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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Feb 12.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03

해비멘털 BGM 01

내가 '센캐'가 된 사건이 있었다.

아침 출첵이 끝나면 각자 휴대폰을 제출한다. 불과 1학년, 새 학기, 3월, 둘째 주, 아직은 서로 그래도 내외하고 조심하는 때인데, 그 녀석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휴대폰을 내지 않았다.



첫날은 그냥 내라고만 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대부분은 다 냈다. 오전에 좀 조물딱 거리다가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는 결국 다 냈다. 그게 우리의 최선이자 최상의 날이었다. 둘째 날에는 딱 한 녀석이 내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 녀석을 샛별이라고 불렀다. 안 가져왔단다. 그러시겠지. 그냥 내버려 두었다. 아직 서로를 잘 모른다. 셋째 날에는 샛별이 짝꿍이 같이 안 냈다. 둘 다 안 가져온 신비로운 날이다. 넷째 날에는 점심시간 무렵까지 쪼물딱대는 녀석들이 늘어났다. 샛별이랑 짝꿍은 거짓말도 없이 그냥 막 안 냈다. 다섯째 날에는 경이로운 일이 생겼다. 모두가 다 냈다!



샛별이는 지각을 하지 않았다.

그 짝꿍도 그랬다. 유독 휴대폰에만 집착했다. 눈빛이 아름다운 편은 아니었으나 웃을 땐 반달같이 둥글게 접혀 정말 순둥 한 얼굴이 되곤 했다. 그런 눈을 하고 배시시 웃었다. 저 오늘 냈어요. 하고. 이 녀석이 강아지였다면 그 순간에 꼬리라도 흔들고 있었을 것만 같은 표정. 나도 같이 웃었다. 오늘 아침 내가 기도를 빡세게 하고 왔더니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건조한 회색 콘크리트 건물이 문득 샤방하게 느껴졌다.



점심시간, 잠시 교실에 들어섰다.

며칠 째 점심을 먹지 않고 혼자 앉아있는 여자 아이가 마음이 쓰였다. 그런데 엉뚱한 걸 보고 말았다. 샛별이가 후다닥 손을 서랍 속으로 집어넣었다. 내 눈도 따라 서랍 속으로 들어갔다. 숨겨지지는 못했고, 휴대폰이 여전히 게임 중이시다. 정적. 옆에 있던 짝꿍은 주머니에서 손이 나오질 않고 다리만 달달달 경망스럽게 떤다. 샛별이 반달눈은 역삼각형이 되어 당혹감보다는 분노에 가까운 야릇한 빛이 발사되고 있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이 녀석 보게, 뭘 잘했다고.



교무실 가서 얘기를 해야 한다.

이건 그냥 순간적인 직감이다. 여기서 대화를 시작하면 뭔가 곤란한 일이 생길 것 같다는 직감.

"교무실 가자. 가서 얘기하자."

"그냥 여기서 해요. 왜요?"

"교무실 가서 얘기해. 애들도 있고."

"왜요? 겁나요? 안 가요. 여기서 해요."

"휴대폰 왜 갖고 있어? 우리 내기로 했잖아."

"냈어요."

"이건 뭐야?"

"친구 폰이요."

"열어봐. 친구  폰인지 본인 폰인지."

"의심해요? 짜증 나네. 왜요? 내가 진짜 안 냈을까 봐?"

"누구든지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지. 어느 놈 폰이든, 제출하는 게 맞는 건데. 그냥 일단 내고 보자."

"싫어요. 내 폰도 아닌데 내 맘대로 왜 내요?"

"친구 누구?"

"쌤은 몰라요. 다른 학교 애예요."

"말하기 싫은 건 이해하는데, 그렇다고 그냥 소지하긴 그렇고. 내가 보관하고 있다가 종례 할 때 줄게."

"싫어요. 폰 내라고 해서 냈잖아요. 그럼 된 거지. 뭐가 이렇게 복잡해?"

"말해봐. 내가 잘못한 거라도 있니?"

"아, 다 짜증 난다고요, 다 짜증 나. 그만 좀 하라고. 그냥 가라고요, 좀 가라고!"

소리를 와락 지르고는 튀어나갔다. 옆에 있던 짝꿍도 덩달아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너도 주머니에 뭐냐?"

"아, 씨!"

하더니 그 녀석도 그대로 튀어나갔다.

둘러싸고 있던 아이들이 하나둘 흩어졌다. 이런 기분으로는 점심 굶은 여자애랑 대화하기도 어렵다.



종례 시간.

