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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대를 벗어난 반지2

by 김주임

프린스 로마숫자는 제 주인을 만나 떠났다. 수많은 반지가 쇼케이스 위로 오르락내리락했지만, 샵을 찾아온 손님은 한결같이 프린스만을 골랐다.


원래 제 것인 듯, 프린스는 작지도 크지도 않게 손가락에 딱 맞았다. 그 손님의 눈은 반짝였고 기뻐했다. 그리고 우리들도 기뻐했다. 그렇게 하나의 반지만을 지고지순하게 골라 딱 맞아 그대로 포장해서 떠나는 반지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렇게 프린스는 남은 모든 반지의 부러움과 꿈이 되어 떠나갔다. 그 뒤로 몇몇의 반지가 떠나고 들어오는 지난한 시간이 흘렀다. 내가 처음 반지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가졌던 꿈이나 프린스가 떠나면서 보여준 모습으로 이 샵을 나가는 꿈은 흐려졌다.


그런 와중에 몇몇은 회사로 돌아갔다. 이제는 회사로 되돌아가는 것만 아니면 된다는 부질없는 소망만이 남았다. 그렇다고 마냥 슬픈 것은 아니었다.


돌반지를 사러 오는 이모와 삼촌 고모들. 지긋이 나이가 들어 꾀 알이 큰 보석 친구들에게 눈을 반짝이는 어머니들. 귀여운 커플들. 내가 벌어서 내가 산다는 커리어우먼. 파혼으로 예물을 파는 사람들. 너무나 다양한 사연들과 캐릭터 강한 사람들이 오고 가니 우리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었다.


“야… 저 커플 또 왔네?”

“저번에 헤어졌다고 반지 팔러 오지 않았어?”

“팔게 남았나??”


수군수군 거리는 반지들의 소리가 커져갔다. 들리지도 알아듣지도 못하겠지만 우리는 더더욱 속삭이며 저 커플들 손에 몇 개의 커플링이 떠나고 돌아왔는지 모른다.


“주인도 대단해~”

“그러니까 늘 처음 보는 것처럼. 저번에 팔았다가 다시 사고팔았다가 다시 사고. 저렇게 헤어졌다 다시 만날 거면 왜 헤어지는 거야?? 사람들 마음을 알 수가 없다니까”


결국 그 커플은 다 커플링을 사갔다. 시간은 흘러 밤이 길어지던 어느 날, 사장의 조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조카는 다이아가 박힌 결혼반지와 얇은 반지 몇 개를 내놓았다. 사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이야 이번에는 조카가 결혼반지를 내놓네!!! 오랜만에 재미있겠는데? “

“이건… 딱 봐도 이혼이야. 아직 어려 보이는데?”

“어리면 또 이혼할 수 있지. 한두 번 이냐”


여기저기 반지들은 흥미를 보였다. 사장의 눈치를 보니 안 그런 척 하지만 은근히 걱정이 담긴 얼굴이다.


“그나저나 결혼반지는 왜? 무슨 일 있어?”

“아… 그게…”


수다스럽던 조금 전과 다르게 갑자기 말을 아끼는 모습에 반지들의 흥분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히야아… 이모네 가게에서 결혼반지 맞추고 이혼해서 반지 팔러 왔네”

“또 모르지 다른 걸로 바꿔갈 수도 있지!”

“다른 걸로 바꿔갈 거면 왜 혼자와? 같이 와야지!”

“아!! 조용히 좀 해봐. 안 들려”


쇼케이스 안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해졌다.


“왜 무슨 일인데 혼자 와서 결혼반지를 줘. 엄마는 알아? “

“별일 아니야. 그냥”


조카는 쉽게 입을 뗄 수 없었는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깨무는 입술을 보니 그 입술이 버석버석 말라 다 트고 피딱지가 내려앉았다.


“별일이 아니라면서 왜 말을 안 해?”

