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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병원

 - 병원 스토리 3 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 외출보다는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큰 아이에게 가끔 영화라도 보러 가자고 하면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병원이라는 곳은 많은 의료진들이 상주해 있고 지금은 보호자들의 출입이 제한적인 병원들이 있으나 대체적으로는 많은 보호자들이 있으니 당연히 안전한 장소 중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세상이 각박해져서인지 등산길에서, 지하철 화장실에서 갑자기 어찌 될지 모르는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병원 안은 안전 하리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해 오고 있었다. 병원에서 종사하는 많은 관계자들도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 왔을 것이다.


작년 12월 31일에 일어난 강북 ㅇㅇ 병원의 정신의학과 외래에서 발생한 의사 살인 사건 전까지만 해도...  뻘건 대낮에 그것도 병원 안 외래에서 일어난 칼부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 의사 선생님은 본인이 피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도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다른 분들을 피신시키려고 애쓰시다가 그 변을 당하셨다고 들었다.


 같은 의료인으로서 참으로 안타깝고 내가 그런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보일 수 있을지의 의구심과 존경심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 기사를 본 정신의학과 선생님들은 그 후 외래로 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무거우셨을까?        


 이런 사건이 있은 후 나의 반려자에게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냐고 물으니 어떤 환자분이 외래 책상에 수건에 싼 칼을 올려놓고 의료 혜택을 더 받을 수 있는 보훈 등급을 올려달라고 그야말로 억지를 부리던 환자분이 있었다고 하였다.         


 마취과에서는 이런 봉변을 당할 일이 거의 없는데 나도 수술 후 찾아와서 반협박식으로 항의하던 환자분을 경험한 적이 있다. 과거에 척추 마취를 한번 받은 후 이 마취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계신 분이셨다. 공교롭게도 전공의가 이 분의 생각을 몰랐고 수술 스케줄에도 척추 마취로 정해진 상태였다.


 이에 대해 사전에 들은 바가 없었던 나는 척추 마취를 시행하려고 하였고 이 환자분이 화를 내시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분은 다른 환자분들과 다르게 전신마취 시 항상 기관 내 삽관이 어려워 수술 종료 후 호흡 곤란이나 후두 경련이 일어났던 분이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위험성을 말씀드리는 과정에서 기분이 더욱 나쁘셨던지 수술이 종료되고 한참 후에 다시 나를 찾아오신 것이었다.         


 연세가 드신 분이었지만 수술실 입구 간호사가 위협을 느껴서인지 안전요원님을 연락하여 안전요원님이 오시고... 나는 안전요원님을 바로 가시게 하고 최대한 그 환자분의 오해를 풀어드리고자 근 두 시간 이상 그분의 이야기를 들어 드리니 나중에는 고맙다고 하시면서 수술실을 떠나셨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였다. 연세 드신 어르신이 그런 행동을 보이셔도 무서운데 젊은 남자분이 그런 태도였다면 정말 공포에 떨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라도에서도 흉기 살인 사건이 병원 로비에서 일어났다는 뉴스를 신문에서 보았다. 15살 소녀인데 여러 번 이 범인의 위협과 폭력에 노출된 적이 있어 이에 대해서 수차례나 공권력에 보호를 요청하였는데도 결국 이 소녀는 보호를 받지 못하고 이 세상을 뜨고 말았다고 한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병원 외래나 병동에 안전요원이란 분들이 배치된 곳이 없으며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 한 곳 만이 안전요원이 배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 병원에서 정신의학과 교수님의 사망 후에 전기 충격기를 구비하고 안전요원들을 원내 폴리스로 배치하였다는 기사를 보았다.


 다른 대학병원에서도 가스총이나 안전요원 배치를 검토 중이라고 했다. 우리 병원에도 안전요원님들이 계시긴 하지만 이분들이 실질적으로 경찰도 아니시고 방어할 장비를 구비하고 계신지 잘은 모르겠다. 하여간 병원 안에 이러한 시스템이 조속히 정비되어야 하리라...     

   

 병원 안에서도 안전사고는 다양한 형태로 일어난다. 병동에서 환자분이 한밤중에 보호자 없는 틈에 화장실을 가시다가 낙상하시거나 미끄러져 넘어지시는 일들. 또한, 환자 보호자가 유리 자동문을 잘 못 보시고 부딪혀 넘어졌는데 대퇴골 경부 골절이 일어나 병원에서 치료비를 책임져야 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몇 년 전 환자를 병문안하러 온 손자가 병원 로비 2층 빵집 계단에서 떨어져 난리가 났었고 때로는 말기 암 환자가 비관하신 나머지 세상을 뜨시고자 병원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고도 발생하였다.        


