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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가운 열정 Feb 14. 2021

[#연재소설] 가장 보통의 학교_05

해비 멘털 BGM 03

다음날부터는 마음을 달리 먹었다.

이 학교에 있으면 어딜 가나 극심한 소음 공해에 시달리는데, 가장 큰 공해가 바로 욕설하는 소리이다. 친구끼리 어쩌면 저렇게 말을 할까 싶을 정도로 아무렇지도 않게 독한 말을 주고받는다. 그게 계속 거슬리면 곤란하다. 부모에게도 교사에게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말인데, 친구에게쯤이야, 그게 뭐가 문제냐. 이건 이해해주는 차원이 아니라 그냥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할, 호흡같이 눈 깜빡임같이, 그냥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얼마든지 늘 일어나는, 그냥 하나의 '언어'라는 걸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들의 언어에 적응하지 못하면 그 정서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정서에 적응하지 못하면 여기서 교사로서 살아남지 못한다. 이렇구나, 하고 내 개념을 새롭게 재창조해 나가야만 한다. 원래 있던 틀을 그대로 가지고 와서는 입을 떼지도 눈을 뜨지도 귀를 열지도 못한다. 굳건한 기준과 야리야리한 융통성 사이의 미친 곡예에 성공해야 한다. 가르침을 포기해서도 안 되고 그들의 정서를 왜곡해서도 안 된다. 그냥 흔해 터진 언어라고. 그 아이는 그냥 화가 난 거라고. 표현법을 잘 모르는 야생 강아지라고. 그래도 사회 안에서 길들여야 한다면 가르치긴 해야 한다고. 내 감정은 그렇게 정리하고, 내 이성은 또 그렇게 다독였다. 이젠 기준이 섰다.



그래서 징계하기로 했다.

고등학교 교무실은 학년별, 혹은 과별로 여러 개의 교무실이 있다. 생활 지도와 아이들의 편의를 위해 여러 개로 나뉜 교무실이 여기저기 흩어져있다 보니, 교무실이 자꾸 소규모가 된다. 특히 우리처럼 여자 선생님들만 모인 작은 교무실은 더욱 별의별 일들이 다 있어왔다. 혈기 왕성한 아이들의 우발적인 사고가 일어나는 곳이 대체로 이런 작은 교무실이었다. 1학년이고 3월이고, 게다가 이미 사흘 전에 비슷한 일을 했는데 한번 봐줬고, 이쯤 되면 한 번은 정면 승부해서 선을 그어줄 필요가 있다. 어차피 지금은 아이들이 한창 이 학교가 어떤 곳인지 간을 보고 있을 시기라, 이 선은 넘지 마세요, 하는 경고가 필요하긴 하다.



징계 위원회가 열린다.

선생님들은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몇몇 선생님들은 심각한 교권 침해라고, 단순히 징계 위원회가 아니라 교권 위원회에서 다룰 문제라고 이의를 제기하기도 했다.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교권 위원회에 오락가락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샛별이가 졸업만 할 수 있으면, 졸업할 만큼 예의가 생기면, 아니, 최소한의 사회성이라도 생기면 좋겠다. 깊은 뉘우침, 진심 어린 사과, 이런 건 기대하지 않지만, 적어도 선 넘으면 졸업 못하는구나, 사회에 나가려면 이 정도 선은 누구에게나 지켜야 하는구나, 이런 감 잡는 것만 가르쳐도 성공이다.



샛별이는 징계 위원회에 오지 않았다.

징계 위원회는 대부분 방과 후에 이루어진다. 학교 일정이 다 끝나고 대부분은 다 하교하고, 학부모와 해당 학생만 참여한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이 학교의 징계 위원회는 무려 2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열린다. 다른 학교에서는 한 학기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불명예와 고통의 징계 위원회가, 또 한 번 열릴 때 한 가지 사건에 연루된 한 명 또는 관련 몇 명만이 참여하는 징계 위원회가 이 학교에선 한 번에 많게는 50명씩 호명된다. 교육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지만 학생도 학부모도 긴장감이 없다. 나는 또다시 새로운 개념판을 짜야하는 걸까? 혼란스럽다.



출석정지 5일.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샛별이는 단 5일 만에 학교 다니지 않는 아이가 되고 말았다. 5일간 출석하지 않고, 따라서 지각하지도 않고, 휴대폰도 제출하지 않고, 공식적이고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집구석 강아지가 되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도 출석하지 않았다. 출석정지 기간이 끝났는데 자체 정지 기간은 지속되었다. 부모님은 여전히 바쁘셨고, 네네, 보내야죠, 네네, 해놓고도 달라지진 않았다. 근무 중이신 부모님이 중간에 집에 오셔서 아이를 깨워 교복을 입히고 교문 앞까지 데려다 줄 순 없는 노릇이다. 



영상전화를 걸었다.

