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낯글 Mar 02. 2022

새 학기를 준비하며, 아이들을 기다리며

3월부터 나는 새로운 학생들을 만난다.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던 중에 시골 생각이 낫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는 농사를 지으셨다. 덕분에 시골에 내려갈 때면 내 놀이터는 뒷산이 되고, 밭이 되고, 과수원이 되었다. 어렸을 때는 씨만 뿌리면 농부의 일은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제는 달랐다. 일손을 거들면서 그 수고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하나 저절로 되는 일은 없었다. 열매가 맺기까지 수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내가 반을 이끌어 가는 일이 농사와 어딘가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 다 일정한 순환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 년마다 해야 하는 일들이 있고, 그걸 반복한다. 겨울에 한해 농사를 위해 준비하듯이 나는 학생들을 맡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지금 하는 준비는 내가 작년 이맘때에도 했던 것이다.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 또한 닮아있다. 농사에서 본격적으로 작물을 관리하는 시기뿐만 아니라 사전 작업에도 노력이 필요하다. 한 해의 계획을 세우고,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땅을 관리하는 등의 과정을 신경 써야 한다. 교실을 이끌어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학생들을 맞이할 준비를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일 년의 방향성에 큰 영향을 끼친다.     


마지막으론, 내 노력과는 별개로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이다. 농사도 다양한 외부 요인에 의해서 뜻밖의 결과를 얻기도 한다. 우리 반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준비기간 동안 들인 노력과는 상관없이 예상 못 한 일들은 일어났다. 내가 연초에 목표로 한 반의 모습과 마무리할 때 반의 모습은 달랐다. 내 노력과는 별개로 다양한 일들이 생겼다.     


한 해가 지나고 겨울이 다가오면 우리는 마무리하는 일을 한다. 그간 밀렸던 창고 정리라든가 한 해 동안 고생한 밭에 비닐을 덮어주는 등 할아버지께서는 다음 농사를 준비하신다. 나는 아이들이 일 년간 몰아치다 나간 자리를 정리하며 그해를 닫는다. 여는 것만큼이나 닫는 것도 중요하다. 혹시 물건을 놓고 간 학생은 없는지 내가 빠뜨린 것은 없는지 돌아본다. 매해 학생들을 다른 학년으로 보내고 나면 아쉬움이 남는다. 내가 더 신경 써주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내가 놓쳤던 부분들에 대해서...... 그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그제야 크게 느껴진다.     


봄이 다가오면 농부가 새로운 농사를 준비하듯이, 나는 학생들을 맞을 준비를 한다. 이번에는 어떤 학생들을 만날까, 어떤 일들이 있을까 상상하고 예상하지만 언제나 내 생각과는 다른 존재들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달고 들어온다. 작년과 학생들은 바뀌었지만, 내 앞의 학생들도 작년의 아이들처럼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러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명칭에 걸맞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내게 신뢰를 보내고 나는 그 믿음에 보답하며 올해도 흘러갈 것이다. 곡식이 여물고 거기에 농부의 수고가 깃들 듯, 학생이 일 년 동안 자라면 그곳에는 내 이야기가 남는다. 올해도 작년처럼 의미 있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이전 01화 얘들아 내일 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