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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Feb 13.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04

해비멘털 BGM 02

다음날, 샛별이는 지각을 시작했다.

어머니는 전화드릴 때마다 바쁘다고 하셨다. 바빠도 아이의 지각 현황은 꼬박꼬박 문자로 알려드렸다. 답장은 없었다. 샛별이는 지각뿐만 아니라 흡연도 잦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레이저 광선이 뿜어져 나왔다. 언제 어디서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든 샛별이는 늘 교복을 단정하게 챙겨 입고 있었다. 헐렁한 교복 재킷 속에 아이는 늘 더 작게 움츠러들어 보였다. 작지만 아무도 샛별이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샛별이가 시작한 모든 행동들이 아이들에겐 동경이고 야망이었다. 샛별이는 매일 조금씩 더 경계에서 한 발짝씩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또다시 전쟁을 결심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날은 점심시간에 학교에 나타났다.

오자마자 무리에 섞여 체육관 뒷길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체육관 뒤, 담과 건물 사이의 그 좁은 담벼락에 붙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이 갔다. 범행(?)은 현장을 덮치는 것보다는 방지하는 것이 목적이니만큼, 서둘러 이름을 불렀다. 순식간에 무리는 흩어졌고, 샛별이는 인상을 구기며 따라왔다. 시작부터 기분이 안 좋아 보였다. 거사를 그르쳤으니 짜증이 날 법도 했다. 그렇다고 느긋하게 한 대 피우고 오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주머니라도 뒤지면 뭐든 나올 상황이었겠지만, 오늘의 목적은 그쪽이 아니다.



"요즘 왜 이렇게 자꾸 늦니?"

"뭐가요? 학교 어쨌든 오잖아요."

"무단지각은 시간 수만큼씩 쌓여서 36시간 이후부터는 학생부에서 징계를 받게 돼. 안내했잖아."

"상관없어요. 지각으로 학교 자르는 데가 어디 있어요? 난 졸업만 하면 되니까."

"졸업이 목표면 성실하게 다녀야지. 36,48,72, 이런 식으로 쭉 쌓여서 퇴학되는데. 뭘 믿고 안 잘린대?"

"생전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무단 지각으로 퇴학까지 한다고요?"

"무단지각 3회면 1회 무단결석이야. 무단결석 61회면 학년 이수 인정되지 않고 유예가 되고. 우리 학교 교칙이 아니어도 행정적으로 보장받지 못해. 최소한 학교는 열심히 나와야지."

"와, 더러워서 못 다니겠네. 중학교 때는 안 그랬는데, 이 학교는 왜 이렇게 팍팍해요?"

"중학교는 의무교육이어서 어찌어찌 해준 건지 몰라도, 고등학교는 이제 사회인이 될 준비를 하는 건데, 그렇게 어물쩍 넘어가기 어렵지 않겠어? 성실함도 훈련하는 거야. 왜 이렇게 의욕이 없어? 무슨 일 있냐?"

"없어요, 그딴 거. 그냥 다 짜증 나서 그렇지. 엄마가 졸업만 하래요. 딴 건 다 필요 없어요. 졸업만 시켜주면."

"야망이 너무 검소하네. 이왕이면 자격증도 하나 따고. 사치 좀 부려보자."

"......"

"우리 입학한 지 딱 8일째인데, 벌써 지각이 이래. 사흘 째 연속으로. 이러다 곧 학생부 각인데?"

"왜요? 졸업 못 할까 봐요?"

"아니, 습관 못 잡을까 봐요. 맛 들이면 지각도 습관 되고, 이것도 쌓이면 결과가 큰 거니까. 쌤이 아침에 깨워줄까?"

"싫어요. 알아서 하면 되잖아요."

"그래, 잘 알아들었다니 다행이네."

"그럼 가도 되죠?"

그때 보냈어야 했는데. 왜 또 말을 붙여설랑.



"아니. 쌤한테 다른 거 할 말 없어?"

"뭐요, 또, 뭐가요, 왜요?"

"예쁘게 좀 말해봐. 짜증부터 내지 말고. 우리 휴대폰 얘기 마무리 못했잖아."

"아, 진짜, 미쳐버리겠네."

"쌤도 너랑 갈등하기 힘들다. 그러니까 그냥 내버려 둘까?"

"그냥 나는 없는 셈 치고 살아요, 그냥. 난 없는 애라니까."

"좋아. 네가 사흘만 지각없음, 폰 제출, 학교 내 금연, 딱, 사흘만 이거 지키면, 이후부턴 맘대로 하게 해 줄게."

"진짜요? 진짜죠? 진짜 딱 사흘만? 왜요? 내가 못할 것 같아서?"

"사흘만 해. 이후엔 간섭 안 할 테니. 대신 사흘 이내에 뭐라도 걸리면 내내 내가 하자는 대로 해야 할 거야."

"좋아요. 자요. 지금 제출. 됐죠? 아까 흡연 안 하고 왔죠. 됐죠? 여기 담배, 불, 다 있네. 됐죠? 오늘 지각했으니까 지각은 내일부터 사흘, 나머지는 지금부터 요이땅."

"와, 남자네. 진짜 쿨하네. 좋아. 약속대로 잘해봐. 잘했어. 벌써부터 잘했네. 좋아. 이따 보자. 교실 가봐."



그래 놓고, 쉬는 시간마다 왔다.

