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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꽃 피는 병원

 - 병원 스토리 2 화

 아침에 출근하여 의국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데 외과계 전공의 선생님께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며 선물 꾸러미를 들고 왔다. 해외여행을 다녀왔는지, 제주도를 다녀왔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쵸코렛이 들어 있는 상자들이었다.


 이 선생님은 4년 차 전공의이신데 작년에 인턴으로 일하던 여자 선생님과 얼마 전 결혼을 하였다. 우리 과에서도 한 달간 일했던 선생님이고 인턴 풰어웰(fare-well)이라고 한 달간 과에서 일한 인턴 선생님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의미로 달의 마지막 주에 식사를 대접하는 행사에 나도 같이 참가하여 그 인턴 선생님과는 사석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내가 봐도 참하고 예쁜 여자 선생님이었다. 선물 꾸러미를 내미는 외과 전공의 선생님에게 ‘장가 진짜 잘 간 것 같아요.’ 하자 얼굴이 벌게지며 웃는다. 인생에서 가장 황금 같은 시간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올 듯하다.    


 한 병원에서 오래 근무하다 보니 의외의 커플들이 생기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늘 바쁘고 숨 가쁜 수련 기간에는 병원 밖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아주 적다 보니 늘 마주치는 사람들끼리 미운 정, 고운 정이 들기 마련이다. 한국 드라마 중 꽤 많은 드라마가 의학 드라마이고 극 중에 항상 사랑과 애증 관계가 나오는 것은 근거 없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사실상, 남자 의사와 여의사 간, 남자 의사와 간호사, 어떤 경우는 의사와 보호자나 환자 사이에도 사랑이 싹트는 것을 보았다.  


 우리 과에서 수련받은 마취과 전공의 중에도 한 명은 인턴 선생님과 한 명은 중환자실 간호사 분과 결혼을 했다. 다른 과 특히 외과  파트 선생님들이 병동 간호사분들과 결혼한 예가 많으며 또한 같은 과 동료와 결혼한 예도 있었다. 


 그레이 아나토미 (Grey's anatomy)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다 보면 정말 몇 안 되는 주인공들이 서로 얽히고설킨 막장드라마 같은 연애 관계의 경우는 거의 없지만 바쁘게 일하는 과정에서도 사랑이 곳곳에서 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총각, 처녀들이 서로 사랑을 키워가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아주 드물게는 기혼인 선생님들이 집에도 잘 못 가고 주변에서 친절하게 잘해주는 주변 간호사나 의사와 미운 정뿐 아니라 고운 정이 드는 경우가 있었다.


 병원이라는 곳이 워낙 좁은 곳이고 말도 많은 곳이다 보니 그러한 일들은 얼마 지나게 되면 소문이 돌게 마련이다. 지금은 두 분 다 병원을 그만두신 분들로, 솔로인 수술실 간호사분이 기혼인 외과계 어떤 선생님과 서로 사귀는 사이가 되고 말았다. 간호사님이 먼저 이 외과 선생님과의 관계를 정리하려고 하였으나 이 선생님은 헤어지는 것을 거부하고 여러 가지 갈등이 생기면서 결국, 이 간호사분이 자살을 시도하면서 일이 커졌다. 간호사분의 부모님이 병원장님을 찾아오시고 결국은 두 분 다 병원을 그만두시게 되었다. 그 후 일은 잘 모르고 별로 알고 싶지도 않은 경우이다.


 우리 과 전공의 선생님 중에 인턴 선생님과 결혼 한 선생님이 계셨는데 아침 출근길에 우연히 우리 의국에서 나오는 그 인턴 선생님을 마주치게 되었다. 나는 별생각 없이 지나치고 있었는데 조금 후 우리 전공의 선생님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때 뭔가 예감이 발동하였고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음을 얼마 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전공의 선생님과 그 인턴 선생님의 이름이 적힌 청첩장을 받게 된 것이다. 그 후 그 두 분은 둘이 같이 개원하여 잘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내가 전공의 시절, 내 학교 후배 중 한 분이 환자와 사귀다가 결국은 결혼까지 한 경우가 있다. 환자분은 이름을 말하면 다 알 수 있는 대기업의 후계자이었는데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어 우리 병원의 정신건강의학과에 입원해 계셨다. 그 학교 후배가 그 과에서 근무할 때 둘 사이의 사랑이 싹텄다고 들었다. 나중에 그 후배는 인턴 과정까지만 수료하고 더 이상 의사 생활은 하지 않고 대기업의 후계자 부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들었다.    


 대학병원 치과병원의 전임의 시절에는 치과대학 전공의 선생님과 보호자 간의 사랑이 싹트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당시 치과 병원에는 따로 중환자실이 없었다. 그래서 수술실 가까운 곳에 중환자실 겸 병실이 있었고 중환자실에 입실하는 환자분이 있는 경우, 1년 차 전공의 선생님은 수술 환자의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그 병실을 자주 방문해야 했다.


 환자는 구강암 수술을 받으셨는데 고령에 폐가 좋지 않은 상황이어서 주치의가 더욱 자주 방문하여야 했다. 그런데 떠도는 소문으로 주치의가 아예 중환자실에 산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환자분의 따님 중 항공사의 스튜어디스이고 매우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따님이 계신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리고 몇 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그 전공의 선생님이 장가를 간다며 청첩장을 들고 왔다. 상대는 그 환자분의 따님이었다. 그 선생님은 이제 치과 병원에서 구강암 수술을 하는 교수님으로 재직하고 계신다.     


 마취과 전공의와 내과 전공의는 일터에서 만날 일이 거의 없다. 그러다 보니 서로 커플이 되는 경우도 거의 없는데... 그 희귀 케이스가 나의 경우가 되었다. 서로 일하는 영역이 다르다 보니 마취과인 내가 수술실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하면 나의 반려자는 의료인이 아닌 것처럼 이해를 못 한다. 나 역시 그가 하는 내과적인 이야기나 항암 치료 이야기만 하면 아는 것이 없어 듣고만 있어야 한다. 같은 직종이라 서로 이해해주고 좋겠다고 동료 선생님들이 (나만 의사와 결혼하여) 이야기를 하지만 모르는 소리이다.


 같은 직종이라 서로 이해를 잘해주리라는 서로의 선입견 때문에 말이 안 통할 때는 더욱 답답하다는 사실을 남들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의학계에서 일어나는 일들, 현재 의학 게열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니 사회나 정치에 대한 비판에서는 같은 톤의 목소리를 낼 수 있어 좋다. 둘이 맥주 한잔하면서 세상에 대한 비판, 남 욕하는 재미에 우리 금술이 유지되는 것 같다.    


 병원 안에서는 환자와 의료진 간 사랑과 이해가 필요하며 의료진들 간에도 더불어 서로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고 존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지금도 여기저기서 싹트는 사랑들을 바라보면 흐뭇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제목: The Betrothed and the Eiffel tower (에펠 탐의 신랑 신부, 마르크 샤갈 작품, 1913, 조르쥬 퐁피듀 센터 소장)    


 초현실주의 화가인 샤갈이 나치의 위험을 피해 프랑스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 직전에 그린 작품으로 말년에 자신의 저택의 응접실에 걸어 놓은 화가가 아끼던 작품이다. 암울한 시대의 우울함을 표현하기보다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인 사랑하는 마음을 환상적인 색채로 표현하고 있다. 출처: Wiki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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