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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취하기 싫은 환자들

 -마취통증의학과 의사라서 6 화

 마취과 의사가 싫어하는 환자들은 어떤 환자일까? 아마 의사 개인의 성향마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아는 환자들이다. 내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 가족이나 직장 동료, 친구들, 선후배 등이다. 젊었을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우리 큰 아들의 마취를 내 손으로 직접 하였고 직장 동료, 선배, 스승님도 내가 마취를 했으나 나이가 들면서부터는 담당하기가 싫어진다. 그래서 얼마 전 큰 아이의 비중격 교정술을 위해 전신마취를 받을 때도 동료 선생님에게 부탁하였다. 이런 경향은 아마도 수술을 담당하는 외과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취과 의사나 외과 의사나 직접 손으로 하는 수기가 많은 과이다 보니 내가 아는 누군가에게 이러한 수기를 하다 보면 목적이 있는 필요한 수기이니 해야 하지만 결국은 그분들의 신체에 손상을 주는 것이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미세한 출혈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그 신체에 그로 인한 흉이 일시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는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고 수기를 하는 과정에서도 개인적 감정으로 긴장감은 배가 된다.


 요즘에는 내가 특히 아는 분들이 아니더라도 모든 수기가 더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나이가 든 탓인지 환자분 모두가 그냥 환자가 아닌 것이다. 어르신들을 보면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이 나서, 아이들을 보면 우리 집 아이들이 떠오르고, 젊은이들을 보면 조카가 떠오르고 어린 아가들을 보면 조카 손주들이 떠오르고... 부모님들이 돌아가시고 나서는 한참 동안 어르신들 마취하는 것이 힘들었고 큰 아이가 유학을 떠난 직후에는 남학생들 마취할 때 마음이 쓰라렸다.     


 가끔 병원 식구들이나 개인적으로 알던 선, 후배가 수술을 받기 위해 예정되는 경우가 있다. 매일 마주치는 분들의 마취를 담당하는 것은 더 곤욕스럽다. 일단 마취를 하거나 수술을 하는 과정에서 그분들의 벗은 모습을 봐야 하는 것이 곤욕스럽고 또 나의 경우는 그 육체에 호흡관을 꼽거나 바늘을 찔러야 하니 맘이 편할 수 없다.


 매일 하는 일인데도 이 순간은 좀 피하고 싶은 것이 나의 개인적 성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대부분의 마취과 의사들도 정도의 차이가 있겠으나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런데 우습게도 이런 분들은 아는 사람이 마취를 한다고 하면 안심이 된다고 한다. 마취가 어느 정도는 위험한 시술이라는,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는 진료 과정인 만큼 아는 사람이 맡아 준다고 하면 심적으로 안심이 되나 보다. 마취과 의사 입장에서는 참으로 반대인데...    


  얼마 전, 우리 수술실에 전에 근무하시던 간호사님께서 하지정맥류로 수술이 예정되었다. 간호사분들의 업무 과정을 보면 근무시간 내내 서 있어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이런 하지정맥류가 나이가 들면서 생기기 쉬운 직업군이기에 근무시간에 다리에 압력 스타킹을 신는 것이 좋다. 이 간호사 분도 젊은 시절에 장시간 서 있으므로 해서 생겼을 가능성이 높다. 밤마다 쥐가 나고 통증이 점점 심해서 참다못해 수술을 받기로 마음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분의 평소 심장 박동 수가 채 50이 안되었다. 본인도 이에 대해서 알고 있어 걱정이 많았다.


 운동선수나 평소 운동을 많이 하는 사람들은 보통 심폐기관이 좋아지면서 심장 박동 수도 느린 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 간호사분은 운동을 하시기는 해도 운동 때문이라기보다는 선천적으로 심장 박동수가 느린 분 같았다. 그리고 가끔 부정맥도 뜨고 가슴도 두근거리는 경우가 있어 사실 정밀 검사를 하려고 마음을 먹은 적도 있었다고 했다.


 딱히 심장이 이상하다고 진단 내리기도 그렇고 하지정맥류 수술은 예정되었기에 환자분이 젊은 관계로 더 이상의 심장 검사는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마취를 하는 과정에서 고혈압이 없는 분인데 혈압이 높은 것이다. 그리고 전신마취 후에는 수술 자체가 자극이 적은 수술이어서 혈압이 계속 낮은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주기적으로 혈압 상승제를 쓸 수밖에 없었다. 수술 시간 내내 마음이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수술이 종료되고 간호사분은 회복실로 이송되었는데 환자분이 수술 부위보다는 인후 통증을 많이 호소하셨다. 호흡관이 삽입될 때 아마 자극이 간 듯... 간호사분에게 호흡관을 삽입한 나는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내가 인턴이었던 시절에 내과의 4년 차 전공의 선생님이셨던 분이 우리 병원에서 갑상선암 수술을 받게 되었다. 그 환자분과는 개인적인 친분이 두텁지는 않았으나 과거부터 알고 있는 내가 마취를 한다고 하니 매우 좋아하셨다고 했다. 집도의 선생님으로부터는 이 환자분께서 평소에 건강에 대한 염려가 많으셔서 수술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으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리 연세가 많으신 것도 아닌데 고혈압, 당뇨에 심장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수술실 입구에서 수십 년 만에 다시 뵈었는데 그래도 과거 전공의 시절의 유머 감각은 여전하셨다. 마취를 시작하고 호흡관을 삽입하려고 하는데 선배의 치아들이 너무 좋지 않은 상태였다. 의사시고 경제적으로 힘든 상황도 아니셨을 텐데 웬걸, 앞니들이 흔들거리는 것이 아닌가? 나는 순간 당황스러웠다. 다른 환자분들 같으면 미리 발치나 손상 가능성을 설명하는데 선배이고 치아도 잘 관리하고 계시리라 믿고 유동 치아가 있으리라고는 예측을 못 한 상태였기에...