 십 년 정도 지난 일이지만 수술실에서도 환자가 수술실 침대에서 낙상하는 사고가 있었다. 담당 마취과 의사는 환자의 혈압을 보느라 뒤돌아 있는 상태였는데 환자의 곁을 지켜야 하는 외과 파트 전공의가 잠깐 다른 일을 하는 틈에 마취에서 덜 깬 환자가 수술실 침대에서 떨어진 사고였다. 그 당시는 내가 해외 연수 중이어서 정확한 내막은 잘 모르나 환자분이 크게 다친 곳은 없었다고 들은 것 같다.


 요즘에는 병원 내에서는 모든 입원 환자들에게 낙상 위험 가능성 평가를 하여 위험 환자의 경우 더욱더 철저히 관리하며 낙상 예방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기에 이런 사고는 많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그러나 다양한 형태로 일어나는 모든 사고를 병원 자체적으로 사전에 방지한다고 한들 다 예방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반드시 시행되어야 할 활동이다.        


 병원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뉴스도 드물게 보도되었다. 밀양의 한 요양 병원에서 화재로 인해 의료진 3명을 포함한 47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외에도 정신병원에서의 화재로 인해 사망자들이 발생한 적이 있으며 서울의 큰 대학병원의 음식점에서 불이나 환자분들이 대피하는 등 소동이 벌어진 적도 있다. 이러한 화재나 화상은 수술실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    

     

 수술실이란 곳이 고농도의 산소가 흐를 수 있는 곳이다 보니 전기 기구들과 이 산소가 만나면 끔찍한 화재와 화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외과 선생님들은 전기 소작기를 쓸 때 특히 이에 유의하셔야 한다. 전기 소작기의 전량을 너무 높게 쓰다가 수술 시야에서 불꽃이 피고 화재가 일어나는 사건이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나는 이 끔찍한 불꽃을 보았다.        


  병원에서 일어난 안전사고는 아니지만 어떠한 장소에서도 이러한 안전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너무도 절실하고 끔찍하게 보여준 사건이 있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희생자분이 병원 가족분이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소방 안전 훈련에 대한 훈련을 시행하면서 그 학교 학생들의 부모님이신 어머님 두 분이 소방훈련 체험 과정에서 낙상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가슴 아프게도 이 사건이 초등학생 400 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일어났다. 그 사건을 본 20%의 아이들이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으로 치료를 받았다고 들었다. 이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서 마음으로나마 고인의 명복과 남은 가족분들의 평안함을 기원하였다.     

 

 화재사고들을 보면 가끔은 수술실에서 이런 화재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해 보곤 한다. 마취과 의사들은 환자들을 대피시키는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마취 중이던, 마취에서 회복되는 중이던 모든 환자들을 수술실 밖으로 안전하게 모시고 나와야 한다. 중환자실이 위험지역이 아니라면 그곳으로 모셔야 하며 여의치 않으면 응급실로,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빨리 다른 병원으로 이송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기를 늘 기원한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수술실에서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고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은 우리 수술실 식구들 모두 한 마음, 한 뜻일 것이다. 그리고 혹여 무슨 일이 발생했을 때 서로 한 마음으로 대처해 나가리라 믿는다.     

   

 역사에 남은 화재 장면을 명화로 승화시킨 화가는 영국의 국민 작가인 조셉 말로드 윌리암 터너이다. 1834년 10월 16일 정부 재정 관련 서류 보관실의 난로 과열로 영국 국회 의사당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이 사건을 템즈강 건너편에서 직접 목격한 그는 화가 본연의 자세로 그 장면을 즉시 스케치로 남겼다고 한다. 그 후 이 주제를 유화 및 수채화 몇 점으로 남겼는데 화재 사건을 세밀하게 묘사하기보다는 밝은 색채와 어두운 색채, 따뜻하거나 차가운 색채들의 대비와 뒤얽힘을 통해 갈등을 표현하여 추상 표현주의의 선구 역할을 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 명화를 보고 있으면 화재에 대한 공포와 화재에서 나오는 빛의 찬란한 아름다움의 혼합을 통해 무한한 자연의 힘을 느낄 수 있다. 결코 진압되지 않을 것 같은 화재의 찬란하다 못해 잔인한 불빛이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켜 주고 있다.     

 병원의 안전은 병원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몫이자 책임이다. 각자가 항상 조심하고 경각심을 가지고 임해야 하며 나 또한 그러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제목: The burning of the the House of Lords and Commons (국회 의사당의 화재, 조지프 말로드 윌리암 터너 작품,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1834년 10월 런던 국회의사당을 전소시킨 대형 화재를 그린 그림이다. 작은 부주의로 시작된 불길이 국회의사당인 웨스트민스터 궁전을 온통 집어 삼키자 템즈강 건너에서 이를 목격한 터너가 스케치를 한후 후에 유화로 완성한 작품이다. 역사적 사건의 형상을 정확히 묘사하기보다 대조되는 색채가 이루는 풍경의 극적인 느낌을 전달하고자 하였다.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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