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교실남 Oct 14. 2023

욕식물이 잘 자랄 수밖에 없었던 이유

"X발!"

"X새끼 X 먹어!"

"뭐라고, 이 XX놈아!"


8년 전, 초임 발령을 받고 잔뜩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4학년 교실에 들어선 나는 아이들의 부정적인 언어습관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말 끝마다 욕설을 하는 아이, 앞에 선생님이 있는데도 습관적으로 욕이 튀어나오는 아이, 친구에게 욕을 배우는 아이 등 총체적 난국이었다.


'이 아이들은 자신이 쓰는 욕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쓰는 걸까?'


반 아이들에게 물어보았다.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는 것의 의미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쓰는 거야?"

"몰라요. 그냥 놀린다는 뜻 아니에요?"


아이들은 자신이 쓰는 욕들이 얼마나 심각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렇게 '욕의 의미'에 대한 수업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사용하는 욕설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이 욕설을 사용하면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까?(역지사지)'를 주제로 수업을 했다.


우선 반 아이들에게 아는 욕설들을 칠판에 다 적어보게 했다. 아이들은 신나서 평소 쓰는 욕들을 마구 썼다.


나는 아이들이 사용한 욕의 의미를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너희들이 자주 사용하는 X새끼 있잖아. 이 욕이 왜 심한 욕이냐면 개는..." 

"가운데 손가락이 의미하는 것은 너희들의 성기를 의미하는..."


"헐~~~ 그럼 우리가 그동안 이런 의미를 가진 단어들을 쓰고 있었던 거예요? 이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순간 충격을 받아 우는 아이도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선생님... 제가 평소에 쓰는 욕들이 이렇게 심각한 뜻을 가지고 있는 줄 몰랐어요. 그동안 이런 말들을 써온 제 자신이 부끄럽고, 욕설을 한 아이들한테는 미안해요."


욕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뒤에,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여주었다. 욕을 사용하면 뇌와 정신 건강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친다는 내용이었다.


이 수업 이후 한동안 우리 반 아이들의 욕 사용 빈도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자, 다시 욕설을 하는 아이들이 늘기 시작했다.


"아~ X발, 오늘 학원 가기 싫네!"

"야, 저번에 선생님이 그 욕의 의미 가르쳐줬잖아."

"아 몰라, X발! 우리 엄마, 아빠도 쓰는데 뭘. 괜찮아."


아이들에게 욕을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니, 90% 이상이 부모님에게 배웠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엄마, 아빠가 자연스럽게 욕을 쓰는 것을 봐왔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본인들도 욕을 자연스럽게 쓰게 되었단다.


우연히도 바로 다음주가 학부모 간담회 시간이었다. 학부모님들께 ppt로 지난번 아이들이 욕설을 적은 칠판 사진을 보여드렸다.


"학부모님~~ 요즘에 우리 반 아이들이 너무 욕을 많이 사용해서, 최근에 욕의 의미에 관한 수업을 했는데요. 수업 시작할 때, 아는 욕에 대해서 적어보라고 하니 칠판에 이렇게 신나게 욕을 적더라고요. 근데 아이들에게 물어보니, 이 욕들은 대부분 부모님에게 배웠다고 하더라고요."


학부모님들께서 민망한 듯 웃으셨다.


"아이들은 부모님의 거울입니다. 부모님이 하는 것을 아이들은 당연한 듯 그대로 따라 합니다. 가정에서 언어사용에 각별한 주의 부탁드립니다. 저도 아이들이 바른 언어를 사용하게끔 노력하겠습니다."


학부모님들께 당부의 말씀을 드렸다.




그때 당시 한창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이 유행했다. 예쁜 말을 들은 물의 결정은 예뻐지고, 나쁜 말을 들은 물의 결정은 못생겨진다는 '바른말을 쓰자.'라는 교훈을 담은 유사과학 책이었다. 이 책의 이론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각종 교사 연수에도 등장할 만큼 각광받고 있었다. 나 또한 식물로 실험을 했더니, 고운 말을 사용한 식물은 잘 자라고 나쁜 말을 사용한 식물은 잘 자랐다는 연수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반에서도 한 번 실험을 해보면 좋을 것 같았다.

"얘들아, 오늘부터 실험을 해볼 거야. 여기 욕식물과 칭찬식물이 있어. 욕식물한테는 너희들이 평소 마음에 담고 있던 욕이나 나쁜 말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줄게. 그리고 칭찬식물한테는 평소 칭찬하고 싶었던 친구나 주변 사람에 대해서 칭찬하거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칭찬해도 돼. 대신 욕식물이 칭찬을 칭찬식물이 욕을 못 듣게끔 조심해야 해! 서로 멀리 떨어뜨려놓자."


욕식물과 칭찬식물


변인통제를 위해 물은 3~4일에 한 번씩 똑같이 주고, 햇볕의 양도 비슷하게 들어올 수 있도록 자리를 배치하기로 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선생님! 뭔가 이상해요. 여기 와보세요!"


칭찬식물이 노란빛을 띠며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반면 욕식물은 처음 사 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파릇파릇 잘 자라고 있었다.


한 아이가 질문을 했다.

"선생님, 근데 실험 결과를 보면 칭찬식물보다 욕식물이 더 잘 자라고 있잖아요. 그럼 욕을 더 많이 써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욕을 더 많이 써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아이의 예리한 질문에 당황해서 얼버무렸다.

"에이... 무슨 소리야? 욕은 당연히 쓰면 안 되지. 근데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이따가 학급회의 때 같이 의논해 보자."



학급 회의 시간에 반 아이들과 함께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에 대해 분석을 했다. 


상황은 이랬다. 매 번 쉬는 시간마다 욕식물 앞에는 합법적으로(?) 욕을 하려는 아이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반면 안타깝게도 칭찬 식물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또한 욕식물이 좋아서 당번일에 칭찬식물이 아닌 욕식물에게만 물을 준 아이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몇 달간 지속이 되었고,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들이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 인간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 더 잘 끌린다. 합법적으로(?) 욕을 할 수 있기에, 반의 많은 아이들은 칭찬식물보다 욕식물에 훨씬 더 관심을 많이 가졌고, 아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욕식물은 잘 자랄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변인통제(물을 동일하게 줌)가 잘 되지 않았다.



'식물이 잘 자라려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험에는 변인통제가 필요하다.'라는 원래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교훈을 얻고 우리의 실험은 끝이 났다.


안타깝게도 실험 결과 때문인지 그 뒤로 욕을 사용하는 아이들은 계속 있었다고 한다. ㅠ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