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야 Jul 03. 2023

바닷가에 내리는 금비, 모감주나무





혹시 나무에게도 고향 같은 것이 있을까.  

고향을 떠나 살게 된 이들-나무들이 문득 고향 땅을 떠올리는 순간은 언제일까. 


우리 동네 중앙에 있는 큰 공원에 모감주나무 몇 그루가 살아. 붉게 화려함을 뽐내던 장미가 모두 지고, 능소화와 접시꽃이 붉게 피어나는 요즘, 긴 장마가 시작되는 딱 이맘때 모감주나무는 특유의 금빛 꽃을 잔뜩 피워낸단다. 길을 가다, 공원을 거닐다가 개나리보다 더 빛나지만 더 작은 노란색 꽃을 풍성하게 지고 있는 나무를 만난다면 틀림없이 모감주나무일 거야. 


모감주나무는 본디 바닷가에 살던 식물이야. 짠 물도 잘 견뎌내고, 물이 부족해도 어찌나 잘 살아남는지 도심 속에 사는 모감주나무 또한 쉽게 죽지 않아. 이처럼 튼튼한 데다가 꽃도 아름답고 가을 단풍도 멋스러워서 요즘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많이 듬뿍 받고 있다지? 안면도, 완도 같은 바닷가 마을에 가면 귀한 모감주나무 군락을 만날 수 있다고 해. 바닷가에 가야 볼 법한 나무를 도심 속 공원에서 만날 수 있다니! 고향 마을을 떠나 온 나무에게는 좀 미안하지만 나는 그 나무가 바닷가에 살다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설렜어. 전 세계 이곳저곳,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던 나무들이 가로수라는 이름으로 거리에, 공원에 모인 일이 사람인 나에게는 행운인 셈이구나. 그 나무들이 가로수로 선택되어 우리 동네에 심기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런 존재가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을 테니까 말이야. 모감주나무를 볼 때마다 넓고 푸른 바다가 저절로 떠오를 것 같아. 기억 속에 남아있던 바다 내음도 함께 생각나려나.   

12 색상환(출처 freepick)


모감주나무의 영어 이름은 Goldenrain tree야. 금빛 비라는 말은 모감주의 꽃 덕분에 붙여졌지. 봄이 막 시작하는 시기에 우리는 노란 꽃을 자주 만날 수 있었어. 개나리, 민들레가 가장 흔하지. 초록이 아직 세상을 점령하기 전이라 노란 꽃은 쉽게 눈에 띈단다. 점점 풀과 나무에 잎이 돋아나고 초록이 짙어지면 분홍, 빨강, 주황 같은 화려한 꽃들이 연달아 피기 시작해. 노란 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초봄만큼 많이 보이지도 않아. 그 이유는 무엇일까. 색상환을 떠올려보렴. 초록과 노랑은 서로 이웃이야. 아주 가까이에 있지. 그만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색인 거야. 초록의 반대편에 빨간색이 있지? 그러니 녹색 잎사귀들이 한창 돋아난 뒤에는 붉은 계열의 꽃이 눈에 잘 띄지. 꽃이 눈에 잘 띈다면 벌과 나비를 포함한 뭍 곤충들이 방문할 확률도 높아질 거야. 그런 연유로 한 여름이 가까워질수록 노란 꽃을 피우는 식물은 드물어지는 것이지. 하지만 모감주나무는 쨍한 노랑으로 빛나. 꽃의 가운데에는 개나리나 민들레와 달리 붉은색을 담아놓았어. 어찌나 빛깔이 곱던지 사람들은 꽃을 보고 금빛 비를 떠올렸대.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려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기라도 하면 정말 금비가 내리는 듯할 거야. 바닥에는 황금빛 융단이 깔리게 되고 말이지.      


모감주나무는 열매도 특별해. 꽈리를 닮았거든. 모감주나무를 몰랐을 때 커다란 나무가 풍선 모양 열매를 주렁주렁 달고 있으니 그 정체가 많이 궁금했었지. 열매는 처음에는 연한 초록빛이었다가 충분히 익으면 갈색으로 변한단다. 꽈리는 세 조각으로 연결되어 있어. 꽈리는 바람결에 열매는 세 조각으로 갈라져. 한 조각마다 열매가 붙어 있고 꽈리 조각이 날개 역할을 하며 씨앗을 멀리 날려 보내는 것이지. 모감주나무가 원래 바닷가에 살던 나무라고 했지? 모감주 씨앗은 바람을 타고 날아 가까운 바닷가에 떨어져. 찰박찰박 파도가 다가오더니 모감주 씨앗을 데리고 가버리지. 이제 꽈리껍질은 날개가 아니라 작은 배가 되었어. 이 씨앗은 어디로 가게 될까. 모감주 열매는 염주를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해. 얼마나 귀한지 높은 스님들만 모감주 열매로 만든 염주를 썼다고 해. 모감주나무의 다른 이름도 염주 나무래. 가을에 꽈리가 잘 익으면 그 안에 든 열매가 얼마나 단단하고 동그랄지 꼭 한 번 꺼내보고 싶어지는구나.  


식물은 자신이 어디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지 크게 상관하지 않아. 불평할 입이 없고 도망갈 다리도 없어서 만은 아닐 거야. 몸을 옮길 수 없다는 것에 실망해 삶을 포기하기는커녕 늘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지. 봄이면 잎을 내고, 여름이면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열매를 맺고. 우리 마을에 바람과 파도에 실려 먼 길을 떠나는 모감주 열매의 모험 같은 건 없어. 그래도 모감주나무는 자신의 할 일을 게을리하지 않지. 큰 모감주나무 아래 어린 모감주나무 대여섯 그루가 눈에 띄더구나. 어떤 것은 철쭉 사이에서 자라났는데 철쭉보다 훨씬 키가 커지는 중이었어. 화단 끝에서 자라는 나무는 잎이 시들하니 병색이 연연해 보이기도 하고. 아마 모두가 큰 나무의 씨앗에서 자라난 이들이겠지. 이 작은 나무들은 계속 커갈 수 있을까, 공원 관리하는 사람들에 의해 잘려나가게 될까. 나무들은 뿌리로 서로 연결되고 소통한다고 해. 이 작은 나무들도 큰 모감주나무와 연결되어 서로가 가족임을 느끼고 있을 거야. 부디 작은 나무들이 사라지지 않고 좀 더 존재감을 오래 뽐내었으면 좋겠어. 모감주나무 가족을 오랫동안 공원에서 볼 수 있기를.


이전 11화 가로수 일상다반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