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 퀴즈'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멋지게 이직을 하고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다.
모델, 배우에서 한의사로, 직장인에서 별 전문촬영가로, S기업과 기자를 거쳐 배우가 된 진기주 씨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와 ~ 어떻게 저런 결단을 했을까.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떤 일을 새로 시작하려 할 때, 내 마음과는 달리 주변 사람들의 입김도 많이 작용한다. 나는 정말 고민해서 어렵게 내린 결정은 그들은 몇 분 듣지도 않은 채, '그건 너무 포화상태야' 라던지, '너 말고도 잘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라던지. 괜히 이야기를 꺼냈다 싶을 정도로 의욕을 꺾는 일이 다반사다.
대학 3학년이 되던 해에 병원 실습을 나갔다. 한 달 반 정도의 기간이었는데, 인근의 큰 대학병원, 종합병원급으로 지원 또는 뽑기로 그곳이 정해졌다. 내가 간 곳은 실습생들이 다들 꺼려하는 곳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곳에 지원한 이유는 단지 '집과 가까워서'였다. 형편이 너무도 어려웠던 시절이라 타 지역으로 가게 되면 2달치 방값과 식대가 부담이 된다는 엄마의 말에 타지로 가고 싶었던 마음을 붙잡고 그 병원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딱 2번의 자살충동을 느꼈었다. 한 번은 첫째 아이를 키우면서 겪었던 산후 우울증으로 당시 살던 아파트 5층에서 베란다 밖을 내려다보며 '여기서 떨어지면 병신밖에 안 되겠네'라고 마음을 접었던 날. 또 한 번은 바로 실습할 때였다.
따뜻한 남부지방이라 벚꽃이 3월 중순부터 흐드러지게 피어난다. 특히 쭉 뻗은 대로에 있는 화려한 벚꽃은 일부러 꽃놀이하러 오는 사람들도 많을 정도로 멋지다.
벚꽃이 굵고 화려한 꽃망울을 뽐내는 어느 토요일, 대형 덤프차들이 그렇게 많이 다니더라. 실습을 하면서 잠을 한 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다니던 터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냥 여기서 저 덤프트럭에 치이면 이 모든 힘듦이 사라지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늘은 눈부시고, 벚꽃은 날리는데, 내겐 2003년의 봄은 없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느꼈던 동기들도 있었는지, 실습을 끝내고 온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았다. 동기 몇몇은 국시만 치르고 나면 바로 공무원 준비로 전향한다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짧았지만 병원생활이 만만치 않았고, 이상한 사람들을 겪다 보니 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고.(그 친구 중 한 명이 나와 같은 병원에서 실습을 했더랬다)
그렇게 그 동기들은 공무원에 합격해 '이 바닥'을 떠났다. 지금 남은 동기들은 그 친구들에게 모두 '잘했다'라고 한다.
한 동기가 아이를 키운다고 쉬고 있는 친구에게 "너도 애 좀 더 크면 병원 알아볼 거 아냐?"라고 물었단다. 그랬더니 그 친구 왈 '맥도널드에서 아르바이트할지언정 병원으로 다시는 안 갈거라'라고 했다고.
졸업을 하고 햇수로 17년째인 지금,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있는 동기들은 손에 꼽을 지경이다. 다들 아이를 키우느라 쉬거나 아예 다른 직업으로 전향했다. 졸업 후 바로 공무원이 된 그 친구들 이외에도 공기업에 취업한 친구, 부동산 임대업을 하는 친구, 뇌 학습 브레인센터를 운영하는 친구, 영업을 하는 친구 등. 얼마 전 카톡 프로필을 보다 보니 한 남자 동기는 전기기사로 전향을 했더라.
아직 병원에 남아있는 나는 이직을 할 용기가 없었다. 용기 이전에 '내가 이 것 말고 무엇을 하며 밥벌이를 할 수 있을지'를 몰랐다. 다른 친구들처럼 공무원 준비도 해봤지만 열심히 하지 못했다. 결국 병원 주위를 뱅뱅 돌고 있는 내가 있었다.
내겐 '이직의 기술'이라는 건 없다. 앞으로도 이직 생각은 없다. 대신 퇴근 후의 삶을 재밌게 보내려고 노력한다. 병원일은 나에게 안정적인 월급을 주는 생계유지로, 퇴근 후의 시간은 내가 재밌게 할 수 있는 일로 채우는 용으로. 즉 부캐를 키우는 시간이다.
큰돈은 안되지만 내가 할 때 재미를 느끼는 일이라면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다. 3년 넘게 하고 있는 독서모임 같은 거 말이다.
그나저나, 대학 때 매번 '나는 5년만 물리치료사로 일하고 그 이후에는 꽃집을 차릴 거야'라고 했던 친구는 정말 꽃집을 차렸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