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았던 나를 기억하고 싶은 마음으로
요 며칠을 위염과 몸살로 앓으면서 흘려보냈다. 몸이 아파 침대에만 붙어있게 될 때에는 시간이 너무도 빨리 간다. 온몸의 감각이 살아나는 밤만 뺀다면. 사실은 끙끙 앓느라 시간이 안 가는 것 같지만 돌이켜보면 흐르는 물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 시간은 저 멀리 흘러가 있다. 거의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고 나니 나는 이렇게 잃어버린 시간이 참 많겠구나, 하는 생각에 애통했다. 열여덟 살부터 십 년을 아팠지만 그 십 년 동안 내가 자유롭게 쓸 수 있던 시간은 고작 삼분의 일 정도 되는 건 아닐까, 그러면 나는 아직 스물한 살이라고 쳐주면 안 될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날그날 주어진 약을 한 움큼씩 삼켰다. 벌써 점심 약 먹을 시간이야, 하는 생각이 드니 약마저 시간을 잃는 약인 것처럼 느껴졌다. 마침 휴대폰 진동이 울렸다. 홍영일이었다.
"여보세요?"
-뭐하냐
"그냥 있어. 몸이 좀 아파."
-아이고...
우린 그동안 밀렸던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밖에 못 나가, 카페에 가고 싶어, 커피 머신을 사볼까, 운전 연습도 해야 하는데, 그런 무수히 연관성 없는 얘기들을. 끊고 나면 무슨 이야길 했는지 금방이라도 잊힐 말들이었지만 혼자 누워서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보단 나았다. 그 애와 나 사이에 당연한 침묵이 잠깐 흘렀다. 말과 말 사이에 자연스레 자리 잡는 침묵에도 나는 쓸쓸한 마음이 느껴져서, 전화가 오기 전까지 하던 생각을 뱉었다.
"세월이 너무 빠른 것 같아. 이 소용돌이 속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모르겠어."
-세상이?
"응.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느낌이야."
-너, 중학교 2학년 때 체력장에서 오래 달리기 엄청 잘했던 거 생각나?
뜬금없는 그 애의 한 마디에 오래된 장면들이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듯 그려졌다. 맞아, 그럴 때도 있었지. 하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런 얘기는 이렇게 오래된 애랑만 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었다. 오래된 친구가 있다는 건 역시 좋은 일이야. 오래 전의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있는 거니까.
"헐. 기억나! 나 진짜 얼굴 시뻘게질 정도로 뛰었잖아."
-나 그때 너보고 겁나 감탄했는데.
"나 1등인가 2등 하지 않았었나? 진짜 웃겨. 잘하지도 못하는 걸."
-그러니까. 엄청 의외였어. 네가 그렇게 악착같이 뛰는 게 왜 굳이? 이런 생각도 들고.
"난 정말 끈질긴가 봐. 진짜 노력으로만 이뤄낸 거잖아. 나도 뛰면서 사실 어이없었어."
-기록도 엄청났잖아. 나 아직도 기억해!
"웃기지 진짜. 난 왜 이렇게 한결같냐?"
-아무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너는 더 강한 사람 아닐까?
나는 휴대폰을 든 손이 잠깐 떨리는 걸 느꼈다. 아.. 하고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먹먹하고 조금은 안도하는 탄식을 뱉었다. 고맙다는 말까지 하다간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냥 삼켜두었다.
열여덟, 그 이후로 너무나도 아픈 사건들이 많아서였을까. 아프기 전의 내 모습을 떠올리라고 한다면 이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가끔 미래를 어떻게 계획하고 있느냐고, 이식 후에 건강해지면 뭘 하면서 살고 싶냐고 질문을 받는데 그러면 나는 표정을 거두고 잠깐 멈추게 된다. 아프지 않은 나는 차마 그려지지 않는 존재라서. 아프지 않았던 나는, 혹은 아프지 않을 나는 어떤 사람이 될까?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다. 루푸스 신염과 신장병을 빼고는 이제는 나를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아니까. 그 모든 아픔의 밤들과 눈물을 견뎌내고서야 지금의 내가 만들어진 걸 테니까. 나는 아프지 않았을 열아홉, 스물, 스물하나의 나를 도무지 그릴 수 없다. 이제 나는 열여덟 이전의 과거를 떠올리면 그때 이랬던 게 사실은 몸이 아플 징조는 아니었을까, 그때의 그 성격이 지금의 병을 만든 건 아닐까, 그런 생각만 하게 되니까. 건강하던 때의 나는 아주 흐릿한 태초의 원형 정도로만 생각이 되므로.