간단한 공지, 체육복도 잘 챙겨 오라고, 슬리퍼 좀 챙겨 신고, 흡연 단속 제대로 하고 있으니 신경 쓰라고, 대략 잘 가라, 끝. 우르르, 휴대폰 보관 전용 가방을 열어두면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번호가 적힌 자리에서 자기 폰을 찾아들고 나간다. 안녕히 계시라고 인사라도 한 마디 하는 놈이 있으면 감사하고. 아이들이 다 떠났는데, 가방 안 13번, 14번 자리에는 샛별이와 짝꿍님의 정체를 알 수 없는 낡은 폰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다음날도, 그다음 날도,

우리 반은 항상 휴대폰 제출 100%를 달성하게 되었다. 그 두 공폰 덕분에. 뭔가 조치를 취해야만 했다. 그런데 기회가 왔다. 수업시간이었다. 샛별이가 전화를 받았다. 먼저 전화를 걸진 않았다. 그게 샛별이의 유일한 항변이 되긴 했다. 하지만 수업 중인데. 영상통화로. 옆 학교 다닌다는 한 아이가, 자기 수업 째고 노는데 심심하다며, 너도 수업 째고 나오라며, 이거 꿀잼이라며, 중간에서 만나자며, 이 담대한 영상통화가 내 수업시간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영상통화는 스피커폰이라 다 들린다.



무슨 정신머리를 가진 아이일까?

거는 놈 받는 놈, 둘 다 정말 규범의 바깥에 뿌리를 두고 뜻하지 않게 규범의 담장 안으로 가지를 뻗은 나무, 왜 규범 밖으로 나가느냐고 물어볼 것이 아니라 왜 규범 안에 들어와 있느냐고 물어보는 게 마땅해 보인다. 이 학교는 매일 새로움이 터진다. 이럴 땐 어떻게 하라고, 교직원 연수 때 지침이라도 나눠주셨어야 하지 않나. 교탁 앞에 서서 잠시 여러 생각들이 스친다. 아이들은 흥미진진. 나라도 재미있을 듯. 하지만 지금 나는 재미를 따질 상태가 아니다. 샛별이의 화면은 이제 나를 비춘다. 우리 쌤이라고, 나 지금 담임 수업인데 전화받은 거라고, 재미있게 놀아줬으니 형님 수업하게 이만 끊자고 한다. 내가 손쓸 새도 없이 온 교실을 휘저은 영상 통화가 끝났다.



쉬는 시간.

이번 호출은 거절하기 어려웠을 거다. 순순히 왔다. 그리고 뻔한 항변을 한다. 전화가 왔다고. 왜 전화를 받았냐, 수업시간인데 왜 그러느냐, 이런 건 더 말하고 싶지도 않고. 휴대폰 왜 안 내느냐고 먼저 물어봐야만 했다. 그런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쉬는 시간 내내 서로 마주 앉아 있었다. 사실 아무 말도 통할 것 같지 않았다. 길고 긴 무호흡 같은 시간이 흘렀다. 종이 친다. 샛별이 벌떡 일어났다. 손을 뻗어 교복 옷깃을 잡았다. 지각도 하지 않는 샛별이는 교복도 항상 잘 입고 다녔다. 3년 내내 더 커야 한다고, 교복이 헐렁풍덩했다. 형이 입던 옷 아직 덜 큰 동생이 물려 입은 것 같이.



옷깃을 잡은 내 손을 물끄럼이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랑 눈이 마주쳤다. 옷깃 잡던 손을 펼치고 손바닥을 내밀었다. 그 순간, 샛별이의 눈이 샛별보다 더 빛났다. 그때부터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을까? 교무실에는 나 이외에도 수업 들어가려던 선생님들과 업무 중이었던 선생님, 상담 중인 선생님과 학생 등등 몇몇 사람들이 더 있었다. 모두가 다 같이 들었다. 천둥 같은 그 아이의 욕설을. 사실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 그냥 무시무시했다는 감정 외엔.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팔다리에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그 녀석이 만약 강아지였다면, 싸움 앞에서 으르렁거리며 짖어대는라 침이라도 흘렸을 것 같았다.



정신이 들었을 땐, 샛별이가 이미 교무실을 떠난 뒤였다.

녀석은 그대로 교문 밖으로 나갔다. 지각을 하지 않는 아이가 무단 조퇴를 했다. 상황을 어머니께 알려드리긴 해야 할 것 같아서 전화를 드렸는데 그냥 바쁘다고만 하신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전화를 끊는 나를 보며 선생님들은 그냥 진술서를 남겨두라고 했다. 뭐든지 기록해두지 않으면 나에게 어려운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잘했든 잘못했든, 객관적 상황을 기록으로 남겨야만 한다고. 한 선생님은 게시판 못질하느라 갖다 둔 공구함을 캐비닛 깊숙이 넣어두었다. 모든 걸 대비해야 한다고 했다. 분노가 조절이 잘 되지 않으면 의도하지 않았던 일도 벌일 수 있다고. 그냥 모든 게 다 멍했다.



나부터 멘탈 가다듬고.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벌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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