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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대를 벗어난 반지 마지막 이야기

by 김주임

한 겨울 꽁꽁 언 얼음이 봄을 만나 물로 흐르듯, 토라진 내 마음이 그 한마디에 사르르 녹아내림을 느꼈다.


“뭐야아… 진짜. 나를 잊어버린 줄 알았더니. 찾고 있던 거야?”


괜스레 딱딱한 내 몸이 왼쪽 오른쪽 비틀어지는 것 같고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주인의 목소리는 거실에서도 들리고 주방에서도 들렸다. 찬 바람이 휙 들어온 것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베란다에도 나갔나 보다. 난 제일 따뜻한 안방에 있는데. 바보같이 고생만 한다. 그게 나름 우리 주인님의 매력이랄까.


“오빠 어떡해. 진짜 반지 잃어버린 거면.. 아니 그렇게 찾아도 안 보여 내가 분명히 화장대 뒀거든!”


우리 주인님의 목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아니 화장대 위에 뒀는데 왜 바닥에 있어? 그리고 바닥은 봤는데 없었어”


“우리 주인 나으리! 여기야 여기. 나 화장대 밑에 있어. 네 놈이 아니 우리 주인 나으리가 발로 차서 나 벽 맞고 튕겨져서 화장대 밑에 있어!!”


나는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쓸데없이 정확하게 꼬집어 준다. 이내 네 놈. 아니 주인 나으리가 몸을 숙여 침대 아래. 협탁 밑. 드디어 화장대 밑을 본다. 이제 나를 발견했겠지?


“아 주인 놈…”

“ 오빠 몸 숙여서 바닥 다 봤는데 없어. 일단 더 찾아볼게 ”. 집 밖에서 잃어버린 건 아닌데 아아 짜증 나아 오빠 퇴근하고 집 오면 한번 찾아봐 줘 “

“아니 이 주님놈아 화장대 바닥 다 안 봤잖아. 아니잖아! 조금만 위로 고개를 들면 내가 있다고! 목은 살도 별로 없는데 왜 고개를 더 못 드냐고요!”


나는 답답한 마음에 고함을 질러보지만 여전히 닿지 않는 소리. 왜 나는 목소리가 없는 걸까. 주인 놈은 결국 나를 찾지 못했다. 발만 동동 구르다가 시간이 늦었는지 들어가 잔다. 저거 주인 놈은 나를 못 찾아 짜증이 난다면서도 잠이 오나 보다. 나는 답답한데.


허무하게 날들은 또 흘렀다. 주인 놈은 고개를 더 들지 못해 몇 번이고 나를 찾지 못했다. 나는 주인의 정수리를 몇 번이고 봤는데 말이다. 샵에서 희망을 잃었듯, 이번에도 희망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오늘도 주인의 정수리를 보았다. 어…!! 이.. 이마가 보인가. 주인 놈은 목이 뻣뻣해 고개를 들어 올릴 수 없는 줄 알았는데 이마가 보이고 코가 보인다. 불쑥 손이 들어와 바닥을 더듬는다. 물론 나와는 동떨어져 있지만 나를 발견할 확률이 높아졌다.


“미치겠네. 발이 달린 것도 아닌데 도대체 어딜 간 거야.”


그럼 그렇지.


“응 오빠. 반지 아직도 못 찾았어. 오빠 진짜 못 봤어??”

“…”

“그래 방에 들어와서 바로 있는 화장대 아래 봤지 그거 찾는다고 화장대 정리 싹 다 하고!”

“…”

“일단 알았어. 거기도 찾아볼게 “


다시 한번 불쑥 손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고개도 입이 보일 정도로 들어 올렸다. 조금 무서운 얼굴이 된 주인의 얼굴을 턱까지 본 순간.


“하아… 찾았다… 너어는!!! 다리 뒤에 있으면 잘 안보이지이 진짜 내가 얼마나 찾았는 줄 알아?? “


안다. 얼마나 멍청하게 찾았는지.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우리 주인님이 알기나 할까. 멍텅구리 우리 주인님이 드디어 나를 찾았다.


“근데 약속 못 지킬 것 같아. 미안해. 너 잃어버렸다고 속상하다고 좀 먹었더니. 살이 안.. 아니 붓기가 안 빠져. 대신에 잃어버리지 않게 함에 넣어놓을게.”


나는 초록색 상자 안, 검은색 스펀지 속에 잠겼다. 먼지 속에서 며칠이 지났을지도 모르는 나날들에 비하면 수준이 많이 올라갔다.


“오 드디어!!”


주변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나 여기 있어! 나 결혼반지야”

“나는 10년 우정반지가 녹아서 만들어진 15년 우정반지야!”

“나는 엄마랑 맞춘 커플 팔찌야”


“우리 나가고 싶어!! “


이미 초록색 상자에 들어와 있던 반지와 팔찌가 외쳐대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내가 새로 들어앉은 게 보이지 않는 게 분명했다.


저들은 모르겠지. 주인 놈이 살이 쪄서 반지를 낄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냉정한 주인 놈은 설명 하나 없이 나를 끼워 넣고 쾅! 매몰차게 뚜껑을 덮어버렸다.


긴긴 기다림에 햇살 구경이나 주인 놈 목소리라도 들리게 뚜껑은 닫지 말지. 주인이 나를 찾아 어두운 곳에 고이 모셔다 놓을 줄 알았더라면 나를 찾던 애타는 주인의 정수리를 보는 게 나을 뻔했나.


나를 찾고 싶어 몇 날 며칠을 애가 타던 주인은 빠르게도 식어갔다. 다행히 새로운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에 만족해야겠지?


그냥 주인 놈이 뚜껑이나 열어줬으면 좋겠다.





저는 결국 화장대 밑에서 빈지를 찾았고… 그 사이에 살쪄서 반지가 살짝 버거워요. 이래서 엄마가 반지 할 돈으로 팔찌를 하라고 하셨나봐요. 하지만 저는 팔찌 보다는 반지를 그렇게 좋아하더라고요. 손 모양도 반지가 조금만 커도 쑤욱 빠져버리는 모양인데 말이죠.


이 한파가 조금 누그러지면 다시 걷고 운동을 좀 해서 우리 반지들 볓도 쐬어주고 끼워도 줄려고요.


이 반지들은 주인 놈의 마음을 알려나 모르겠습니다.



말도 안되는 저의 상상을 늘 읽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잔히 사…사..사랑

‘콜록콜록(감기는 아니지만 조금 쑥스러운 마음을 기침으로 가려봅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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