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숙제를 하라고 하는 순간 하기 싫고, 뭔가를 마음먹고 하려는 순간 평소에는 생각도 안 하던 집안일이 생각난다. 문득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다른 일이 생각나고 발등에 불이 떨어져 후다닥 움직이기 바쁘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고, 설 연휴가 지나가고 어느덧 2월의 첫 하루가 지나가고 있다.
눈에 거슬리는 여러 집안일을 정리하고 책상도 정리하고 자리에 앉으면 문득 너무나 적막한 집안이 싫다. 혼자 웃고 떠들며 나름의 백색소음을 내라고 티브이를 켠다. 오늘따라 그 프로그램은 왜 이렇게 흥미진진하고, 다음 화면이 왜 이렇게 궁금한지. 참 이상하다. 평소에는 티브이를 틀어도 맨~ 재미없고 궁금해지는 게 없어서 채널을 돌리고 돌리다가 결국은 꺼버리고 마는데 오늘은 왜.
결국은 집 근처 카페로 몸을 옮겨 억 기로라도 노트북 앞에 앉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러면 어떻게라도 쓰니까.
이제 한 달 정도 남은 마감기한에 더 이상 미루고 놀고 외면할 수 있는 시간이 없다. 말 그대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진짜 정말 최종적으로 없다. 처음에는 죽죽죽 써지던 글이 어느 순간 막히고 잘하고 있는 게 맞는지 나 스스로 의심이 들면서 손가락이 마비가 된 듯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원고를 쓰는 데 있어서 준비 글쓰기를 하려고 글을 쓰는 것도 결국은 원고 생각이 나서 처음같이 막 안된다. 이것도 부담감이 되었고, 저것도 부담감이 되었다. 그나마 이 연재는 내 대나무 숲 같아서 단순 감탄이 되기도 하고, 노골적인 마음의 안식처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손가락이 움직이든 저렇게 손가락이 움직이든 덜 부담스럽다.
내 이야기가 재미있을까. 물론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는 과정과 그 안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궁금할 수 있지만 내가 정말 흥미로운 과정으로 쓰고 있는 게 맞을까. 문득 스며버린 나 스스로에 대한 의심은 나를 점점 잠식해서 손가락이 느려지고 무뎌지게 하는 것 같다.
심지어 지금은 내가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는 순서는 맞는지 모든 것이 의심되고 솔직히 무섭다. 남편한테는 말도 못 하겠다. 남편은 책이나 글쓰기 그런 어떤 감성적인 것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MBTI 결과는 F라고 나오기는 하는데 막상 이야기를 해보면... 엄청 T다. 커다란 T. 본인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주변에서는 다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의 이런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T적으로 아주 이성적으로 답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답답한 마음이 더 답답하다. 뻑뻑한 밤 고구마에 김치도 물도 없이 다 먹은 뒤 건빵 10개를 먹어야 하는 기분이다.
겉으로는 별일 없는 것 같아 보이지만 매일 속이 타들어간다. 분간이 안 될 만큼 검고, 뜨거워 차분히 있기가 어렵다. 도망도 못 가고 머리는 굳어지고 숨기에는 몸집이 너무 크고
하하... 나 어떡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