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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 Nov 07. 2020

눈뜬장님

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나는 주먹이 너무 빨라 마하 펀치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빠를 뿐만 아니라 그 정확도와 파괴력도 상당해서 밤길 거리 치한들에게 놀림을 당하는 사과머리에 눈이 찢어지고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작고 아담한 여자 대학생을 위험에서 구해준 적도 있다. 물론 이후 사례금도 두둑이 받고 더 변태스러운 행위도 저지르긴 했지만. (우리는 잠시나마 연예를 했다) 이렇듯 어디 내놔도 큰 손색없이 멋진 내 주먹에도 아무에게나 쉽게 말 못 할 치명적인, 무척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먹을 바르게 쥐지 않으면 속도와 파워, 그리고 정확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언젠가 나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시비를 걸어오던 깡패들을 손바닥으로 내리친 적이 있다. 보통 나에게 이 속도의 주먹을 맞으면 한 번에 길바닥에 구르고 굴러서 굼벵이처럼 집까지 굴러갈 그 형들은 아무런 대미지도 받지 않고 바로 내 양팔을 잡고 눕힌다음 밟기 시작했다. 펀치만 강한 나였기에 팔을 제압당하면 이겨낼 수가 없었다. 이후 복수하기 위해 그들이 떨어져 있을 때 딱 한 발씩 뒤에서 펀치를 몰래 날려 그들을 기절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눈뜬장님이라는 별명을 가진 친구를 알게 되었다. 이 친구가 이런 별명을 가진 이유는 역시 나만큼 단순한 이유였다. 그가 안경을 벗으면, 눈이 부셔서 선글라스를 두 겹으로 써야 할 정도로 밝은 빛의 투명한 피부가 훤히 드러났고 엄홍길 대장도 오르기 힘들 정도의 콧날은 물론 사슴들이 무릎을 꿇고 청혼을 할 정도의 눈망울 등 어마어마한 외모가 도드라지게 드러났다. 이로 인해 많은 이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 왔지만 정작 본인은 시력이 무척 나빠서 안경을 벗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뿐더러 정신상태마저도 종교인들이 울고 갈 무념무상, 물아일체의 경지에 올라 성욕이 -200% 의 상태에 다다른 다는 것이다. 사실 그가 큼지막한 뿔테 안경을 쓰고 있을 때는 그의 외모가 신기하게도 그의 안경에 가려져서 그를 지나가는 그 어떤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을 평범한 외모로 보였다. 그렇게만 놓고 보자면 확실히 내 쪽의 능력이 그나마 쓸만한 것 같기도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서로가 아는 우리의 능력에 관한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며 우정을 돈독히 쌓아 나아갔다. 몇 달이 지났을까, 대부분의 청춘들이 그렇듯 우리의 우정은 금이 가기 시작했는데 그 시작은 반짝 빛이라는 별명을 가진 여자 아이가 끼어들면서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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