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뫼비우스의 띠
다사다난이라는 단어가 유독 나의 직장 생활에서는 따라다녔다. 뭐 모든 직장인들의 각자의 사연과 고충들이 쌓인 에피소드들이 있다. 사실 어찌 보면 나의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이야기들이 푸념처럼 누군가에게 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 또한 글을 쓰기 전에는 지나쳐간 좋았던 것을 간직하고자 시작하였다. 하지만 나의 단어가 만들어 낸 문장들의 모음들이 썩 기분을 유쾌하는 만드는 기억들이 아니었다.
의식적으로 자제를 하려 했지만 새어나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냥 한탄에 대한 나의 설움을 풀어내기로 했다. 그것이 오히려 거짓 없는 글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응어리진 것들이 하나 둘 내 마음을 벗어나 세상에 나오니 과거의 미련과 집착이 희석되었다. 그것이 꽤나 나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었다. 아무튼 다시 논점으로 돌아가 다사다난의 꼬리표에 대해 이야기해보고겠다.
야심 차게 이직한 매장에서는 뜻하지 않는 발령을 급작스럽게 받았다. 그렇게 새로운 매장에서는 구성원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이 있었다. 연달아 일어난 에피소드들이 정신 사납게 나를 힘들게 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잠재적 불안감은 두 매장 모두 매출이라는 성적표에서는 낙제점을 받고 있었다. 사실 회사에서는 무엇보다 수익성이 제일 중요한 가치이다. 그를 위해 개선하고 수정하는 것이 관리자의 소임이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어려움을 겪었던 두 매장 다 아쉬운 판단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단 첫 오픈을 한 매장은 인근 도보로 5분 거리에 내가 이전에 근무하였던 경쟁사가 위치해 있었다. 이미 5년 이상을 선점하며 이미지를 각인시킨 적을 넘어서기 위해는 차별성이 있어야 했다. 물론 그에 대한 것들을 대한 인지는 관리자라 불리는 상사들은 하고 있었다. 그리고 선택한 방안은 새로운 세대의 변화의 선두주자로 기존의 중고서점과 새책매장에 중간지점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에는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중고도서 이점은 유지하고 매장의 분위기는 깔끔하고 세련되어 경쟁사와 차별성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미 사장되는 출판 시장과 소비구조가 오프라인보다는 편의성이 있는 온라인에 집중된 것에 이도저도 아닌 애매함만을 보인 판단이었다. 보기 좋은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진열공간은 줄어들고 실용성이 없어 보였다. 더불어 과하게 측정된 인테리어 비용은 경쟁업체들보다 약 2~3배 이상 들어갔다.
돈이 더 투자된 만큼 그것이 고객들에게 확연하게 차별된 느낌을 주면 좋았겠지만 사실 크게 중요하게 느끼는 요소가 아니었다. 오히려 중고매장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낯설고 경쟁사보다 비싼 가격과 적은 장서량에 방문에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였다. 그로 인해 위치상에 이점을 충분히 가지고 앞서나갈 수 있었지만 오히려 밀리는 상황만 발생하였다. 그러한 상태에서 급작스럽게 오픈한 매장 입지는 오판 중 오판이었다.
사실 이에는 비유를 하자면 싼 가격에 물건을 지나가다 보았는데 굳이 필요한 것이 아닌데 가격만 보고 산 것이다. 집중을 해도 모자를 시기에 분산이 된 것이다. 물론 당시에 관리자들은 도전적인 확장이라 포장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실패를 하였다. 두 번째 매장의 입지는 한때는 주목받은 공간이었다. 그래서 꽤나 집값들도 높게 형성되었고 부촌으로 주목받기도 하였던 범주에 해당되었다. 하지만 점차 관심의 중심에서 밀려났고 점차 내리막을 보이는 공간이었다.
