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귀는 소머즈 귀

작은 소리 하나에도 민감한

by 달빛처럼

고등학생 때 친구들은 거의 '마이마이'나 '워크맨'이라고 불리는 휴대용 오디오를 들고 다녔다. 아이돌 1세대가 시작하는 즈음이라 그런 팬덤도 형성되었고, 야자(야간 자율학습) 시간에는 한창 많이 듣던 라디오도 듣곤 했다.


나는 그 문화에 함께 할 수가 없었는데, 이어폰을 오랫동안 끼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어서다. 귀 구멍이 남들과 다르게 생겼는지 이어폰이 귀에서 항상 흘러내릴 뿐만 아니라, 한동안 귀에 가까이 음악을 들을 때면 머리가 아프고 귀가 불편했다.


내 몸이 전자기기를 거부하는 증상이 생기니 자연스레 이어폰 끼는 것을 멀리하게 되었고, 무엇을 들을 때는 스피커를 통해 자연스레 들리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환자가 많아 무척 바빴던 병원에서는 내 담당 환자가 하고 있는 기계소리를 잘 들어야 했다. 소음이 많은 치료실에서 기계가 끝나는 소리를 잘 들어야 그다음 처치를 바로 할 수 있고, 또 환자의 시간과 내가 움직이는 동선을 줄일 수 있었다.


또 다른 치료사들이 하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어야 했다. 서로 손발이 맞아야 일이 잘되는 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니까. 일 처리를 위해 귀를 열어놓고, 각각 다른 기계음을 기억해두고 잘 들어야 했다.


그중에 환자의 목소리는 더 집중해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일 하는 사람들이야 어느 정도 이상의 데시벨로 말을 하기 때문에 잘 들을 수 있지만, 누워서 치료받고 있는 환자들은 평소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하기 마련이다. 빨리 자기를 봐달라고 크게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조용하게 말을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잘 들어야 한다.


사방에서 소음으로 시작해 소음으로 끝나는 치료실이다. 환자들끼리 나란히 누워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전화통화를 하는 사람도 있다. 희한하게 치료실에만 누워있으면 그렇게 자기 사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누워있는 시간이 아까울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치료실 내에서는 통화나 대화를 자제해야 하는 건 사실이다.


불편해서 치료사를 부르나 싶어서 가보면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거나, 혼자 이야기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거기에 각종 기계음까지 섞이면 처음 며칠은 정말 혼란스럽다. 익숙해지고 그 속에서 필요한 소리만 듣는 훈련기간이 끝나야 내가 필요한 소리를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시끄럽든 조용하든 간에 일단 환자의 목소리에 주파수를 맞춘다. '불편하시면 부르세요'라고 말을 하기 때문에 환자들의 소리가 들리면 일단 귀를 쫑긋한다. 크게 말하는 것이 부끄러워 그렇게 못하는 분들도 많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있는 자리에서 좀 멀리 떨어진 자리에서 할머니 환자 두 분이 누워계셨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가 싶더니 한 분께서 '이게 좀 뜨거운가, 약간 좀 뜨거운 것 같네.'라고 하신다. 얼른 수건 하나를 들고 가서 '어머니, 뜨거우세요?'라며 깔아드리니 그분께서 '아이고 귀도 밝다. 그걸 우찌 들었노?'라신다.


나도 듣고 싶어서 듣는 게 아니라 자연스레 들린다.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거나 스마트폰을 보고 있더라도 항상 한쪽 귀는 열어두니까.


내가 어릴 때 TV에서 외화를 많이 방영했다. 기억나는 건 맥가이버, 천사들의 합창, 비버리 힐스의 아이들, 육백만 불의 사나이와 소머즈다.


소머즈는 육백만 불의 사나이에 이어 방영이 되었는데, 육백만 불의 사나이 여자 버전 같았다. 특별한 점은 소머즈가 굉장히 '귀가 밝다'는 것. 그 이후로 사람들은 잘 듣는 사람에게 '소머즈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마치 내 귀가 소머즈 귀가 된 느낌이다. 다른 친구들이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을 때 보호한 청력이라 그런 건지, 일을 하면서 집중을 해서 그런 건지. 아무튼 일을 할 때는 귀를 열어둔다.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병원이라 항상 긴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매일 소머즈로 살고 있어도 나쁘진 않다. 시계 초침 소리 나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크게 들리는 등 주변의 소음이 거슬릴 때도 많지만,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청력이다.


한편으로는 '병원'이라는 특수한 곳에서 일을 하면서 발견하게 된 나의 예민함일지도 모른다. 예민하지만 민감하게, 환자들의 작은 소리도 다 들을 수 있는.

좋게 말해 섬세함이라고 해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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