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라서 7 화
병원에 대한 소개를 원하시는 주변 사람들을 가끔 만나게 된다. 특히 어떤 질환이나 혹은 미용 목적으로 수술을 계획하시는 분들이 주변에 의사가 있으면 어떤 병원, 어떤 의사에게 진료 보는 것이 나은지 물어보시는 경우이다.
내과적 질환은 잘 모르겠으나 수술적인 부분에서는 아마도 주변에 마취과 의사가 있다면 그분에게 물어보시는 것을 추천한다. 같은 전공의 전문의여도 다른 전문의가 수술하는 것을 직접 보는 경우는 드물다. 마취과 의사들은 보는 게 매일 수술이고 매일 다양한 의사들이 수술하는 것을 보니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식으로 본인이 수술할 수 있는 정도는 못 되어도 누가 잘하는지는 비교할 수 있다. 그런데 이는 수술 중의 이야기이고 수술의 장기적인 예후나 미용의 경우 그 결과물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러니까 외과 의사의 수술 중 술기나 태도는 평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 마취과 의사에게 존경받는 외과 의사가 되기란 쉽지 않으리라고 생각된다.
몇 년 전 추계 마취과 학회에서 이국종 의사 선생님께서 강연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시에는 석 선장님의 치료로 한때 유명세를 타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범국민적으로 유명한 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는 솔직히 젊은 외과 의사가 이런 큰 마취과 학회에서 강연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 누군지도 잘 몰랐던 터라 저 사람은 뭐지 이런 생각으로 강연을 듣기 시작했다.
이 선생님의 강연 시작은 팔을 넓게 벌리고 서 계신 브라질 예수상 사진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 이 선생님이 보여주신 사진들은 늘 수술실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수많은 마취과 의사들도 경악할 사진들이었다. 모두 외상 환자들이었기에 질환으로 수술받는 그런 환자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끔찍하게 손상되신 환자분들의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선생님의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는 이야기. 병원에서 일어나는 초를 다투는 상황들에 대해서 들으면서 이국종 선생님을 마취과 의사들이 경외심을 갖게 되는 외과 의사라고 점차 인정하게 되었다.
외과 의사를 가장 잘 아는 마취과 의사로서 그분이 개인적으로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되었다. 종교를 가지고 계시는지 알 수 없었으나 보여주신 마른 예수님의 상처럼 본인을 완전히 희생해야 만 가능한 일들이었다. 정말 특별한 사명감과 의무감 아니고는 어려운 일들에 대한 열띤 강연이 끝나고 마취과 학회 어떤 강연장에서도 들을 수 없는 큰 박수를 받았다. 더구나 마지막 멘트에서 자신이 가장 존경하는 의사 선생님들이 마취과 선생님들이라는 말에 박수가 저절로 나왔다.
외과 선생님들이 집도하시는 걸 지켜보다 보면 참으로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아침부터 때로는 점심도 거르고 오후, 어떤 경우는 밤늦게까지 집도를 하게 된다. 목은 수술 부위를 보아야 하니 80도 정도로 굽어진 상태에서 수 시간을 서서 집도를 하게 된다. 더구나 강한 수술 방 조명 밑에서 눈을 부릅뜨고 수술을 하니 외과 선생님의 많은 수가 목 디스크, 허리 디스크, 백내장 등 직업으로 인해서 생기는 병들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식사도 제때에 못하고 스트레스는 장난 아니고 밤에는 그 스트레스에 음주도 많이 하시니 위장병은 기본이고... 그런데 어디서 힘들이 나시는지 매주 쉬지 않고 수술을 하시는 것을 보면 수술이라는 게 정말 재미있어 중독을 유발하는 건지 아니면 숙명이라고 생각하시는 건지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수술 시야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야말로 손 하나 까닥 잘못하면 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는 상황들인지라 스트레스가 많다 보니 보조를 선 전공의나 간호사들에게 욕언을 날리는 의사들이 과거에는 꽤 많았다. 요즘에는 그랬다간 징계감이 될 수가 있어 서로 조심하지만 오랜 습관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집도의도 아주 드물게 있다.
과거에는 수술방에서 새롭고 다양한 욕언을 집도의 선생님들에게서 배울 수 있었으니 지성인이 이런 욕을? 하고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아주 가끔은 수술 시야에서 남자 선생님들 간 주먹들도 오고 갔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과거에는 꽤 있었다고 회상된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정말로 화를 내시지 않는 점잖은 집도의 선생님이 계셨다.
