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롯이 내 몸으로만
필라테스를 등록하고 각 기구를 소개받았다. 리포머, 캐딜락, 바렐, 체어 이렇게 총 네 가지 기구가 있는 방을 알려주며 실장님은 필라테스 수업 예약 팁을 덧붙였다.
- 수업 예약하실 때, 기구 이름이 세 글자보다 두 글자가 더 어려우니 참고하세요.
리포머와 체어는 스포츠 센터에서 써봤던 기구라서 어떤지 알고 있었지만, 캐딜락과 바렐은 접해본 경험이 전무했다. TV에 필라테스가 나올 때 보통 캐딜락과 바렐이 자주 비쳐서 안 그래도 궁금했던 터였다. 그래도 두 글자 기구는 어렵다고 했으니 일단 세 글자 기구인 리포머와 캐딜락 위주로 운동을 하기로 했다.
거의 세 달 만에 처음으로 체어 수업을 했다. 총 5개월 기한이었기 때문에 끝나기 전에는 한 번 해봐야지, 싶었다. 체어 수업을 하는 중 왼쪽 손목의 저림 증상이 심해져 동작을 제대로 따라 하지 못했다. 아쉽지만 스프링을 손으로 누르는 동작이 많은 체어는 잠시 보류하기로 했다. 그리고 바렐은 언제 도전해 볼까, 해도 될까 망설이기만 했다.
바렐은 말안장 같이 생겼다. 스프링이 없는 유일한 기구라서 오롯이 자신의 몸으로만 버티고 운동해야 한다. 그런 점이 초보자에게 가장 난도가 높지 않나 싶다. 적은 공간을 차지하는 체어와 바렐은 그만큼 신체 부위와 닿는 면적이 좁다. 그렇기 때문에 불안하고 어렵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은 면도 있었다.
재등록을 결정하고 나서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바렐 수업을 예약했다. 내가 주로 가는 시간대에도 의외로 바렐 수업이 많이 있었지만, 어려울 거라는 두려움으로 세 글자 수업인 리포머와 캐딜락만 신청했더랬다. 3개월이 지나고 이제는 바렐을 한 번 겪어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으로 첫 바렐 수업에 들어갔다. 바렐은 생각보다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매우 협소했고, 그곳에서 균형을 잡고 힘든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필라테스 운동을 하면서 나에게 가장 힘든 순간은 유산소 운동과 더불어 가슴 부위가 압박되며 머리가 아래로 쏟아질 때다. 폐가 눌러져서 그런지 숨을 못 쉬면서 어지럽고 헛구역질도 난다. 바렐 첫 수업 시간에 거꾸로 누워 머리가 아래로 쏟아지는 동작을 하게 됐다. 강사님이 카운트를 세는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울렁거림과 호흡곤란으로 동작을 중단했다. 약간 진정이 되고 나서야 다른 동작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바렐 수업은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오히려 스프링으로 버텨내는 체어가 내겐 더 어려운 것 같았다. (물론 체어는 힘이 다른 양쪽의 균형을 잡아줄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기구이기도 하다.) 처음 접해본 바렐에 대한 흥미와 처음 해보는 동작들이 어려울 것만 같았던 바렐 수업의 장벽을 조금 넘어보는데 도움이 됐다. 신체와 접촉하는 면적이 좁아 운동 시간 내내 몸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점도 오히려 집중하기 좋았다. 딴생각을 하다 보면 떨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운동에만 집중하게 된다.
일주일에 보통 세 번의 수업을 들으면 바렐을 포함해서 기구별로 하루씩 운동을 할 수 있게 됐다. 각 기구별로 맛볼 수 있는 운동의 효과도 다양하니 더 풍부하게 근육을 쓰는 느낌이다. 초반에 겁을 먹어 다른 기구 운동부터 했던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조금이나마 체력을 올려놓고 나서 바렐을 했기 때문에 지금 바렐에 대한 소감이 이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