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슬픔이 나의 입속으로

노인병원에서의 간식의 의미

by 달빛처럼

공식적인 내 첫 직장은 '00노인병원'이었다.

지금의 요양병원 같은 곳이다.

당시 개원한지 얼마되지 않았던 곳으로 시설이 좋았고, 치료실도 엄청 넓었다.

침대며 각종 병원물품들이 새 것이라 덩달이 기분도 업됐다.


나와 동기는 병원에서 주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말이 기숙사지 아주 오래된 주택이었다. 화장실이 밖에 있었으며, 겨울에는 변기 물이 얼어 전기포트로 뜨거운 물을 부어서 써야했다.

병원에서는 타지에서 온 우리 둘을 위해 저녁까지 직원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배려'를 해주었다.


타지에 있으면서 삼시세끼 병원밥을 먹으려니 눈치가 보였다.

차라리 식권을 구매하게 했으면 했는데, 그 곳은 그냥 식사 명부에 이름을 올리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점심, 저녁은 직원식당에서 먹고, 아침은 우유에 타먹는 시리얼이나 컵라면으로 떼웠다.


정식으로 일을 가르쳐주는 사수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시간제로 일하던 실장님은 우리더러 실장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그곳의 담당자는 아무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가 실장역할에 모든 것을 '알아서'해야했다.


가끔 점심을 먹고 건물 밖에서 다른과 선생님들과 배드민턴을 쳤다.

처음 나갔더니 방사선과 과장님은 우리에게 '머리 위를 조심하라'고 했다.

가끔 치매병동에서 똥기저귀를 던지는 환자가 있단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우리는 웃으며 배드민턴을 치곤 했다.



어느 날, 치료실을 나눠 쓰던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간식을 가져다 주셨다.

복지사 샘은 항상 병동에서 일을 하고 사무 업무만 같은 층에서 했다.

직원들 먹으라고 떡과 과일이 많이 들어왔단다. 자취생인 우리는 즐겁게 받아 먹었다.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 계절이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는 즈음이었다.

이상하게 자주 간식이 들어와, '도대체 누가 주는 것'이냐고 물었던 것 같다.

그랬더니 복지사 샘이 하는 말에 충격을 먹었다.


"우리 병원이랑 협약을 맺은 장례업체가 있거든. 주말에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셨나봐.

그래서 감사하다고 병원에 간식을 많이 보냈지뭐야."


장례식장이 없는 노인병원이라 돌아가시는 분이 생기면 연결해주는 장례업체가 있는데,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시다보니 수입이 좋았나보다. 그 덕에 우리한테까지 간식이 들어온 것이었다.


'누군가의 슬픔, 아픔이 또 누군가에게는 기쁨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처음 깨닫는 일이었다.


그 노인병원을 그만둔 이후로 병원에 들어오는 간식은 대부분 '감사'의 의미였다.

치료해줘서 고맙다, 퇴원하게 되서 그동안 감사했다, 치료하느라 힘든데 이거 좀 먹고해라 등등

그런 간식은 감사한 마음으로 먹게 된다.


지금도 병원에 간식을 사다주는 환자들을 보면 가끔 그 노인병원에서의 간식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죽음을 댓가로 받은 맛있는 간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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