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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봉오리 May 07. 2024

비인간에게도 ‘전쟁 없는 세상’을



동동이를 묻은 지 사흘 째 되는 날, 비가 쏟아졌다. 여름 장마인가 싶을 정도로 거세게 내렸다. 재개발 구역 ‘당번’이지만 귀찮음이 밀려왔다. 그러다 문득, 동동이의 무덤 위 흙이 쓸려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장우산을 쓰고 짐을 챙겨 재개발 구역에 갔다. 첫 번째 급식소에 갔다. 역시나, 아무도 ‘출석’ 하지 않았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누가 나오겠나.


짐을 들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댕댕이와 그의 동생 콩콩이가 폐가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다.



사흘 전, 엄마 동동이가 죽은 후, 댕댕이는 변했다. 식탐이 과했던 그는 나에게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았고, 간식을 내미는 나를 피하기까지 했다. 동생인 콩콩이만 간식을 조금 먹었다.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걸어가며 보이는 풍경에 속이 부글거렸다. 전 세계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는 전쟁 지역의 모습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전쟁 없는 세상, 평화. 그런 말에 비인간의 평화는 없다. 탱크 앞에 국화꽃을 놓는 것은 상상할 수 있지만, 분양 홍보지 앞에 애도하는 인간은 없을 것이다.



비가 쉬지 않고 내렸다. 다른 고양이들도 나오지 않았다. 무너진 잔해들만 보였다. 여기서 일어나는 전쟁은 왜 ‘전쟁’이 아닌 걸까.



다행히 동동이의 무덤은 그대로 있었다. 그래도 불안한 마음에 위에 돌을 얹었다. 동동이가 먹고 가라고 둔 사료는 비에 젖어 퉁퉁 불어 있었다. 눈을 감고 동동이를 만났던 날들을 떠올렸다.


‘동동이는 매년 한 달 정도 얼굴 보기가 힘들다.

6년 동안 항상 그래왔다.

사라져 가는 너의 세상을 보기 힘들었던 걸까 ‘

(재개발구역 돌보미 인스타그램)



동동이는 삶의 반 이상을 ‘전쟁 통’ 속에서 산 셈이다.

그는 전쟁의 생존자이자, 피해자였다. 집이 무너지고, 공포에 몸을 숨겨야 했을 그가 이제는 정말로 전쟁 없는 세상에서 편안하기를. 그리고, 아직 전쟁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전쟁의 피해자’로 여겨지는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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