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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Jan 12. 2024

어색함

채점지

관계에서 어색하다는 단어가 주는  불편감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한 거부감이 유달리 감춰지지 않는 유형이다. 그러기에 그런 상황과 사이를 만들지 않기 위해 나름의 노력을 하는 편이다.  대부분은 시작도 하기 전 피하려 하지만 삶은 필연적으로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들이 다반사였다.  대문자 I라는 한계에 마주하고 나는 결국 어쩔 수 없는 어색함에 프레임에 빠지게 된다. 일을 하면서는 더더욱이 그런 관계의 시간들이 많아졌다.


시간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마도 나의 사회적 관계 속 어색함은 J매니저가 처음이었다. 이전 연재된 글 속에서 그녀와 나 사이에는 뭔가 묘하게 거리감이 있었다. 같은 나이와 다른 직급이라는 부분이 영향을 미치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었다. 숫자가 주는 불편함의 지분의 크기가 물론 크기는 하였지만 여분의 또 다른 벽들이 밀어내는 거리감도 작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 그녀를 마주할 때면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게 되는 상황들이 많았었다.



나는 생각보다 걸음이 느린 사람이다. 빠르게 걷는 것이 익숙지 않았다. 나의 한걸음에는 생각과 고민 그리고 일어나지도 않는 걱정의 순간들이 한 뭉텅이로 뭉쳐져 있다. 그래서 그  무거움이 크게 느껴진다. 때로는 가끔 타인을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들이 많았고 그로 인한 불이익들도 있었다. 사회라는 정글은 시계 추 속에 흘러가는 순간의 시간의 가치를 중요시한다. 그러기에 빨리빨리 답을 내리기를 재촉한다.


 물음표에 대한 즉각적인 마침표를 내리지 못하는 나에게 의외로 매장 사람들은 기다림이라는 크나큰 배려를 해주었다. 그로 인해 어찌 보면 나의 삶에서 얻게 되고 발전 한 부분들이 많았다. 항상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은인의 카테고리에서 J매니저는 살짝 벗어나있었다. 그녀는 나와 달리 걸음이 빠른 사람이었다. 상당히 빠르게 정답을 내리고 자기만의 채점표를  매겼다.


타인의 오답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 정답풀이를 하며 공감보다는 우열을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그것이 뭔가 불편한 감을 주었다. 마치 내가 불량품이거나 여기 맞지 않는 퍼즐인가라는 자괴감을 주었다. 그로 인해 느껴지는 거리감과 불편함이 더더욱이 강해졌다. 왠지 그녀 앞에 서면 위축되고 조심스러워졌다. J매니저의 채점표에는 위아래가 없었다.


그녀는 S로 시작하는 굵직한 대형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경력의 자부심을 강했다. 수시로 그곳에서의 매뉴얼과 시스템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매장이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부분에 불만을 표출했다. 그녀는 자기보다 선임자들의 우유부단함과 적극적이지 않기 때문에 발전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여과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상황과는 별개로 매장사람들도 묘한 어색함이 J매니저에게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의 업무스타일은 뛰어났다.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는 확실히 정리를 하고 적극적으로 결과를 도출해 내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보였었다. 그렇기에 항상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하지만 그녀에게 업무는 자기의 분야뿐이었다.


본인의 화분에만 물을 주고 옆쪽은 말라가도 애써 외면하고 회피하였다. 단편적으로 이 매장의 빌런인 점장이 평화를 깨뜨리고 부수려 할 때는 항상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며 그 자리를 도망쳤다. 결국 그 고난의 시간과 어려움은 남아있는 자들만 느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난 후에는 자기도 그 자리에서 당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였다. 얌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실 사회에서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정답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나 또한 알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채점지에서는 아마도 매장을 떠나기 전까지 항상 낙제점이었을 것이다. 느리고 우유부단하고 융통성이 없다고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외의 매장 사람들은 내게 준 믿음과 기다림에 떠남의 순간에서는 많은 모습들이 변해있었다. 적당히 어필할만한 부분의 성과와 업무능력을 습득하게 되었다. J매니저와의 어색함은 동갑이라는 나으리의 숫자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녀가 가지고 있는 채점표가 벽을 만들었던 것 같다.


후일담으로 시간이 지나서 고향을 찾아가듯 매장으로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나는 운 좋게도 승진을 하여 어느새 점장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던 시점이었다. 빈손으로 가기가 염치없는 것 같아 아메리카노를 6잔과 디저트들을 몇 개 사서 포장하여 들고 갔다. 반가운 마음에 매장 문을 열고 마주한 사람은 J매니저였다. 살짝 표정관리가 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애써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여전히 같았고 달라진 나를 바라보며 나의 위치를 은근히 부러워하였다.


그러면서 과거에 자기가 끼친 영향을 고마워하여한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전히 변치 않는 모습에 살짝 고개가 끄덕여지며 괜스레 그녀의 채점지에 나는 커트라인을 넘어간 것일까라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리고 어색함이 싫고 여전히 느껴지는 그 불쾌한 벽이 거슬려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아마 다시 매장을 방문하더라도 그녀를 피해 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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