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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우 Jan 07. 2020

내 몸에는 호스가 달려있어요

너무나도 낯선 복막투석 환자의 일상


   내 몸에는 도관(호스)이 달려 있다. 배꼽 왼쪽 밑에 빼꼼히. 태아가 탯줄로 엄마에게 영양분을 공급받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처럼, 나는 도관을 통해 몸의 노폐물을 걸러내야만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처음 투석을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들은 건 스물네 살 때의 일이었다. 로스쿨 준비를 하면서 너무 무리했고, 루푸스가 재발을 했는데도 약을 먹지 않았다. 약 부작용으로 컨디션 조절이 안 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소탐대실이라 했던가, 공부하는 컨디션을 걱정하다가 한 달 동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스테로이드 충격요법, 세포독성 항암치료, 약물 복용 등 여러 치료를 해보았지만 한 번 나빠진 신장은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점점 신장 수치가 나빠지는 것을 지켜보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내가 투석을 해야 하다니, 내 몸에 호스를 달고 살아야 하다니.


  투석을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마음의 변화보다는, 몸의 변화가 먼저였다. 투석 시기가 다가올수록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투석을 시작하기 직전에는 머릿속에 희뿌옇게 커튼이 쳐진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흐리멍덩했다. 12시간을 자는데도 계속 피곤했다. 무기력증에 걸린 건가 고민될 정도로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는 것조차 내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신장 기능 5%가 남았을 때 일이었다.

 엄마는 힘들어하는 내게 말했다.

"희우야, 투석을 한다는 걸 받아들이기는 정말 어렵지. 그렇지만 네가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쓰는 것처럼, 또 치아가 고르지 못해 철심을 치아에 끼워 교정하는 것처럼, 그렇게 불편하지만 더 잘 살아가기 위해 감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투석.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 이름 두 글자만으로도 상상되는 범위는 죽음의 지경까지 닿아 있었다.

하지만 실상은 어쩌면 안경과도, 치아 교정과도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복막투석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알고 있는 투석 방법은 혈액 투석일 것이다. 신장 기능을 대체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투석 방법에는 혈액 투석과 내가 하고 있는 복막 투석이 있다*. 낯설고도 낯선 복막 투석의 원리를 간단하게 알아보자. 내 식대로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장기를 둘러싼 얇은 막을 복막이라고 한다. 이 복막과 연결되어 있는 도관을 통해 투석액을 넣는다. 몸속 노폐물들이 투석액으로 모인다 (확산과 삼투!). 일정 시간 후에는 투석액을 갈아준다. 이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는 것을 복막 투석이라 한다.


  복막투석 환자가 되고 나서 나의 일상은 완전히 다른 모양이 되었다. 몸은 힘들지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나아진 컨디션을 가졌지만 행동에 제약이 생겼다. 시간에 맞추어 투석을 해야 하기 때문에 투석 시간을 피해서만 약속을 잡거나 외출을 할 수 있다. 그날 해야 할 투석이 남아 있다면 6시간 안에 돌아와야 한다는 압박감이 깃들어 초조하다. 12시가 되기 전에 파티장을 빠져나와야만 하는 신데렐라처럼 6시간 안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회귀 본능이 생겨버린 것이다. 요즘 나의 하루는 이렇게 구성된다.


A.M. 12:00

  졸려서 감기는 눈을 겨우 부여잡고 열두 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비워진 배에 투석액을 주입하기 위해서. 가온기에서 따뜻한 투석액을 꺼내 든다. 2.2kg의 투석액의 무게는 때때로 내 마음조차 짓누른다. 내 배에 액체를 이만큼이나 넣고 지내야 한다니. 투석액이 들어간 배는 꼭 아기가 들어있는 것처럼 동그랗게 부풀어 올라있다. 임신 8개월 때의 아기가 약 1.5~1.8kg이라고 하니 골격이 거의 완성된 태아를 품고 있는 것과 같다. 그렇다고 진짜 만삭 임산부처럼 배가 무거운 정도는 아니다! 투석액 뚜껑을 벗기고 내 도관의 뚜껑을 돌려 열어 조심히 연결한다. 내 몸에 달려 있는 도관 입구에 손이나 다른 물건이 닿는다면 그 즉시 대학병원으로 (혹은 응급실로) 가야 한다. 세균이 복막으로 옮아가 염증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뱃속 장기의 일부가 도관과 바로 이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쉽다. 작은 세균도 바로 몸속으로 직행할 수 있다. 요즘은 이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한지, 꿈속에서 계속 도관에 무언가 닿게 만드는 실수를 한다. 그러면 꿈에서처럼 현실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날까 봐 손을 덜덜 떨며 도관을 연결하곤 한다.


