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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Dec 04. 2021

미완

마늘단편 - 맛없는 맛집 소설






"좀 부조리하지 않아? 누군가는 이 김치 하나를 만들기 위해 많은 시간 조리를 하고 숙성을 시키고 포장을 해서 판매를 한다구. 그리고 그 김치를 받은 이런 레스토랑에서는 여러 시간 동안 연구를 하고 조리를 한 뒤 테이블에 내놓잖아."

흰색 접시에 예쁘게 담겨 나온 김치를 보고 그녀는 말했다. 토니가 수석 주방장으로 있는 비엔나 그랜드호텔의 르씨엘은 요즘 다양한 한국의 식재재들을 가지고 실험적인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디너 8코스 중 세 번째로 나온 이 김치요리도 한국사람들이 맛을 본다면 고개를 절레절레할 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오스트리아인이나 주변의 유럽인들에게는 제법 반응이 좋아 여러 언론에도 노출이 돼 인기를 얻고 있는 중이다. 원래 예민한 그녀란 건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심드렁한 말에 지금 이 시간부터 한동안은 그녀의 잔소리를 피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런데 뭐가 문제인 거지?"

나의 물음에 그녀는 테이블 위에 있는 김치와 페어링 된 레드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아니, 이거, 제정신이야? 매운맛이라고는 거의 없는 백김치 같은 김치에 이런 산미가 강한 레드와인을 페어링 하다니. 여기 소믈리에 누구야. 거 참 마음에 안 드네."

'맞다. 그녀는 그냥 모든 것에 화를 내고 싶어진 거였다. 이럴 때는 그냥 적당히 고개도 끄덕이고 옹호도 하며 잘 버텨내면 된다.'

"당신, 너무 쉽게 돈을 번다고."

나는 좀 놀랐다. 하지만 이럴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응? 무슨 말이지?"

그녀는 앞에 있는 김치요리를 남김없이 먹고 난 뒤 말을 이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김치를 만들어 낸 사람들이 돈을 얼마나 벌 것 같아? 한 달 중 이삼일 쉬어가며 마늘냄새에 쩌들고 계속 앉아서 김장을 해대도 한 달 연봉이 3000불도 안될걸? 그런데 말야. 당신을 봐봐. 당신은 기껏해야 하루 종일 뒹굴대다가 두세 시간 주식과 코인 장을 보고 클릭 몇 번 하는 걸로 그들의 몇 십배를 벌잖아. 이렇게 평일에 나와 비엔나의 파인 다이닝에서 느긋하게 식사도 할 수 있고 말이야."

 대부분이 맞는 말이기에 달리 할 말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냥 수긍하고 넘어가면 그녀는 더 화를 낼 것이 뻔하고 다른 일들로도 트집을 잡기 시작할 것이다. 이럴 때는 적당히 반격해주며 그녀의 화를 살짝 돋워 주기만 하면 된다.

"그러게, 나도 당신과 비슷한 생각은 많이했다구.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해. 그냥 적당히 오르겠다 싶은 종목에 적당히 돈을 넣었다 뺐다 하면 어느새인가 돈이 불어나 있다구. 하지만 어쩌겠어. 나도 그냥 하다 보니 그렇게 되는 걸."

그녀는 바로 나의 말을 끊고 들어왔다.

"어이구, 어이구, 또 잘난 체. 그럼 열심히 분석해서 주식을 하고 코인을 하는 사람들은?"

"아, 아. 나는 이미 신께 충분히 감사하고 있다구. 그래서 돈도 버는 족족 펑펑 쓰잖아. 이번 달 수익으로난 십만 불도 한 달 중 이 십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팔만 불을 써버렸다구. 사고 싶었던 카약도 사고, 최근에 오픈한 gym의 단기 회원권도 끊고, 슈테플 몰에서 이번 시즌 질산더 슈트와 런던에서 수제화로 유명한 톰슨 씨가 만드는 가죽구두까지 맞췄다구. 마리아힐퍼의 작은 화랑에서 신진 아티스트들의 작업도 몇 개 구입하고 말이지."

"또 잘난 체, 또 잘난 체. 그래서, 당신이 번 돈을 펑펑 써대는 것이 이 사회가 잘 돌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말을 하려는 거야?"

사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그녀와 수도 없이 해왔다. 하지만 오늘의 그녀는 다른 때 보다 좀 예민해 보였다.

'조심하자. 조심해야 한다.'

"그렇긴 하지. 뭐 딱히 저축할 필요도 없고, 벌리는 족족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삶이라도 당신이 이야기하지 않았던가? 나는 그런 말을 해주는 당신이 고맙고 그래서 당신과 오늘 여기서 저녁을 먹고 있잖아. 뭐, 오브리앙이라도 한 잔 할까? 이번 달에 번 돈 중 아직 이십만 불 정도가 남아있다구..."




마완.

작가 카드를 발급받기 위해 억지로 올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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