어떠한 상황이 되어도 목소리가 높아지지 않으시고 전공의가 실수를 해도 조용히 말씀하시는 남자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우리 마취과 선생님들은 그 선생님과 같이 일하는 것이 좋았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고 해도 욕언을 쉽게 하시는 선생님들과 좁은 수술방에서 하루 종일 같이 일하게 되는 것은 참으로 우울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스님 같은 선생님께서 딱 한 번 화내시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종양이 꽤 큰 수술이어서 수혈이 필요할 수 있는 수술이었다. 환자가 내과에서 의뢰된 환자여서 그 선생님께서 직접 외래에서 환자를 진료한 적이 없었고 수술 동의서는 보통 전공의가 받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병실에서 회진 중에는 환자의 신체 검진만 당신이 하셨으니 환자의 자세한 개인적 사정은 잘 모르셨을 수 있었다.
개복 수술이 진행되고 있었고 수혈이 필요할 수 있어 환자의 검사 기록을 살펴 혈액형을 찾던 중 간호사 차트에 조그맣게 쓰여 있는 말은 "여호와 증인"이라는 단어였다. 나는 집도의 선생님에게 환자가 여호와증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는지 여쭈어보니 깜짝 놀라시는 것이었다.
수술을 중단하고 주치의인 전공의를 찾으니 주치의가 수술실에 급히 왔다. 수술방 입구에서부터 고개를 푹 숙이고 들어오는 모습이 딱 봐도 누구의 잘못인지 알 수 있었다. 주치의가 알고 있었는데 집도의 선생님께 그 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이었다. 의료계에서 가장 잘 일어나는 오류가 인간의 실수에 의한 오류(human error)이다.
그리고 이런 오류는 치즈 덩어리의 수많은 구멍들을 용케 피하듯 여러 가지 검증 단계를 피해 일어난다는 스위스 치즈 이론(Swiss cheese model)처럼 이 환자의 차트, 수술 전 평가를 시행했던 마취과 전공의도 이 환자의 기록에서 이 부분을 놓치는 바람에 우리 과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이 집도의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던 용의 열기를 나는 잊지 못한다. 용언이 섞인 그 시뻘건 화기... 결국, 남자 전공의 선생님도 눈시울을 붉힐 정도였다. 그 후 내 기억으로 일단 보호자에게 수술장에서 종양의 심각성을 보여 드리고 수술을 진행하려면 수혈이 필요한데 보호자들과 환자의 허락이 필요하다고 세심하게 설명하셨다. 그러나 보호자분들은 혈액 대체 제제인 알부민이나 콜로이드 제제만 허용하셨기에 어쩔 수 없이 수혈 없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술만 시행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제는 정년 퇴임하셨으나 소아 골종양학의 수술에 선구자이셨고 우리나라 골종양학의 명의로 유명하셨던 과장님이 계셨다. 나중에는 병원의 원장직도 열성적으로 하셨는데 정작 그분은 우직하게 본인의 일을 열심히 하시는 분이셨다. 과장님께서 젊으셨을 때부터 뵈어 정년까지 뵈었으니 20년 이상을 뵌 것 같은데 한결같이 당신의 일을 열정적으로 하셨다. 그리고 보이지 않게 환자분들에게 온정도 나누어 주시는 그런 분이셨다.
수술실에서는 어린 마취과 전공의에게도 꼭 존댓말을 하시면서 마취에 대해서도 잘 아시니 마취과 전공의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부분들에 조언도 해주시곤 했다. 그리고 수술이 끝나면 그 어린 마취과 전공의나 젊은 전문의들에게 수고했고 고맙다는 한마디를 잊지 않으셨다. 요즘에는 정년이 지난 선생님들이 정년 후 바로 직장을 그만두지 않으시고 촉탁 의사라는 직함으로 일하던 병원에서 몇 년간 더 근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의사 65세면 왕성하게 일할 수 있는 나이라고 볼 수 있다. 그분들 중에는 소속된 과에서도 좀 더 일해주시길 바라는 정말 필요한 분들이 계신다. 하지만 그런 분들은 비교적 적다는 것이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은 의견들이다. 그런데 이 선생님께서는 정년 후에도 촉탁 의사를 하실 충분한 자격이 있으셨는데도 불구하고 정년 후 바로 일을 그만두시고 후배들에게 자리를 넘겨주셨다.
