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반지의 여행기_반지가 나에게 오기까지.
태어나기를 금으로 태어났으니 좋은 가문의 자녀로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반짝이고 작은데 비싼 금. 어디서나 나를 가진 사람의 자랑이 되는 금이 되고, 많은 금들이 모인 자리에서 단연 으뜸이 되는 금이 되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열을 견기고 망치질도 견디고 나를 다듬는 거친듯 섬세한 손길을 견뎌냈다. 나를 뜨겁게 바라보며 이리저리 돌려보는 이 사람의 눈을 보고 확신했다. 나는 엄청 대단한 물건이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 사람의 손길로 나와 하나 된 친구도 생겼다. 하얗고 투명한 아이. 너무나 투명해서 순수하고 그래서 정이 갔다.
나를 단련한 그 사람의 자신감과 열의가 가득한 눈과 투명한 친구까지 얻게 되니 자신 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누구의 손에 가더라도 가장 으뜸이 될 것이다. 화사한 불빛이 나를 더욱 빛나게 해주는 곳에 도착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내가 도착한 곳은 꾀나 이름 있는 도시의 주얼리 샵이었다. 그리고 그 주얼리샵에는 나와 비슷한 모양과 내 친구와 비슷하거나 완전히 다른 친구들과 함께하는 동족을 만났다.
어리둥절했고 신기했으며 얼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안녕?"
"오 네가 새로 들어온 반지구나?"
"나?"
"응 너."
"나같은 모양을 반지라고 해?"
"응 우리는 사람들 손가락에 끼워지는 반지야. 저쪽에 얇고 길게 있는 애들은 목걸이고, 저쪽 벽에 걸려서 두개가 똑같이 쌍을 이루는 것을 귀걸이라고 해. 그리고 목걸이보다는 짧은데 굵기도 모양도 다양한 애들이 팔찌"
나는 그 어떤 반지보다 반짝이며 신기해했다. 나는 반지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너무나 기뻤다.
"반지는 손가락에 끼워지는게 무슨 의미야?"
"그래 네가 처음 들어왔으니 모르는게 당연해. 저어 쪽 언덕에 혼자 있는 반지 보여?"
"응"
다른 반지가 이야기를 한 곳을 바라보니 정말 하나의 반지만을 위한 언덕에 위풍당당히 자리를 잡고 앉아 샵의 조명을 다 받고, 받은 조명을 사방팔방 반사시키고 있었다.
"쟤도 반지인데, 쟤는 다이아몬드인가. 그래서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할 때 하는 반지래. 엄청비싸."
"우리는?"
"우리? 옆에 봐봐 이쪽 저쪽 위 아래. 반지 엄청 많지?"
"응"
"우리는 그냥 반지야."
"나도 쟤 다이아몬드처럼 투명한거 있어"
이때 위쪽 아래쪽 왼쪽 오른쪽에서 본인들도 투명한 것은 있다며 왁자지껄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가 제일 엄청난 반지인 줄 알았는데 샵에 들어온 첫날. 내 꿈은 산산히 부서졌다. 왠지 시무룩해져 있는 나에게 이 모든 이야기를 들려준 반지는 실망하지 말고, 정말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그게 행복이라고 했다.
"여기서 그런 사람을 못만나는 반지도 있어?"
"응. 여기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결국은 주인이 다른 디자인으로 바꿔야겠다면서 다시 회사로 보내. "
"회사? 나는 회사에서 안왔어. 나를 엄청 열정으로 만들어준 사람이 있는걸"
"네가 갓 태어나서 모르나본데, 그게 회사야."
우리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있던 다른 반지는 척 봐도 까다로운 문양과 만들어지는 과정이 꾀나 힘들었을 것 같았다.
"나는 프린스라는 회사에서 왔고, 네 옆에 있는 반지는 타임리스. 그 외에도 문앤스타, 앤더블, 버킨, 롱엘 여기저기 다들 회사에서 왔어. 그래서 다들 회사 이름이 곧 내 이름이거나 디자인 포인트를 붙여서 부르곤 해."
"그럼 난 이름이 뭐야?"
"넌...."
프린스라는 회사에서 온 반지는 살짝 살짝 움직여 나에게 붙어있는 줄도 몰랐던 종이를 유심히 살펴봤다.
"음... 너...는... 블..루로즈! 블루로즈라는 회사에서 왔네. 네 이름은 블루로즈야."
"나는 타임리스. 더 정확하게는 타임리스 클로버"
"타임리스 클로버! 이것저것 많이 알려줘서 고마워"
나의 이름을 알려준 반지는 프린스 로마숫자라고 했다. 그 뒤로도 한참이나 서로 자기의 회사이름과 샵 주인이 붙여준 별칭을 소개 받았다. 다들 당장은 외우지 못할테니 샵 주인이 사람들에게 소개 할때마다 줄기차게 들을테니 굳이 외우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문득 내 꿈을 한번에 깨버린 저 다이아 반지의 이름이 궁금해서 클로버에게 다이아 반지의 이름을 아는지 물어봤다. 돌아오는 대답은 클로버 역시 그 이름을 알 수 없었다고 했다. 그저 모두 다 '다이아 반지'라고 해서 어디서 왔는지 무슨 별칭이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우리는 샵의 불이 꺼지고, 셔터가 내려가기를 기다린다. 그날 어떤 손가락에 끼워졌는지 그 사람의 표정이 어땠는지 하루종일 샵에 있던 이야기를 곱씹고 또 곱씹으며 하루를 보냈다. 어느날 샵에 온 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나뭇잎 굴러가는 것만 봐도 재미있을 나이지."
처음에는 무슨 말이었는지 몰랐지만 이제는 알 것 같다. 어느 반지에 먼지가 앉았다가 미끄러지는 모습만 봐도 웃음이 절로 나는 시간이다. 친구들과 시끄럽게 수다를 떨다보면 어느덧 날은 밝아 샵의 문이 열리는 날이 수두룩 했다.
"오늘 프린스 로마숫자랑 헤어지는데 부럽더라. 로마숫자 끼던 그 여자 표정 봤어?"
오늘의 이야기는 순식간에 헤어진 로마숫자의 이야기가 가장 먼저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