A.M. 6:00

  투석액을 6시간마다 한 번씩 갈아주어야 하기 때문에, 일어나고 싶지 않아도 6시에 잠시라도 일어나야 한다. 자다가 깨는 것은 누구나 그렇듯이 정말이지 싫은 일이다. 새벽일을 나가는 것처럼 고된 마음으로 잠에서 깬다. 때로는 침대에서 졸다가 시간을 놓쳐 허둥지둥 투석을 시작한 적도 있었다.

  우선 투석액이 잘 데워졌는지 가온기에서 꺼내 확인한다. 잘 데워지지 않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한 번은 차가운 투석액을 배에 그대로 주입해본 적이 있다. 그러면 배에 들어가는 동시에 몸이 너무 추워진다. 감기에 걸리기 직전인 것처럼 으슬으슬. 다시 가온기에 데우는 것은 너무 오래 걸리므로, 어쩔 수 없이 전자레인지로 들고 간다. 전자레인지에 투석액을 데우고 터지지 않았는지 확인한다. 터지지 않은 것 같아서 방에 가지고 와서 비닐을 뜯었는데, 웬걸. 한쪽 구석이 터졌는지 물이 줄줄 새서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밤중에 건조하고 무거운 눈을 겨우 뜨고 투석을 하려던 것인데. 속상해서 주저앉고 싶지만 야속하게도 계속 줄줄 새는 투석액을 안고 화장실에 버리러 간다. 걸레를 들고 와서 방바닥을 닦는다. 울고 싶은 마음이 든다. 투석액을 전자레인지에 너무 강하게 돌리면 이렇게 곧잘 터지곤 한다. 다른 투석액을 꺼내 들고 전자레인지에 약하게 데우면서 생각한다. '아, 한 개에 1500원꼴이니까... 버스 한 번 탈 걸 이렇게 허무하게 버린 거네. 아깝다.' 졸린 눈을 뜨고 버틴 시간이 더 길어질수록 머리가 아파지고, 겨우겨우 투석을 마무리한다.


P.M. 12:00

  오늘의 마지막 투석 시간이다. 이때는 배액만 하고 배를 비워 두면 된다. 투석액을 배액 하다 보면 똥꼬가 뜨끔, 하는 기분이 든다. 도관이 항문 근처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은 몸속 투석액이 거의 다 비워졌다는 뜻이다. 누가 전기 충격을 준 것처럼 나도 모르게 몸이 움찔한다. 그러고 나면 나도 모르게 침을 꿀꺽, 하고 삼키게 된다. 생각보다 더 찌릿한 아픔이기 때문이다. 처음 도관 삽입 수술을 했을 때에는 자다가도 뜨끔 따끔한 기분이 들어 잠을 자다가도 놀라곤 했다.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느낌이다.


P.M. 2:00

  얼마 전부터 샤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야호. 샤워가 이렇게 신나는 일이었을 줄이야. 샤워를 두 달 동안 못 하고 보니 소중함을 깨달았다. 몸에 도관이 달린 채로 샤워를 하려면 준비가 꽤나 필요하다. 도관 출구 위에 붙어 있던 거즈를 떼어 낸다. 장루 주머니를 출구에 맞춰서 붙인다. 출구 주변에 물기가 너무 오래 있으면 안 되기 때문에 20분 내로 샤워를 끝내야 한다. 끝난 후에는 다른 것을 다 제쳐두고 출구 소독을 해야 한다. 얼굴이 땅겨도 어쩔 수 없다. 20분간 샤워를 하고 20분 소독하고 말리고, 20분 동안 머리를 말리고 바디 로션을 바르면 1시간은 금세 지나간다. 여유로울 때가 아니면 샤워하기가 어려워졌다.