마취과 의사로서 다시는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외과 의사도 간혹 있었다. 대학병원에서의 전임의 시절, 성인 심장 수술 파트를 돌고 있을 때였다. 전공의 시절 내가 수련받았던 병원에서는 심장 수술이 시행되지 않았기에 다른 병원에 파견을 가서 심장 수술의 마취를 배운 상태였다. 그러니 전임의이었지만 심장 수술의 마취에 대한 경험이 많지 않았다. 더구나 그 시기에는 마취과 분야에서도 수술 중에 식도를 통해 심초음파(transesophageal echocardiography)를 보는 시술을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마취과 내에서도 딱히 이 경식도 심초음파 술을 가르쳐 줄 교수님이 안 계셨고 선배들도 없었다.
내과 심장 전문의 선생님들께 도움을 받는 수밖에 없었으나 이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수술 중에 심장 수술을 담당하시는 교수님들이 수술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경식도 심초음파를 봐 달라고 마취과 전임의들에게 부탁하곤 했다. 그래서 대부분 전임의들은 선임자에게 배우고 책을 통해 배우는 식으로 개인적으로 독학을 하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경험이 없는 수기였기에 책으로 보기는 했으나 심장 수술 자체가 다른 전임의보다는 생소한 입장으로 심초음파를 하는 것에도 어려움을 느끼고 있었는데... 어느 날, 흉부외과 교수님께서 심장 수술 시 사용하는 심폐 우회로를 작동시키는 기사분들에게 가셔서 내 험담을 하시는 걸 듣게 되었다.
"심장 마취하는 전임의면 경식도 심초음파는 할 줄 알고 와야지.. 재는 뭐 하러 온 거래?" 하는...
그때 나는 이를 악 물었다. 내가 이 파트 끝날 때는 이 오명을 벗으리라고... 그리고 정말 열심히 책을 보기 시작했다. 나중에 그 파트의 전임의 과정이 끝나 흉부외과와 같이 회식을 하는 자리에서 그 교수님께 심초음파 잘 봐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그 후에도 그 교수님에 대한 인간적인 면에서의 조명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그 교수님에 대한 나의 기억은 그리 좋지 않다.
마취과 의사로서 많은 외과 의사들을 만났고 앞으로 만나게 될 것이다. 외과 의사라는 분들이 워낙 개성도 강하셔서 한 분 한 분 모두 기억에 남는다. 외과 의사와 마취과 의사는 수술장에서 호흡을 같이 해야 환자의 수술에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서로 존중하고 서로 믿는 가운데 수술장 안에서 그들의 의술이 빛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많은 외과 의사들을 그린 명화로 램브란트의 니콜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연이라는 작품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 집단 초상화에서 외과 의사는 툴프 박사가 유일하며 나머지 사람들은 외과 의사가 아니라는 설도 있다. 미술에 문외한인 나의 한계로는 알 수 없으나 램브란트에게 초상화 돈을 낸 명화 안의 인물들의 묘사가 모두 섬세하고 자세하게 나와 있고 이 그림으로 램브란트는 당대 대 스타 화가가 되었다고 한다. 명암 대비로 해부한 팔에 시선이 가게 만드는 램브란트의 예술적 재능이 돋보이는 작품인 것 같다. 학생 시절 그리도 싫어했던 해부학 시간이 떠오르며 자신의 전공 분야의 해부학에 대해서는 완벽히 외우고 있을 외과 선생님들의 능력에 존경을 표하게 된다.
제목: The Anatomy lecture of Dr. Nicolaes Tulp (니콜라스 툴프 박사의 해부학 강연, 램브란트 반 레인 작품, 1632, 헤이그 마우리츠 하이스 박물관 소장)
램브란트의 출세작으로 알려진 작품으로 암스테르담 외과 의사 조합원들이 당시 해부학의 권위자이자 외과 의사인 니콜라스 툴프 박사를 초청해 강연을 듣는 장면을 그려줄 것을 램브란트에게 의뢰한 집단 초상화이다. 조합원이 이루는 구도와 박사의 강연 간 명암 대비가 그림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해부학 저서인 베살리우스의 책이 시체의 발끝에 놓여 있고 조합원 중 한 명이 참석자의 명단을 들고 있다. 출처: Wiki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