한 달에 두세 번 가량 참여하는 편이다.


 내가 다니는 보육원은 아이들의 성별, 나이 별로 거주하는 곳을 나누는데, 난 그중에서도 5~6살 여자아이 6명이 지내는 방에서 줄곧 봉사를 해왔다. 처음에는 아이들 이름 다 외우기도 버겁고, 어떻게 놀아줘야 할지도 모르는 생초보였지만, 4년이 지난 지금은 도착하면 아이들이 먼저 '새영 이모!' 하며 조르르 달려와 안긴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 나도 모르게 웃음 짓게 된다.

보육원마다 차이는 있겠으나, 필자가 다니는 보육원은 아이들이 봉사자나 근무하는 선생님을 '이모/삼촌'으로 호칭하게 한다.


 봉사 시간은 보통 일요일 오후 3시부터 7시까지 진행되며, 간단한 집 청소부터 한글, 수학 등 아이들의 공부 봐주기나 독서, 그림 그리기 등 4시간 동안 꽤나 많은 일상같이 보내곤 한다.  그리고 내가 소속된 봉사 동호회 사람 중 유치원 선생님과 요리 종사자가 있어, 분기에 한 번쯤은 아이들과 함께 만들기나 요리 활동을 진행하고, 선선한 봄, 가을날엔 인근 장소다 같이 외부 활동을 나가기도 한다.


아이들과 노는 건 뭘 하든 너무나도 즐겁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면 혹자는 '대단하다'며 마치 나이팅게일을 보는 듯한 눈빛을 쏘아대는데, 그때마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 매일 회사에 꼬박꼬박 출근하는 게 칭찬받을 일이 아닌 것처럼, 나한테도 봉사는 그저 한 주말의 루틴일 뿐인데.





 보육원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흔히들 매스컴이나 관련 서적을 통해 많이 접해왔듯, 부모가 없거나 혹은 신체, 경제적인 문제 등으로 양육이 어려워 임시로 맡겨지경우가 대부분이다. 베이비 박스(Baby box : 부득이한 사정으로 아이를 키울 수 없게 된 부모가 아이를 두고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상자)로 들어오는 아이들도 상당수다.


 부모님이 있으나 임시로 맡겨진 아이들은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에 부모님과 외출을 하거나 본집에 다녀오곤 한다. 그렇게 몇몇이 나가고 난 후, 남아있는 아이들은 보육원 내부 활동 혹은 봉사자들과 함께 외부 나들이를 다녀온다. 이 아이들에겐 가족 모두가 모이는 명절의 느낌이 크게 다가오지 않을 것만 같다.


 이렇게 일반적인 우리의 가정과는 다른 부분이 존재하기에, 아이들을 만날 때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몇 가지 있다.


1. 부모님에 대해 묻지 않기

2. 지키지 못할 약속 하지 않기

   (내일 또 올게, 선물 사 올게 등)

3. SNS 등의 공개적인 장소에 아이들 얼굴이   

     보이는 사진 올리지 않기 (초상권 문제)

4. 일부 아이만 예뻐하지 않기

5. 일부 아이에게만 개인적인 선물 주지 않기


 어떻게 보면 아이 개인의 인권을 위한 기본적인 부분이면서도, 다른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단체 생활이니만큼 서로 간에 지켜야 할 부분은 배려하는 것이다.





 4년 전, 처음 아이들을 만난을 땐 말도 잘 못하고 낯도 많이 가려서 다가가기 어렵던 아이들이, 어느새 한글을 읽고 쓰고, 덧셈과 뺄셈을 공부하고, 이제는 내 옆에서 쉴 새 없이 재잘재잘 거린다. 가끔은 이모가 틀렸다며 핀잔을 주기도 한다.


 "이모, '푸른 하늘 은하수' 할 수 있어요?" 하기에, 내가 아는 그 '푸~른 하~늘 은~하~수~' 노래에 맞춰 손바닥을 치는 건가 싶어 "알지." 했다가, 아이는 자꾸 그게 아니라며 목청을 높인다. 얼핏 말하는 걸 들어보니 분명 나랑 똑같은 걸 이야기하고 있는데, 자꾸 자기는 맞고 이모는 틀렸단다. 뭔가 억울한 목소리로 재잘재잘 주장하는 게 귀여워서 괜스레 모르는 척 한적도 있다.


 엄마에게 종종 전화로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가를 끊임없이 쏟아내고 나면, '남의 애도 그렇게 이쁜데, 니 애는 얼마나 이쁘겠니?' 하신다.

 아직 내 애는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남의 애들은 이뻐 죽겠다.


아이들과의 나들이는 몹시 힘들지만 그 이상으로 보람차다


 렇게 4년을 봐 온 아이들은 올해 7살이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자립성 향성을 위해 이제 더 이상 와 같은 놀이 봉사자를 안 받는다 한다.


 솔직히 서운한 마음 반, 뿌듯한 마음 반이었다. 지금처럼 자주는 못 볼 것 같은 마음에 괜스레 서운하다가도, 이제 누군가가 먹여주지 않아도 혼자 밥 잘 먹고, 읽어주지 않아도 조용히 스스로 책을 읽는 우리 아이들이 너무 대견하게 느껴졌다.

(마치 내 자식 잘 키워 결혼시킬 때의 느낌)





 아이들 덕분에 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2020년 올해 목표로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기로 한 것이다.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은 사회복지 관련 학점 이수가 필수 조건 중 하나이기에, 매일 조금씩 사이버 강의를 통해 사회복지학을 배워나가고 있다.  조금이나마 전문적인 지식을 배워 아이들에게 좀 더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 더불어, 아이들이 커가는 미래에 내가 아주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영향이 될 수 있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내가 배우고 느껴나갈 사회복지의 세계-학문 편- 을 부족한 글을 통해 브런치에 남겨보려 한다. 현재 사회복지에 종사하는 분들 혹은 봉사와 나눔에 관심 있는 모든 분들과 함께 다양한 의견을 나눌 수 있길 고대하며.



덧붙이자면, 지난 1월 경부터 신종 코로나 사태 때문에 대부분의 단체에서 당분간 봉사자를 받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고요. 이 사태가 무사히, 빠르게 끝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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