휴대폰을 내 서랍에서 마음대로 꺼내서 뭔가를 계속한다. 시간마다 확인을 해야 할 게 있단다. 쉬는 시간 내내 내 자리에 앉아서, 내 서랍을 열고, 제출했던 폰으로, 심지어 내내 혼잣말로 욕을 해대면서,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참견을 안 할 수가 있어야지. 일단 쌤 자리니까 잠시 비켜줄래? 제출했던 폰이니까 일단 좀 내려놔줄래? 여기 교무실인데 선생님들 다 듣는 자리에서 그런 혼잣말은 좀 참아줄래? 약속했던 대로 잘 지켜줄래? 여기서 좀 나가줄래? 



그러다 청소 시간.

아이들 청소를 지도하고 있는데, 이번엔 아예 제 멋대로 폰을 꺼내어 들고 유유히 교실로 가져오고 있는 게 아닌가? 청소 끝나면 종례하고, 종례 끝나면 집 가는데, 5분 일찍 가지고 나왔기로서니 뭐가 문제냐고. 싸우자는 건가? 아니다, 아니지, 학생인데 감정 내려놓고. 그래도 너무 버릇이 없구나. 처음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야 되나 보다. 종례를 서둘러 마치고 교무실로 다시 불렀다. 휴대폰 좀 줘봐. 꺼내가지 말고 나한테 받아가라고. 1초면 돼.



"왜요? 왜 이래요? 아, 짜증 나"

"작은 절차지만, 넌 너무 예의가 없어서 그래. 누가 선생님 서랍을 아무렇게나 열고 닫고."

"하기 싫어요. 그래요, 나는 싸가지 없어요. 싸가지 없는 새끼니까 그냥 좀 냅두라고, 아 씨x."

사흘 전, 천둥 같은 욕설을 한바탕 퍼부은 적 있는 이 녀석이 아무런 사과도 없이 넘어가더니, 이번엔 대놓고 싸가지 없으니 냅두라고 또 욕이 툭 튀어나온다. 예의를 논하는 자리에서 또다시 나온 욕설. 역설이다, 정말.

"어허, 지금 뭐라고 했어?"



나는 별로 욕설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영화에서 건달들이 욕하는 장면도 상당히 불편하다. 가정에서도 욕설을 들어본 적이 없고, 우리 세대는 그렇게 욕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다. 아닌가? 내가 지나온 여중 여고 여대, 어디에도 욕설 지껄이는 문화는 거의 없었다. 이미 이 학교에 와서 아이들이 간간이 내뱉는 욕설에도 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게다가 지난번 이 녀석의 천둥 욕설에 이미 간이 쪼그라들 대로 쪼그라들었는데, 또 이번의 욕설은 하나도 알아듣지도 못할 외계어였다. 만약 욕설 사전을 편찬한다면 자문위원으로 위촉하고 싶을 정도로 전문적이고 드넓은 세계. 그 욕설이 나를 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와 분노, 억울함, 배신감, 모멸감 등등을 뛰어넘을 정도의 어떤 백지상태로 얼이 쏙 빠졌다. 어디에서도 구경하지 못할 명장면이 지금 라이브로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는 점과 또 다른 퍼포먼스, 교무실 파티션을 발로 차서 부수는 믿어지지 않는 광경 때문에. 



공교롭게도 우리 교무실에는 남자 선생님이 아무도 없다.

여섯 명의 여자 선생님들은 서로 붙들고 벌벌 떨었고, 한참을 부수던 샛별이는 잠시 헉헉 숨을 고르더니,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서는 내가 알던 강아지가 아니라 어디선가 튀어나온 늑대가 울부짖는 것 같은 포효가 울려 퍼졌다. 비로소 내 눈에 눈물이 맺혔다. 무서웠던 거다. 손이 덜덜 떨렸다. 정말 깜짝 놀랐던 거다. 그 와중에도 이 학교에서 3년 차 된 한 선생님은 그 상황을 다 녹음하셨다. 녹화하다간 그 폰마저 발로 밟을까 봐 급한 나머지 녹음이라도 켜놨다고. 녹음이 얼마나 잘 되었는지 확인하고 싶어 했지만 난 듣고 싶지 않았다. 그걸 어디다 쓰나. 그 아이와 함께 교무실을 나간 내 멘털은 그날 밤이 깊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내가 받은 상처가 이렇다.

그렇다면 그 아이가 그간 받은 상처는 도대체 뭐냔 말이다. 누가 그 아이를 그렇게 만들었냐고. 누가 그 아이에게 욕설 사전이라도 달달 외운 것 같은 극한의 저주를 심어줬냐고. 그냥 소박하게 졸업만 하겠다는 그 아이의 꿈을 누가 그렇게 위협해왔냐고. 가슴이 답답했다. 학생에게 욕설 종합세트를 받은 상처보다 더 큰 상처는, 그 아이가 이미 받아서 곪았을 그 상처를 내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괴리. 무기력. 도대체 여긴 뭐하는 곳이냐, 이 아이들은 어디서 나타난 것이냐? 종일 그저 뭐지, 뭐지? 나는 좋은 선생님도 아무것도 아니지만, 나와 다른 세계를 걸어온 아이들을 보듬을 능력조차 없다는 것. 개 상처다. 



이제 나는 이 학교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만나고 가르치고 선생 노릇 할까?






<제목 이미지 : 장승업 '화난 고양이' 오마이 뉴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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