 하는 수 없이 최대한 조심스럽게 호흡관을 삽입할 수밖에 없었다. 마취 중에 혈압은 또 왜 이리 낮은지... 혈압상승제를 계속 투여하고 계속 모니터의 혈압을 째려보고 있는 상황 (마취과 의사가 볼 때 마음에 들지 않은 모니터 결과는 그런 눈초리로 감시하게 된다)이라 맡고 있던 다른 수술방은 아예 가 볼 수가 없어 다른 마취과 선생님께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겨우 수술과 마취가 끝나고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중에 선생님이 회복실에서 마취에서 깨셨을 때 건강관리와 치아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항상 골프 이야기로 시작하고 골프 이야기로 끝이 난다는 그 선배에게 치아부터 관리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마취과 선배님 중에 서혜부에 발생한 탈장 복원술이 예정되었다. 탈장 복원술은 수술 시간이 보통 1시간 이상이 걸리는 수술인지라 척추마취를 하거나 전신마취를 하여 호흡관을 삽입해야 하는 케이스였는데 굳이 선배님은 호흡관을 삽입하지 말고 마스크로 마취해 달라고 저에게 부탁하셨다. 호흡관을 삽입하면 아무래도 수술 후 인후통이 발생할 수 있다.


 마스크 마취는 수술 시간이 짧은 경우에 시행하게 되는데 마취과 의사가 마취 내내 마스크를 환자의 얼굴에 씌우고 그 마스크와 환자의 얼굴을 한 손으로 잡고 공기가 새지 않도록 잘 밀착시키고 남은 손으로는 환자의 호흡을 조절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무리 힘이 좋은 남자 마취과 선생님도 30분 이상 하게 되면 손이 후들거린다. 그래서 사실 마취과 의사들은 이 마스크로 하는 마취를 좋아하지 않는다. 더구나 마취 중에 무슨 일이 발생하여도 의사의 손을 마스크에서 뗄 수 없으니 다른 일은 전혀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런 사실을 가장 잘 아시는 분이 그런 부탁을 하는데 선배이니 거절할 수도 없고...


 하는 수 없이 마스크 마취로 준비하였는데 이 집도의가 또 평소에도 좀 굼뜨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꼼꼼하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같은 수기도 배가 걸리는 분이시니... 마취 시간이 1시간이 넘어가면서 내 손은 사시나무 떨리듯 떨리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마취를 보조하는 간호사가 자신이 마스크를 잡고 있겠다고 하지만 어찌 그 마스크를 넘겨줄 수 있겠는가? 마스크로 하는 전신마취의 경우 환자의 호흡 상태를 직접 마취과 의사의 감각으로 느끼면서 하는 마취인 것을... 정말로 죽을 것같이 힘든 마취가 끝나고 나는 한동안 손가락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회복실에 나오신 선배야 이를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의식이 회복되시자 마취료에 대해 물으시면서 마취료를 매기지 않을 수 있는 항목은 빼 달라고 부탁하시는 것이었다. 자산가이신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역시 구두쇠가 잘 사는 법인가 보다. 나는 정말 주무실 때 이마에 땡꽁이라도 한 대 때려 줄 걸 하고 후회하였다.    


 나도 병이 생기거나 수술을 받아야 하여 누군가에게 나의 몸을 의탁할 날이 올 것이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야 하는 그 날이... 혹시라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 평소와 다른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더라도 나를 맡아주시는 선, 후배님들 이해해주시길... 인간이란 다 비슷하게 부족한 존재들이니...    


 민중의 대변자라고 불리는 오노레 도모에의 ‘삼등 열차’ 안에는 가난하고 무력감과 삶에 지친 서민들이 가득하다. 젖을 물린 젊은 여인, 바구니를 안고 있는 노파, 조는 아이들은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자신의 고통에만 집중하고 있는 표정들이다. 살아가는 것이 어렵고 버거울 때 우리는 서로에게 무관심해지는 것 같다. 그런 순간에 다른 사람보다는 자신에 집중하는 것,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것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 생존 방법이라는 것에 나 또한 동감하게 된다.        



제목: The third class wagon (삼등 열차, 오노레 도미에, 1864,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프랑스 사실주의 화가이자 석판화가, 삽화가인 작가는 19세기 중반 프랑스 사회의 단면을 비판적인 시선으로 표현하였다. 사회에서 소외된 서민의 고단한 삶을 그린 이 작품에서 작가는 가난하고 지친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캐리커쳐적인 인물 묘사와 구불구불한 선들이 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으며 갈색조의 온화한 색채가 인물들이 각자의 생각에 몰두하는 조용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출처: Wiki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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