“진짜 별일 아니야!! 살쪄서 반지 안 맞아… 그런데 디자인 상 다른 데서는 반지 못 늘려준데 “

“…”

“…”

“…”


사장도 조카도 우리 반지들도 침묵했다. 아니 사장과 우리들은 웃음을 참았고 조카만 침묵했다.


다행히 그 결혼반지를 만든 회사는 아직 건제했고 사이즈를 늘려 다세 제작하기로 했다. 나머지 반지들 역시 작아져 착용이 어려워 다란 반지로 바꾸려고 한다는 정말 별 것 아닌 이유를 듣고 난 뒤 쇼케이스 안은 너나 할 것 없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오랜만에 유쾌한 사연으로 왁자지껄한 쇼케이스의 사정을 모르는 사장은 조카를 위해 몇 가지 반지들을 올렸다 내렸다 했다. 올라간 반지들 사이에 나도 있었는데 사장은 나를 적극 추천했다.


전에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얼른 다시 내려가 저 수다쟁이들 사이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이대로 프린스처럼 장렬히 떠나고 싶은 마음 두 가지가 소용돌이쳤다.


‘그냥 대충 고르라고. 나는 내려가서 수다를 떨고 싶단 말이야!’


사장은 충실하게 나를 어필했고 조카는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나는 계속 남아있었고 다른 반지들이 오르락내리락했다. 마치 프린스가 떠나던 그날처럼말이다.


그 꿈을 잊고 소망도 잊고 그저 하루를 수다만 떨며 시간을 보내던 나 몸 어디선가 두근두근 설렘이 몰려왔다. 이제는 제발을 목청 높여 외치고 안간힘으로 빛나보이게 몸을 살짝살짝 움직였다. 내가 이렇게 예쁘고 특이하면서 반짝인다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


조카는 나를 손에 끼워보며 이리저리 바라봤다. 손에 끼워보기까지 하다니 심장이 터질 듯했다. 그때 아래 보이는 반지들과 눈을 마주쳤다. 왠지 익숙한 눈빛과 분위기.


내가 꿈꾸던 그런 걸까? 지고지순하게 나만을 고르며 그 길로 떠나가는 그런 꿈이 이루어 질까?


이루어졌다. 나는 그 길로 샵에서 나와 조카를 따라갔다. 조카는 아니지 이제 내 주인은 나를 약지에도 끼워보고 검지에도 끼워보고 엄지에도 끼워 보여 행복해했다. 덩달아 나도 행복했다.


나는 한 손가락에만 있지 않고 이 손가락 저 손가락 옮겨 다녔다. 어지럽지만 좋았다. 그만큼 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는 이야기니까 말이다.


“으으 오늘은 회식에서 술도 많이 먹고 찌개도 먹고 고기도 먹고 내일이면 무조건 붓는다 팅팅 붓는다. 그러니까 반지야… 부기 좀 빠질 때까지 화장대에 조금만 있어줘. 내일 산책하고 부기 빼서 다시 낄게. 미안해~ 다음엔 조금 적당히 먹을게 “


술. 술. 그 노므 술과 회식이 뭔지 반지를 낀 채 부으면 아프다고 나를 빼놓았다. 하루를 기다리고 이틀을 기다려도 저 부기는 빠지지도 않는 건지 아니면, 나를 잊어버린 건지. 산책은 개뿔. 누워서 핸드폰 보다가 결국은 얼굴에 떨어트려서. 아! 소리와 함께 잠이 든다. 그리고는 넉넉히 자다가 시계나 알람에 놀라 씻기는 제대로 씻는 건지 의심될 정도로 후다닥 나가버린다.


이래서 옛말에 짝사랑은 힘들다고 했던가.


나를 잊어버렸린 3일 되던 날. 결국 일은 터져버리고 말았다. 머리를 말리고 화장대 위에 올려두었던 수건을 치우면서 내가 바닥으로 떨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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