  나의 일상은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어쩌다 늦게까지 놀고 싶은 날에도 밤 12시 전에 집에 들어와서 투석을 시작해야 하고, 오후 3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마음 놓고 외출을 할 수 있는 패턴. 여행을 가려거든 투석액을 미리 숙소로 보내거나, 들고 가야 한다. 2.2킬로그램의 투석액이 하루에 3개가 필요하니까, 2박 3일을 간다면 9개는 가져가야 한다. 혹시 투석액이 터질 것을 대비해서 1개를 더 들고 간다면 22킬로그램을 추가로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투석을 시작한 이후로 아직까지는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외박을 하는 것도 물론 쉽지 않다. 투석 시간이 물려있으면 외출을 하는 것도 어려운 지경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불편함으로 인해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불편함에 대해 불평할 수 없다. 이렇게라도 살아있음에 감사할 뿐.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동백이 엄마는 혈액 투석 환자다. 그는 딸에게 아픈 모습을 숨기기 위해 투석을 빼먹는 날도 있다. 그러자 의사가 동백이에게 경고한다. 투석을 빼먹는 것은 자살행위라고. 그만큼 몸에서 신장은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를 대체해주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 재작년 한 달 동안 입원했던 병원에서 충분히 겪었던 요독 증상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기 때문에, 열심히 투석하며 일상을 영위하고 있다. 나는 복막투석 환자다.





각주:


*각주 1: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복막투석은 주삿바늘에 매번 찔릴 필요가 없고, 공간만 허락된다면 병원을 방문하지 않고 집에서 환자 스스로 투석할 수 있는 방법이다. 이와 달리 혈액 투석은 일주일에 세 번, 서너 시간 동안 병원에서 투석을 받아야 한다. 복막 투석은 자주 병원을 방문할 필요가 없어서 좀 더 자유롭고 독립적인 치료 방법이다. 그러나 환경을 청결하게 유지하지 않으면 복막염에 걸릴 위험이 있으며 통목욕, 수영 등은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다. 방법 상의 차이가 있는 만큼 장단점이 다르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가 어디에 가중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르게 선택하게 된다. 스스로 관리를 할 수 있는 젊은 사람일수록 복막투석을 많이 권한다. 나 또한 복막 투석을 권유받아 집에서 투석을 하고 있다.


*각주 2: 국가건강정보포털에 따르면 복강과 연결되어 있는 실리콘 도관을 통해 투석액을 복강 내로 넣으면, 몸속의 노폐물과 수분이 확산과 삼투 현상을 통해 투석액으로 빠져나오게 된다. 4~6시간 정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투석액이 복강 내에 머무는 동안 노폐물의 농도가 점점 더 증가하여 혈액 내 노폐물 농도와 투석액 내 노폐물 농도가 같아지게 되는데, 이러한 상태를 포화라고 한다. 포화 상태에서는 노폐물이 더 이상 투석액 쪽으로 이동하지 않게 되므로, 기존 투석액을 배출하고 새로운 투석액을 주입하는 교환 과정을 거친다. 나는 하루에 2번 교환을 해서, 12시간을 투석액을 배에 넣고 있는 상태이다.


*각주 3: 투석액 교환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투석액을 데운다. (오래 걸리기 때문에 가온기에 미리 데워 놓는다.)

2. 데워진 투석액이 새는 곳이 없는지 확인한다. 새는 곳이 있으면 용액이 변질되어서 감염될 확률이 높다.

3. 투석액을 벽걸이에 걸고, 분리 막대를 부러트린다. 투석액은 두 쪽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를 합쳐주는 것이다.

4. 투석액에 달린 호스의 뚜껑을 벗겨 몸의 도관과 연결한다.

5. 도관의 이중 잠금장치를 열어, 배에 이미 들어있던 투석액을 빼낸다. 그러면 소변과 같이 노란 액체가 나온다. 이 과정을 배액이라고 하는데, 배액은 15분에서 걸린다. 만약 배에 가스가 차거나 변비가 생기면 도관이 구석에 박히기 때문에, 배액이 더 느리게 나오거나 조금만 나오고 멈춰버린다.

6. 배액이 끝나면 잠금장치를 잠그고, 배액이 얼마나 됐는지 저울에 달아 확인한다. 1500ml를 넣었으면 그 이상이 나와야 한다. 투석을 하면 점차 소변량이 줄어드는데, 소변으로 빠져나간다면 넣은 양보다 적게 나올 수 있다.

7. 잘 섞인 새 투석액을 몸에 넣기 전에, 호스를 가득 채운 공기를 빼기 위해 줄씻기를 한다. 투석액을 그냥 흘려보내는 과정이다. 대략 2200ml 정도의 투석액을, 넣는 양(1500ml)이 될 때까지 맞춰 흘려보낸다.

8. 잠금장치를 다시 열어 투석액을 주입한다.


(+배경 이미지 출처: http://www.mind-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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