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우리 학교는 일주일에 1번은 1학년 체육 수업에 들어가셔야 해요."
재외한국학교에 처음 왔을 때 놀란 점은 담임교사도 전담 교사를 병행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주변에 저학년 아이들을 맡아줄 만한 시설이 많지 않아 이곳에서는 1~6학년 학생들 모두 7교시까지 수업을 했다. 그리고 체육, 음악, 미술 전담 선생님들은 중등 선생님이었는데, 이분들이 중등의 수업도 해야 했기에 초등의 예체능 수업시수가 부족했다. 7교시 수업으로 인한 전체적으로 늘어난 시수(특히 저학년 시수)와 부족한 초등 예체능 시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몇몇 담임 선생님들은 전담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경우 첫 해에는 1학년 체육 수업을, 다음 해에는 2학년 음악 수업을 담당했다.
2025년 첫 발령을 받은 뒤로 난 항상 4~6학년 고학년만 가르쳐왔기에, 1학년 수업이 매우 긴장되었다. 그동안 1학년을 가르쳤던 경험은 교생 실습 때와 가끔 보결 수업을 들어갔을 때 밖에 없었다.
역시나 첫 수업부터 멘붕이었다. 내가 말 한마디를 하면 1학년 아이들은 거기다 말을 3~4마디씩 얹었다. 고학년과 다르게 이미 들었던 말을 까먹고 또 반복해서 질문하는 경우도 많았다.
"얘들아, 오늘은 이어달리기해 볼 거예요. 자, 여기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 서볼게요."
"선생님, 오늘 뭐해요?"
"달리기 할 거예요."
"(잠시 후 다른 아이가) 선생님, 오늘 뭐해요?"
"(인내심을 가지고) 이어달리기할 건데, 일단 줄 좀 서볼래?"
"(또 다른 아이가) 선생님, 오늘 뭐해요?"
"(마음속에 참을 인을 새기며) 방금 선생님이 이어달리기한다고 했잖아. 줄부터 빨리 설게요."
몇 번 수업을 해보니, 왜 1학년 담임은 꽤 경력이 있는 선생님들이 하시는지 이해가 되었다. 새삼 저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워졌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체감상 1분도 안 되는 느낌이었다. 조용히 하라고 하면 대답은 "네!"하고 크게 하면서 몇십 초 후면 다시 시끄러워졌다. 더군다나 우리 학교 1학년에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이 많았는데, 그중 한국말을 아예 못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내가 중국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기에, 수업 진행이 매우 힘들었다. 몇몇 똑똑한 아이들이 옆에서 통역을 해주었으나, 통역하는 아이들 또한 수업 집중력도 낮고 말을 잘못 전달하는 경우도 있었다. 때문에 학기 초반에는 처음 수업 시작하고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고 수업 분위기를 잡는데만 5분 이상이 걸렸다.
1학년 수업을 시작한 지 1달 정도 지나니,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저학년 아이들을 다루는 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저학년은 확실히 고학년 아이들과 특성이 달랐다. 고학년 아이들은 엄한 분위기를 잡고 단호하게 말을 하면 바로 알아듣는데, 저학년 아이들은 분위기 자체를 읽을 줄을 몰랐다. 엄한 분위기에 잠시 긴장을 했다가도 몇 분 뒤면 금세 풀어지는 게 저학년 아이들이었다.
수업 분위기를 엄하게 잡는 대신, 아이들과 함께 수업 규칙을 만들어서 지킬 수 있도록 했다.
"얘들아, 너희들 중에 몇몇이 중간에 시끄럽게 하고 계속 수업 방해를 하면 재미있는 체육을 할 수 있을까?"
"아니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시끄럽게 하면 안 돼요."
"근데도 시끄럽게 하는 친구들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선생님, 그 친구들은 잠깐 동안 게임에 참여 못하게 하는 건 어때요? 그러면 우리는 재미있게 체육을 할 수 있어서 좋고, 시끄럽게 하는 친구는 체육 하고 싶어서 결국에는 조용히 할 걸요?"
"오, 좋은 아이디어인데? 그래도 괜찮겠어?"
"저희가 말 잘 들으면 되죠. 그렇게 해요."
신기하게도 초반에 금쪽이 몇 명이 수업 규칙을 어기다 벌칙을 받고, 즐거운 체육 수업시간에 참여를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직접 체감하고 나서부터 아이들의 금쪽이 행동은 급격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저학년 수업을 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수업시간에 뭘 해도 아이들은 즐거워한다는 것이었다. 그냥 달리기를 해도, 점프를 해도, 줄넘기를 해도 아이들은 뭐든지 호기심을 가지고 즐겁게 참여했다. 이 아이들에게는 대부분이 새롭게 경험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칭찬이나 피드백을 주면 바로바로 하는 반응들도 너무 귀여웠다. 예를 들면, 수업을 하다가 "우와, 00이 달리기 엄청 빠르네." 혹은 "우와, 00이 아까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너무 잘하는데?"라는 식으로 칭찬을 하면 기분이 좋아 온몸을 들썩이며 더 열심히 체육활동을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학기가 되자 확실히 수업이 안정화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적응하고, 한국말이 안 되던 아이들이 한국말이 는 이유가 컸다. 이전에는 내가 말을 하면 20~30% 정도 입력이 되었다면 이제는 아이들이 내가 말을 하면, 60~70%는 입력이 되는 수준이 되었다.
1년 동안 이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어, 그다음 해 또한 이 아이들의 수업을 담당하기로 했다. 다만 이번에는 체육 수업이 아닌 음악 수업이었다. 예전과 달리 각자 개인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에 어떻게 해야 이 친구들을 수업에 집중시킬 수 있을지 어느 정도 노하우가 있었다.
"자, 지금부터 제일 바른 자세로 앉아있는 수업태도 좋은 친구부터 발표시켜 줄게요."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먹이를 기다리는 아기새처럼 선생님을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아이들)
"이번에는 제일 귀여운 표정을 한 친구부터 발표시켜 줄게요."
(각자의 필살기를 선보이며 치명적인 매력을 보여주는 아이들)
발표를 해도 소극적인 고학년 아이들과는 달리 서로 발표를 하고 싶어 안달나 있는 매우 적극적인 저학년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수업의 큰 재미였다.
마치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 나오는 조르바처럼 저학년 아이들은 현재를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예를 들면 음악을 틀면 한 명이 신이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 춤을 추고, 그 엉덩이 춤을 보고 신이 난 아이들이 또 일어나 춤을 추고, 결국엔 모든 아이들이 일어나서 춤을 추는 모습도 자주 있었다. 그냥 틀어준 음악 하나에 말이다. 덕분에 음악 수업은 항상 교사인 나도, 학생도 항상 즐거운 수업이었다.
"선생님, 음악 수업이 제일 재미있어요. 너무 즐거워요."
수업 중에서 음악 수업이 제일 재미있고, 매주 음악 수업하는 날만 기다린다는 아이들의 얘기를 들으면 절로 흐뭇해지고 뿌듯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