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오래간만에 새 카메라를 산 나는 신이 났다. 20년간 사진을 꾸준히 찍어오면서 그 누구보다 사진을 못 찍기로 유명했던 나는 카메라만큼은 좋은 카메라를 구입해왔다. 이유는 사진을 못 찍기 때문에 카메라라도 좋으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좋은 사진이 찍힐 것이라는 기대심리 때문에. 새 카메라를 구입한 나는 박스에서 카메라를 꺼내자마자 메모리카드와 배터리를 빠르게 넣은 뒤 바로 근처에 있는 크리스티안 하운으로 나갔다. 마침 주말이었던 그때, 많은 가족과 연인들이 코펜하겐을 대표하는 예쁜 운하에서 따뜻한 햇살과 바닷바람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보란 듯이 나의 새 카메라를 그들에게 들이대며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좋은 날씨와 근사한 디자인의 새 카메라 탓인지 사람들은 흔쾌히 나의 앵글 안에 들어와 주었고 나는 정신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사진을 찍고 난 뒤 나는 그들에게 이메일을 요구하며 나중에 사진을 pc에 옮기면 보내주겠노라고 약속을 하였다. 하루 종일 사진을 찍은 난 무척 피곤했고, 그래서 집에 돌아오기 전 가볍게 해변가에 있는 노르딕 요리 전문 카페에 들려 샌드위치에 시원한 맥주를 곁들여 마시고는 바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조금 정신을 차린 난 나의 새 카메라에는 어떤 사진이 찍혔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집 근처의 작은 거리에 있는 케밥집에서 밤샘 작업을 하며 먹을 케밥과 하프 보틀의 와인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마지 나는 내 컴퓨터를 켜고, 메모리 스틱에 메모리카드를 꼽아 넣었다. 그리고는 일단 사진을 컴퓨터로 옮겼다. 덴마크의 시큼한 레드와인을 홀짝홀짝 마시며 오늘 찍은 사진들을 보기 시작했는데, 무척 아름다운 금발을 가진 미모의 쿠바 여성부터, 사귄 지 얼마 안 되었다는 파리지앵 커플, 코펜하겐을 여행 중인 가족, 단 한 번도 연애를 해본 적 없다는 더벅머리 큰 코의 한 아저씨 등등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들의 사진은 잘 나왔다. 난 조금이라도 빨리 내가 멋지게 찍은 그들의 사진을 그들에게 보내주고 싶었다. 나는 바로 핸드폰으로 가볍게 스케치를 해둔 그들의 사진과 그 위에 써둔 이메일 주소를 맞춰가며 그들에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오늘을 위해》라는 메시지와 함께 사진을 보내주었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열린 창문으로 들어오는 발트해의 바람과 세찬 비가 내 얼굴을 적셔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잠에서 깬 나는 전 날의 행복한 기억 때문인지 바로 컴퓨터를 켰다. 그들이 사진을 잘 받았을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내 이메일함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메일이 와있었다. 나는 하나씩 차근차근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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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4일 6:17 이메일함.
[세상에나, 이렇게나 멋진 사진 감사합니다. 저는 평생 더벅머리 들창코로 살아왔지만 불편함 없이 살아왔습니다. 단, 하나 아쉬운 건 이런 외모 탓인지는 몰라도 평생 여자 친구 한 번 사귀어 본 적이 없었다는 거죠. 그런데 어제 작가님께 사진을 찍히고 난 뒤 하운 뒤 쪽의 아이스크림집을 갔는데 어휴, 정말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처음 봤어요. 아마 그 아이스크림집에 있는 남녀노소 모두 그녀만 보고 있었을 거예요. 남자들의 그녀를 보고 벌린 입으로 파리가 왕래했고 그들이 흘린 침으로 아이스크림집과 하운이 이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말이죠, 그 여자분과 제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 금발머리의 푸른 눈을 가진, 저보다 키가 큰 그, 그 여자가 내게 다가오는 겁니다. 그리고는 제게 이 곳에 사냐고 묻더군요. 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제 팔을 잡고는 어디든 함께 가자고 하더군요. 모두의 시선이 제게 쏠렸고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쭐대는 마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지금 작가님께 이메일을 쓰고 있는 지금 제 책상 뒤에 그녀가 누워 있다는 거죠.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특별했던 일은 작가님이 제 독사진을 찍어 준 일밖에 없던걸요.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조만간 저희 커플... 의 사진도 찍어주실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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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4일 6:47 이메일함
[아... 안녕하세요. 사진은 감사합니다만 원본 사진도 삭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아, 사실은 어제 사진에 찍히고 난 뒤 클럽에 갔는데 그 망할 놈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었던 거예요. 7년이나 연애했었는데. 그 핫하다는 클럽에서 그 미친 연놈들과 머리를 잡고 1시간 동안 싸우다가 경찰서에 들려 지금 돌아와 이메일을 확인하고 바로 답장 보냅니다. 7년의 세월이 야속하긴 하지만 앞으로 그 새끼를 만날 일은 없을 거예요. 죄송하지만 사진은 바로 삭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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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4일 8:23 이메일함
[이메일 주소를 드렸던 가족여행 왔던 가족 중 아들입니다. 사진 감사합니다. 오늘 새벽 뉴스를 보셨는지 모르겠네요. 어제 크리스티안하운에서 출발해서 발트해 바다를 둘러보는 미니 유람선이 전복되어 10명이 실종되었다는 기사요. 저희 가족이 그 배에 타있었네요. 물을 무척 무서워하던 저는 하운에서 기다리고 있던 탓에 지금 우리 가족의 생환을 아직까지도 이 하운의 작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제발 우리 가족이 살아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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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십 통의 이메일을 확인하며 공통점 한 가지를 발견했다. 그것은 내 카메라에 찍힌 사람들은 사진 속에서의 상황과 미래의 그들의 실제 상황, 인간관계가 반대로 변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내 사진 속에서 행복한 연인은 사진에 찍힌 이후 헤어지게 되고, 우울하게 사진에 찍힌 싱글은 연인이 생기고... 그래서 나는 이런 상황을 만드는 카메라를 청개구리 카메라라고 이름을 붙인 뒤 한동안 비밀의 청개구리 카메라 작가로 활동을 했다. 나의 블로그와 다양한 소셜 등에 <당신의 삶을 바꾸어 드립니다!!!>라는 카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을 바꾸었고, 아니 지금까지도 바꾸고 있다. 그중에는 부모에게 학대받거나 알코올 중독에 빠진 부부 등도 있었다. 앞으로 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이 곳에 풀어내 볼까 한다. 혹시라도 내 카메라에 사진이 찍히고 싶은 분들은 언제든 쪽지, 이메일, DM을 주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