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늘 Nov 11. 2020

어떡해

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그의 옷장에는 포켓 하나 안 달린 심플한 검은 티셔츠 10장이 늘 깨끗하게 접혀 있다. 검은 티셔츠를 유독 좋아하는 그는 그 티셔츠들을 언제 샀고, 언제 버렸는지를 죄다 기억할 정도로 그것들에 집착하는 편이다. (보편적으로 가장 잘 입는 검은 티셔츠는 weekday에서 구입을 해왔다. 가장 최근에 구입한 것은 스페인 예테보리의 매장에서 2016년 6월 14일에 구입을 했다. 가장 아끼는 마르지엘라의 티셔츠는 2017년 4월 3일 런던의 헤럿 백화점에서 구입을 했다. 꼼 데 가르송의 티셔츠는 2018년 3월 8일 아오야마에서 구입을 했고 (플레이 라인은 꼼 데 가르송이라 부르지 않는다.) , 질 산더의 티셔츠는 2018년 2월 7일과 4월 2일에 구입을 했다. 유니클로 ut 검은 티는 2018년 5월 7일 하라주쿠 매장에서 구입을 했다.) 신년을 맞이해서 뭔가 재미난 이벤트를 생각하던 중 그는 그의 검은 티셔츠 관련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 블라인드 테스트란 와인이나 음식들을 눈을 가리고 맛을 보게 한 뒤 그 브랜드나 상표 등을 맞추는 일종의 게임 같은 것이다. 그는 전 세계에 팔로워가 제법 많은 개인 소셜이 있었다. 그 소셜에 랜덤 하게 그가 가지고 있는 검은 티셔츠 중 한 벌을 입고 팔로워들에게 그 검은 티셔츠의 브랜드와 언제 산 건지를 맞추는 게임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그는 바로 실천에 옮겼다. 이름은 <검은 티셔츠와 함께 여행을!!!>. 상금은 문제를 낸 다음날까지 정답을 맞히는 사람들에 한해서 그가 혹은 그녀가 원하는 나라를 1,000만 원 한도 내에서 (경비는 그가 제공한다.) 그와 함께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이벤트 공지를 그의 자랑스러운 소셜에 밤 12시 정각에 올리고는 잠이 들었다. 설마 맞출 사람이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다음 날 그의 퀴즈 <검은 티셔츠와 함께 여행을!!!> 에는 약 만개 이상이 댓글이 달려 있었다. 설마 하며 그는 그것들을 꼼꼼히 읽었다. 당연하겠지만 댓글 중 거의 대부분은 정답을 맞히기 위한 댓글이었다. 그는 그것들을 모두 읽느라 3일이 걸렸고 그중 정답이 500개나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설마 하고 당첨 인원을 써놓지 않은 것이다. 이 당첨자 500명은 당연히 상금 (그와 함께 1000만 원 상당의 경비로 여행을 하는 것)을 가져갈 권리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뇌를 세탁기에 집어넣었다가 빼도 이 500명을 여행시켜줄 경비는 그에게 없었다. 조금 더 당첨자 발표를 지연시키다가는 어마어마한 악플들이 달릴 것 같고 과연 그의 운명은?     







이전 08화 아버지와 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