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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군 Jan 19. 2024

친절함에 대하여

매뉴얼

10년의 가까운 시간을 서비스직으로 일을 하였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고객들을 만나고 마주하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어떻게 대문자 I인 내향적인 인간이  그 시간을 버티고 이겼냈는지 말이다. 그래서 가끔은 내 어깨를 혼자 토닥토닥거린다. 여전히 나는 낯섦에 취약하고 타인에 대한 부끄러움이 많은 인간임은 변치 않았다.


다만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일을 하는 동안은 가면을 쓰려 노력한다. 강인하게 보이지는 않아도 약해 보이지 않으려 나의 일부를 감추려 한다. 사회라는 곳은 솔직하게 드러낸다는 것이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시간을 먹어가면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서비스직을 일하면서는 더더욱이 그러한  부분을 절실하게 느꼈었다.


서바스라는 사전적 단어에는 소비에 필요한 인력을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기에 사람을 대면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따라진다. 고객으로 상대방을 마주하면서 서비스의 정의를 효과적으로 실행하기 위해서는 친절함이라는 부분이 필요하게 된다. 다정하고 상냥한 태도로  고객을 대하는 것인데 나는 이 부분을  A중고 서점에서 일을 하며 대부분을 익혔다.


A 매장에서 일을 하는 구성원들은 대부분들이 친절함에 능숙하였다. 각자만의 방식들이 적절하게 업무에 있어 적용되어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는 부분을 보면서 괜스레 조바심과 걱정이 들었었다. 내향적인 내가 저들만큼 친절하게 고객들을 대하면서 업무를 볼 수 있을까라는 등등의 고민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렇지만 걱정이 현실을 멈춰주거나 전환시켜주지는 않았다.


결국 나는 마주하는 고객들에 나의 미숙한 부분이  보여주는 실수들이 빈번히 하게 되었다. 무언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롤모델을 정하여 따라 해 보자라는 마음을 가졌다. 고민 끝에 그래도 내가 다가가기도 어렵지 않고 매장 직원 중 가장 친절한 응대를 하는 부점장님을 선택하였다. 나는 그리 머리가 좋은 사람은 아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는 끈기가 있는 편이다.


일단 고객 응대에 있어 어떠한 멘트를 하는지를 상황별로 관찰하고 물어보았다. 물론 큰 틀에서 매장 직원들이 숙지해야 하는 매뉴얼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다양한 상황과 여러 변수가 있는 공간인 이곳에서도 자신만의 것으로 변형시키는 응용력이 필요하였다. 그러한 부분에서 부점장님은 상당히 능숙한 능력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멘트를 무작정 먼저 암기하고 따라 해 보았다.



변화의 효과는 확실히 나타났다. 자주 하던 실수가 잦아지고 일어나더라도 나름의 대처능력이 생겼다. 그로 인해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긴장감이 풀리며 표정 또한 좋아졌다. 시간이 지나서는 어느 정도 매장의 평균치 이상의 친절한 직원의 모습이 될 수 있었다. 변해가는 모습에 직원들의 칭찬들도 따라왔다. 강한 성취감과 동기부여가 되었고 더 잘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면 만족스러웠지만 내가 간과하고 있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매뉴얼이라는 업무 있어 유지해야 하는 규칙을 말이다. 성취감과 동기부여가 생긴 나는 조금 더 조금 더 나아지고 싶다는 갈증을 불러일으켰다. 그로 인해 고객과의 교감을 위해 적극적으로 다가가거나 문제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려 하였다. 친절하다는 말들이 차곡차곡 고객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하면서 좋은 인상의 이미지가 심어졌다.


그것이 주는 달콤함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생겼다. 어느 날부터 직원들이 내게 고객들에 대한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혹시 누구 고객님 아시냐 그분에게 어떻게 응대를 했냐는 등등의 말을 물어보았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답변을 하였으나 반복되는 말에 걱정이 들었다. 무언가 잘못된 부분이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부점장님에게 질문의 의미를 물어보았다. 그리고 들은 이야기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나의 친절로 인한 직원들이 괴로움을 받는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지 서비스직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친절함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던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부점장님 괴 대화를 하면서 이유에 대해서 납득이 되고 미안함이 들었다.


하나의 일례를 들어 이야기한 부분은 이렇다. 중고서점은 고객의 책을 매입받아 판매를 하는 시스템이다. 그러기에 손님과 마주하여 응대해야 하는 시간이 상당히 긴 편이다. 그런 과정에서 좋은 교감을 얻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고객이 바라는 자신의 책의 가치와 회사에서 시스템으로 책정된 가치는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 간극이 커지면 클렘임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기에 명확한 매뉴얼이 필요하다.


나는 그 매뉴얼의 선을 직원들 동의 없이 나만의 좋은 이미지를 없이 넘어버린 것이다. 연필로 밑줄이 그어진 책들이 매입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우고 방문하면 가능하기에 고객들에게 충분히 안내를 해준다. 대부분은 납득하고 들고 가서 지우고 방문하거나 번거로운면 폐기를 요청한다. 번거롭게 들고 왔지만 매입불가 판정을 받은 고객들에게 나의 친절함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구두로 원래는 안 되는 부분이지만 제가 지워서 매입해 드릴 테니 다음에는 유의하고 방문해 주세요라고 안내를 했다.


호의였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 그 번거로움을 감수하였다. 하지만 이것에 대해 고객은 호의가 아닌 권리로 생각하였다. 결국 모든 직원들에게 이러한 요구를 했고 나아가서는 매뉴얼로 진행된 등급판정에 불평불만을 하며 개입을 하는 고객들이 나왔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 어떤 직원은 해주는데 당신은 불친절하다는 말을 내뱉고 서비스의 제공 직원의 묘사를 나로 지목하였다.



이러한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직원들은 애써 내게 직접적인 이야기들은 하지 않은 것이다. 매장 사람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은 배가 되면서 더불어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서비스직에 있어 친절함이 중요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적정한 기준을 유지하기 위해 매뉴얼이라는 것을 조직에서 정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무너지면 어떠한 부정적인 영향이 생기는지 미처 고려하지 못한 것이다. 각자 선을 지키면서 그 안에서 자신의 업무를 최선으로 일하는 이들을 일순간 고객들에게 불친절한 직원으로 매도시키게 만든 것이다.


부점장님과 대화가 끝나고 곧바로 직원들에게 찾아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였다. 너무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기에  실수를 하였다고 했다. 그로 인해 피해를 준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너무나 괴롭고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다. 사실 말을 내뱉으면서 조바심이 들었다. 이런 일로 인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의외로 다들 나를 이해하고 토닥여주었다. 알고 있다고 그러한 마음들 다들 한 번씩 겪어본 거고 잘못한 게 아니라고 오히려 묻고 풀어나가려는 의지가 보기가 좋다고 말해주었다. 정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매뉴얼이라는 선의 가치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기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이 순간의 기억이 10년 가까이 서비스직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깨달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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