그런 곳에 아파트 단지 상가 2층에 매장을 오픈한 것이다. 예전에 스크린 골프장을 하던 곳이라 구조자체가 또 통유리창이나 밖을 볼 수 없는 답답한 공가이었다. 정말 싼 게 비지떡이라고 손을 될 곳도 많았고 고객을 유입시키기에 여간 어려운 요소들이 여기저기 있어 보였다. 이런저런 시도들을 꽤나 해보았던 것 같다. 영업을 하는 동안 식당 홍보 전단지를 돌리는 것처럼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처음은 동네 사람들을 타깃으로 노리면 저렴한 임대료를 상쇄시키면 본전이상을 넘어서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시장파악이 전혀 되지 않았었다. 대부분의 유동인구는 노년층들이 많았고 소비를 하기 위해 움직이기보다는 산책등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었다. 딱 1년을 버텼고 끈기가 모자란 회사는 포기를 하였다. 사실 돌이켜보면 나는 현재의 내가 알고 있는 구조상 유지가 되었다면 그냥 까먹지는 않는 수준이었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연달아 부진한 성적표를 반전시킬 요소들이 나는 분명히 있었다고 본다. 길게 보고 장기적인 프로젝트를 갔다면 터님 포인트의 분기점이 분명 왔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참지 못하였다. 그것에는 이미 과하게 들어간 오픈 투자 비용인 것이다. 빨리 수익으로 마이너스를 메꿔내려 했지만 그것이 가능할 만큼 고객들에게 회사가 구미가 당기는 매력은 없었다.
조급함은 기존의 잘하고 있던 프로모션도 걷어들이고 긴축으로 허리띠를 쪼여들이며 인력감축이라는 쉬운 패를 지어 들었다. 그로 인해 자연스레 더더욱 기대하는 수준은 달성하기가 힘들어진 것이다. 바둑의 자기 수를 다시 두어 두는 것처럼 복기를 해본다. 패배의 악수는 지나친 현장에 대한 권한을 주지 않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였다. 경험의 중요성은 크나 선택을 하는 이는 초심자였다. 오프라인의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보완책으로 중간관리자들은 현장직에 짠 뼈가 있는 인원들로 구성을 하였지만 결국 의견은 무시되었다. 물론 경험이 있다고 모든 판단이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확률적으로나 데이터에 기반한 선택은 그래도 좀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오픈하는 과정에서도 꽤나 실랑이가 있었다. 나름의 의견이 와갔지만 묵인당했다. 결국 결정권자의 독단으로 진행된 방향은 기대되로 나가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피드백으로 수정될 수도 있었진만 실행되지는 못했다. 실패의 원인은 현장에서 플랜을 따라가 주지 못한 것이라 변명하였다. 그렇게 뚝심으로 진행된 고집은 1년 만에 폐점을 만들어냈다. 그 사이에서 다사다난하게 나는 다시 매장을 옮기게 되었다. 이리저리 중간에서 치이면서 들었던 생각이 있었다. 조화라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현장에 목소리가 강해지면 단점도 분명 있다. 그것 중 가장 드러나는 것이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다. 잘되던 것만 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고 유지하려 한다.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독이 되어 조직을 도태되게 만든다. 사실 가장 좋은 것은 현장과 본사 실무에 있는 결정권자가 중간지점을 찾아 치우치지 않게 목소리의 균형이 필요하다. 서로가 수긍하고 반박할 것들은 토론을 통해 생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현실상 무게의 추가 기울어지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그 속에서 밑에 있는 일개미들은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지쳐져 간다. 나의 다사다난함도 이 속에서 일어났던 것 같다. 오픈 그리고 추가 오픈을 1년을 남짓 넘으며 폐점 그리고 다시 떠돌이가 되었다. 폐점 이후 나는 세 번째 매장에서 또 반복되는 문제에 직면하고 고통스러워했었다. 뫼비우스 띠를 벗어나 외부자의 시점에서 바라본 조직 내에 포함된 이들은 여전히 변화되지 못하고 있었다.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의 다사다난은 아마도 퇴사가 되어야 끝이날 것 같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