드디어 전화를 받는다. 진작 영상으로 해볼걸. 눈이 반달이다. 학교 와야지. 네. 언제? 지금 와라. 내일요. 내일 언제? 일찍이요. 몇 시에? 9시까지 갈게요. 휴가 좋았냐? 네. 징계 꿀인데요? 그렇다고 종종 징계 얻어먹을 생각 하진 말고. 네. 졸업해야지. 네. 너 없으니까 심심해. 가서 또 욕 좀 해드려요? 그러시든지. 꼭 와라. 네. 너 나한테 사과 안 해? 죄송해요. 사과했으니까 이제 속 편하게 그냥 와. 네. 꼭이야. 네. 반달눈이 웃었다.



하지만 샛별이는 사흘이 지난 후에야 왔다.

항상 극적으로 사흘이다. 왜 매번 이런 건 예상이 안 되는 걸까? 이번엔 샛별이가 교복을 입지 않았다. 트레이닝 바지에 후드티, 헐렁한 교복 재킷 대신 점퍼를 둘렀다. 게다가 어머니가 같이 오셨다. 자퇴하고 싶다고. 부모님이랑 다 얘기가 되었다고. 절차만 부탁한다고. 이게 무슨 일이지? 샛별이와 잠시 대화하고 싶다고 했다.



"졸업해야지."

"꿈이에요. 꿈은 그냥 꿈이죠."

"그까짓 졸업이 뭐 대단하다고, 그게 무슨 달나라 여행 가는 일도 아니고, 뭐 대단하다고."

"난 못해요, 졸업. 어차피 이렇게 계속, 치받고 엇나가고, 나도 알아요. 난 숨 막혀서 못 살고, 쌤은 쌤대로."

"내 생각해서 자퇴해 주시겠다고요?"

"그건 아니고요. 하여간 난 학교에 안 맞아요. 내가 알아요. 중학교 때도 그랬어요. 학교 거의 안 다니고 어쩌다 그냥 졸업장 받았어요. 쌤도 그냥 포기하세요. 이게 정답이에요."

"이제 시작인데 무슨 말이야, 그냥 해보면 되지, 해보기로 했잖아."

"쌤, 내가 학교 지각하고 안 나오고 하면, 우리 엄마한테 전화할 거예요, 안 할 거예요?"

"하겠지."

"것 봐요. 우리 엄마, 학교 전화 징글징글한 사람이에요. 쌤 번호 아마 스팸 처리했을 걸요. 서로 소용없는 짓이라고요. 갈 길 가게 둡시다. 알아서 잘 살게요."

"내가 깨워주고, 내가 챙겨주면 안 되나?"

"나도 쌤 번호 스팸처리해버리면, 그땐 어쩌시게요? 그냥 쌤이 나 스팸처리해줘요."

숨을 못 쉬겠다. 17세가 3월부터 이런 말을 한다. 욕설이 차라리 낫지. 미친놈이다. 넌 정말 미친놈이야. 이럴 거면 교복은 왜 그렇게 크게 맞춰설랑. 졸업해보겠다고, 3년 내내 입어보겠다고, 아아, 진짜 미친놈.



어머니가 들어오셨다.

자퇴가 퇴학보단 낫다고.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퇴학은 재입학이 어려운데, 자퇴는 재입학 여지가 있으니까. 그냥 자퇴하게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신다. 이런 쪽 법을 잘 모르는 교사에게 이런 쪽 법은 훤한 학부모님이 한 수 가르쳐주신다. 그렇구나. 징계에 회부한 것부터 너무 후회스럽다. 5일 출석정지 안 먹었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그냥 넘어갈 걸 그랬나.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내가 갑자기 미쳤나, 그땐 그렇게 멘털 싹 털리고 이제 와서 속상해? 매 맞는 아내들같이. 



쌤, 나 그만두지 말까요? 

응. 학교 다니자, 응? 쌤, 나는 또 욕할지도 몰라요. 안 돼, 하지 마. 쌤, 나 매일 지각할 걸요? 안 돼, 일찍 와. 폰도 안 낼 거고. 안 돼, 내야지. 쌤, 하지 말라는 거 나는 다 하고 다닐 건데. 안 돼, 제대로 다녀. 쌤, 정신 차리세요. 앞으로 이런 꼴 많이 볼 텐데. 나가서 또 연락드릴게요. 힘내세요, 쌤.



샛별이는 우리의 경계에서 너무 많이 멀리 갔다.

말 그대로 아이들의 이상한 동경이 되었고, 이상한 구역에서 별이 되었다. 너무 일찍 뜨고 진 샛별이 되었다. 심심해서 했다며, 종종 영상전화가 왔다. 반달눈이 종종 흔들렸다. 내년에 담임해주면 재입학하겠다고. 네 담임하기 싫어서 이 학교 떠날 거라고. 서로 맘에 없는 말을 진심처럼 주고받으며 전화를 끊곤 했다. 제 발로 제도권을 나간 아이,  그리고 나는 3월 세쨋주에 첫 자퇴를 처리한 '센캐'가 되어버렸다.



센캐에게 욕설은 그냥 하드코어 해비메탈 음악일 뿐

종교적으로 말하면 경건한 마음을 고양시켜주는 CCM처럼, 묵직하게 자기 자리 지키는 해비한 멘탈을 고양시켜주는 BGM, 해비멘탈 BGM일 뿐. 대놓고 욕을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네 속의 곪은 상처에 오늘 고름이 좀 스며 나오는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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