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단편 - 걸어야 보이는 더 많은 것들
내가 아직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는 이유는 순전히 우리 할머니 때문이다. 우리 할머니의 별명은 백억 할머니다. 이런 별명이 붙은 이유는 단순했다. 할머니의 집에는 전면이 투명한 작은 유리함이 있는데 그 안에 실제로 현금 백억이 마치 예술작품처럼 전시되듯 들어있다. 마치 라스베이거스 올드타운에 있는 프리몬트 호텔의 100만 불 상자처럼 말이다. 이미 삼십 년도 넘게 그래 왔으니 지금은 상자 안에 있는 삼십 년 된 만 원권 지폐의 가치도 많이 올랐을 것이다. 보여지는 현금만 그 정도. 가지고 있는 부동산과 주식, 채권 등을 합치면 수천억 원 이상을 가지고 있는 슈퍼부자 할머니다. 5대 독자인 나는 이 부자, 아니 슈퍼 부자 할머니 밑에서 열 살 때부터 혼자 자라왔다. 내가 초등학생 때 나의 부모님은,
"돈이라면 지긋지긋해요. 이렇게 돈의 노예, 그리고 당신의 노예처럼 사느니 우리는 차리리 뉴욕의 거지가 되겠어요."
라고 말하고는 정말 뉴욕으로 가셨고 정말 거지가 되셨다. 그래도 일 년에 서너 번 크리스마스와 명절 같은 때는 두 분이 늘 엽서를 보내오셨는데,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다오.'
라돈가,
'빙산의 일각은 곧 빙하기가 올 거니 펭귄을 찾아라라던가',
'고속버스를 탔지만 총알택시 속도로 달려서 머리가 벗어졌지 뭐니. 허허허'
등 의 얼토당토 하지 않은 문장들의 조합으로 만들어진 글을 보내오셨다. 난 처음에는 그것이 할머니의 눈을 피해 나에게 보내는 어떤 암호 아닐까? , 라는 생각에 탐정학원 같은 곳을 다니기도 했지만, 십 년이 지난 지금은 부모님이 늘 보내는 편지와 나의 이런 상황에 대한 관심도 끊게 되었고, 나를 버리고 간 어머니와 아버지에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도 더 이상 궁금하지 않았다. 우리 백억 할머니는 열 살 때부터 나를 돈으로 길들이셨다. 물론 나이에 따라 조금은 달랐지만, 평균 일주일에 백 만원씩, 그리고 분기별로 천 만원씩 용돈을 주셨다. 일 년이면 일억 가까운 돈이 모였고, 차나 그 외 사고 싶은 것들은 대부분 이삼 년만 모으면 살 수 있었다. 할머니가 용돈을 주는 조건은 단순했다. 단순한 미션들을 나에게 주고 내가 그것을 해결하면 약속된 용돈을 주었다. 이를테면 고등학교 때, 무리되지 않는 적당한 수준의 성적, 일주일간 친구들과 안 싸우면, 근처 문방구 아줌마와 친해지기, 농구 슛을 500개 넣기, 이성과 키스하기 등이었고, 대학교 때는 외국으로 봉사활동가기, 건물 주변 청소하기, 여자 친구와 성관계 횟수 보고 등등이었다. 일주일 미션들이 대부분 간단하고 쉬워서 난 할머니가 주는 용돈을 놓치지 않고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몇 해전부터 할머니는 기본 용돈 외에 더 큰 용돈을 주시기로 하고 그것에 상응하는 더 큰 미션을 주셨다. 그 용돈의 액수는 무려 3억, 그리고 그 미션은 바로 결혼하고 싶은 여자 데려오기다. 이미 전 세계에 소문난 사랑꾼인 나는 사랑에 쉽게 빠지고 사랑에 쉽게 질렸지만 어릴 때부터 할머니에게 훈육된 사람 좋은 매너로 주변에 좋은 여자 사람 친구들이 많았다.
★백억 할머니 배★
3억 용돈 받기 페스티벌.
자신 있으신 분은 신청하시라. 참가비는 30만 원. 중간탈락 시 참가비는 돌려주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