그런데 아프지 않았던 때의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찬란하던 때의 나를, 아픔이라곤 모르고 철없이 밝기만 했던 나를. 그래서 어쩌면 조금은 독단적이었을 수도 있는, 막무가내 말괄량이였을 나를. 나는 그 애가 가끔 그리워져서 일기장을 꺼내보고, 그때 주고받았던 편지들을 읽어보지만 도무지 그 애를 내 앞에 또렷하게 그릴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나를 그려봐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 부분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저 부분은 그런 면이 있지 않았을까? 하면서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들이.
서울대에 합격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전설적인 이야기들이 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거나 책을 좋아했다거나 한 분야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덕후 기질이 있었다거나,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성장에 관련된 비결 같은 말들 말이다. 나는 어떻게 자랐는가 묻는다면 나는 정말 두려움에 떠는 아이였다고 말해주고 싶다. 전교 일등이나 공부 잘하는 애, 라는 타이틀은 당연히 내 것이 되고 말아야 안도할 수 있었던 괴팍한 종류의 아이였다고. 그렇게 나의 존재를 증명해내고 빛을 발해야만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아이였노라고. 다른 서울대생들의 창대한 스토리에 비해서 나는 시작조차 그렇게 창대하지는 못했다고. 사실은 그랬음을 겸허히 인정하노라고 말하고 싶다.
종종 혼자서 과거를 그려보면 자꾸만 어두운 마음이 나타나버리는데 이런 나를 밝혀주는 등불 같은 사람들이 있다. 예전의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 예를 들어 내 엄마 선희나 오래된 친구들은 아냐, 생각보다 너는 괜찮은 사람이었어. 하며 나를 바로잡아 준다. 나는 그때에도 해내고야 마는 성질머리, 끈질김이 있었다는 걸 친구와의 전화에서 다시금 깨달았다. 선희의 기억에 따르면 나는 일곱 살 때에도 그랬다. 그때 튼튼 영어 학습지를 시작했었는데 영어 발음이 테이프의 원어민 발음과 똑같이 되지 않으면 매일같이 울었다고 한다. 카세트 플레이어를 붙잡고서. 양갈래로 땋은 머리를 풀어헤쳐 가면서. 그러면 선희는 일곱 살의 내게, 대충 해, 대충. 하는 게 어디야.라고 말했겠지. 그녀는 항상 나는 대충 살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뭐든 대충 할 수 없는 나는 그 말을 듣고도 목을 놓아 울음을 토해냈을 것이다.
그때의 나를 그려본다. 그런 끈질김, 악착같은 성질머리는 내게 독이 되었을까? 내가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어서 결국 나는 병이 난 걸까?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 마음을 영 지워버릴 수는 없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선희의 말을 기억한다. 너는 대단한 사람이야, 너는 하버드도 갔을 거야. 살아낸 것만으로도 대단해. 내 목소리를 덮어버리는 선희의 말들을 떠올리며 나를 달랜다. 양 팔을 내 등 뒤로 둘러 안아주는 시늉을 하면서, 나를 토닥인다.
내가 쌓아온 과거들에서 후회하는 지점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날이 있다. 어느 여름날,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던 나를 기억한다. 여름 하복을 입고 집에 돌아가던 풍경을 보아 고등학교 1학년 때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몹시 더워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아, 소설 속 여주인공처럼 자주 픽 하고 쓰러지는 연약한 사람이고 싶다. 그러면 왠지 멋질 것 같아.'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등짝을 후려갈기고선 미친 X.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이게 다 인소*의 폐해다! 미디어의 폐해야! 픽, 픽 쓰러지는 사람은 멋진 게 아니라 아픈 거고 환자라서 삶이 즐거울 수가 없다고! 라며 주책바가지로 소리치고 싶다.
그래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해볼 수 있던 열일곱의 내가 부럽다. 그때에는 너무도 건강해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삶에 굴곡이라곤 없어서 재미있는 일이랍시고 연약함을 꿈꿨을 테니까. 앞으로 다가올 운명을 알지도 못한 채 무작정 해맑고 건강한 나를 부러워한다. 그때의 내가 그 생각을 거두기보다는 그 시간을 마음껏 누리기를 바란다. 내게도 건강하던 때가 있었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아주 자주 잊는다. 아마 내 글을 읽는 사람들도 아픈 내가 더 익숙할 것이다. 그러나 내게도 그런 때가 있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중에 내가 오그라든 마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도 당신들이, 나에게도 건강해서 밝았던 때가 있었노라고 말해줄 수 있었으면. 나는 감히 그런 소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시작은, 과연 창대했던가?
각주:
1. 인소: 인터넷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