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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야 Jun 26. 2023

가로수 일상다반사


가로수가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얼마나 될까.


가로수는 화분이나 온실이 아니라 탁 트인 땅에서 자라지만 산이나 들에 자라나는 나무와 처지가 달라. 탁 트인 야외에서, 땅 속 깊이 뿌리를 박고 자라지만 가로수에게 허락된 자리는 비좁기 그지없지. 가지를 높이 뻗으면 전선줄에 걸릴까 봐 잘려나가고, 가지를 옆으로 널찍하게 뻗으면 간판을 가리거나 건물의 창문에 닿을까 봐 잘려나가. 길을 지다가 가로수를 만나면 가로수가 어디에 서 있는지 가만히 살펴보렴. 둥글거나 네모나게 구획된 땅, 가로 세로 100센티 남짓인 작은 공간 위에서 꼿꼿이 몸을 세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거야. 한두 사람이 겨우 서 있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이지만 가로수는 아무 불평이 없지. 늘 그랬듯이 말이야. 그 자리에서 똑바로 서서 가지는 옆으로 뻗고는 해를 향해 나아가고, 바람결에 흔들린단다.


우리 동네에 있던 소나무 가로수를 기억하니? 소나무들도 사각 땅 위에 나란히 서 있어. 사각 땅에서 들풀도 자라고 어디선가 날아온 작은 나무도 자라나. 그 안에서는 누구 하나 위세를 떨치지 못하지만 사각 땅은 엄연히 정원이고 작은 들판이더구나. 그 작은 땅에 글쎄, 소나무의 키를 넘어설 기세로 자라는 식물이 있어서 깜짝 놀랐지 뭐야. 어디선가 바람과 빗물을 타고 날아온 씨앗이 싹을 틔우고는 대대손손 꽃을 피우며 살아가고 있었어. 무궁화와 닮은 꽃, 너무나 소박한 이름을 지닌 접시꽃이 그 주인공이야. 소나무가 아마도 크고 짙은 그늘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접시꽃 씨앗은 햇볕을 충분히 받아 싹을 틔울 수 있었을 거야. 접시꽃이 다행히 누군가의 미움을 받지 않아서 뽑히지 않았고 그 자리에서 대대손손 싹 틔우고, 꽃 피우며 사는 것이 가능할 테고.  소나무는 자기 땅이라고 접시꽃을 구박하지 않더라. 꽃다발처럼 풍성하게 피어있는 접시꽃을 보며 땅은 본래 누구의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더구나.




가로수는 전봇대를 알아보았을까.


소나무 가로수 건너편에는 전봇대와 바짝 붙어 있는 가로수가 있어. 메타세쿼이아 한 그루. 가지를 옆으로 뻗었는데 묘하게도 전봇대를 감싸 안은 것처럼 보이네. 처음에 나무는 아마 전봇대보다 키가 작았겠지. 전봇대가 있건 없건 별 상관없이 그럭저럭 살아갔을 거야. 세월이 흘러 나무가 점점 자라고 가지를 옆으로 뻗다 보니 전봇대가 걸리적거렸을 걸. 나무는 자라나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그걸 비켜자라는 지혜를 지녔어. 비키지 않고 밀고 나간다면 시멘트로 만들어진 전봇대보다 약한 나뭇가지는 결국 부러지고 말았을 거야. 살짝 진로를 틀었다고 해서 나무는 자라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아. 그러니 너무 염려 말으렴. 아마 전봇대가 진짜 나무였더라면 메타세쿼이아는 겸손하게 자신의 가지를 짧게 뻗었을 거야. 무슨 소리냐고? 나무가 우거진 숲에 가서 하늘을 한 번 살펴보렴. 나무들은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어. 옆에 나무가 있다면 그 나무와 굳이 몸을 부딪혀 가지를 엉키게 하지 않지. 가깝지만 서로를 힘겹게 만들지 않을 정도로 멀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거야. 뿌리를 뽑아 몸을 옮길 수 없기 때문일까. 나무는 늘 곁에 있는 무엇들과 함께 사는 법을 고민하는 중인 것 같아.




그저 늘 그 자리에.


가로수를 자세히 살펴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돼. 그 감정은 가로수의 강인함, 인내심을 알아보게 되면서 생겨났지. 도시가 개발될 때 작은 묘목으로 심긴 가로수들은 십수 년이 지나 굵은 줄기를 뽐내는 큰 나무로 성장해. 그 중 대부분은 본래 타고난 우람한 형태를 보여주지 못한 채 댕강댕강 가지치기를 당하기 일쑤지. '죽으면 어쩌나.' 싶을 만큼 가지의 대부분이 잘려나간 나무들이 봄이 되면 온몸 구석구석에서 초록빛 새 잎과 줄기를 뽑아내는 모습은 눈물겹기까지 하단다. 그런 심한 가지치기 중에 가장 최악인 건 나무의 꼭대기 부분을 잘라내는 전정이야. 나무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꼭대기 부분은 위로 계속 성장하는 중요한 자리인 데다가 자를 경우 아물 때까지 비, 바람, 햇볕에 무차별적으로 노출되기 쉽지. 병균이나 바이러스가 침투하기도 쉽겠지. 우리 동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의 한 쪽 편 나무들은 꼭대가 모두 잘려나가 둥근 모습을 하고 살아가. 반대편 나무들은 뾰족한 머리를 유지한 채 더 높이 자라나는데 반대편 나무들은 늘 전정을 하지. 무엇 때문이냐고? 바로 전깃줄 때문이야. 전깃줄을 건드려 혹여나 사고로 이어질까 봐 가지를 베어내는 거야. 길 건너에 삼각형으로 자태를 뽐내는 나무를 보며 이 쪽 길의 둥근 메타세쿼이아는 부러울까, 서글플까, 아니면 이 모든 것을 초탈했을까.


가로수는 늘 그 자리에 서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저들만의 삶이 있단다. '소나무는 소나무고, 메타세쿼이아는 메타세쿼이아지, 그 나무가 그 나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무와 함께 천천히 걷다 보면 그들도 나름의 사정과 사연이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될 거야. 소나무 밑에서 왕성히 꽃 피우는 접시꽃의 우연이나, 옆지기 전봇대와 함께 살기로 결심한 나무나, 영영 둥근 수형으로 살아가야 하는 메타세쿼이아처럼 말이야.




늘 그들은 그곳에 그대로 있지.

지나는 이들에게 손처럼 뻗은 가지를 흔들며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며,

혹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 그저 그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지.

늘 그랬듯이 우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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