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의미
문화센터에서 필라테스를 배울 때 수업명은 '소도구 필라테스'었다. 필요한 물품은 간편한 복장과 개인 수건 또는 물이었다. 말은 소도구 필라테스였지만, 요가매트를 제외한 나머지 소도구는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었다. 집 근처에 있는 백화점, 대형마트 문화센터의 소도구 필라테스는 같은 방식이었다. 가볍게 몸을 푸는 워밍업, 매트 위에서 할 수 있는 다양한 운동과 쿨다운까지. 조용한 음악을 틀어주면서 명상도 가끔 했다. 그렇게 요가 매트만 사용하고, 다음 사람들을 위해서 그대로 펴두고 수업을 마쳤다.
가끔 개인 수건을 가지고 와서 매트 전체에 깔아놓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 썼던 요가 매트라 이해가 됐다. 나도 작은 손수건을 가지고 와서 얼굴 부위에 깔고 수업을 들었다. 얼굴이 매트에 닿을 때 화장품이 매트에 묻기도 하고, 얼굴의 땀이나 기름기 자국이 그대로 매트에 남기도 했기 때문이다. 강사님이 따로 닦고 관리하시겠지 싶었다.
스포츠 센터에서의 기구 필라테스는 분위기가 달랐다. 기구는 리포머와 체어뿐이었지만, 폼롤러와 볼, 요가매트를 사용해서 이전보다 다양한 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회원들이 알아서 입구에 놓여있는 물티슈를 한 장씩 뽑아서 자기가 쓴 기구를 닦고 퇴실했다. 눈치껏 선배님들이 하는 그대로 나도 기구를 닦았다.
필라테스 전문 센터에서는 모든 수업이 끝나면 강사님이 알코올 소독제를 듬뿍 뿌린 물티슈를 한 장씩 나눠준다. 오늘 사용한 기구를 닦고 퇴실을 하라는 것이다. 내 손과 몸, 발이 닿았던 모든 곳을 닦고, 소도구를 쓴 날에는 그것까지도 꼭 닦고 퇴실을 한다. 그렇게 최소한의 땀이라도, 손자국이라도 없애고 나오는 게 내가 다시 기구를 쓸 때도 안심이 된다. 간혹 SNS에서 그런 기구 소독을 회원에게 하게끔 하는 게 맞냐, 강사가 다 해야 한다 아니다로 설전이 오가는 것도 본다. 2~30초 정도 걸리는 소독은 크게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운동을 마치고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이게 맞냐, 아니냐는 생각이 안 드는 것도 사실이다.
워밍업 운동을 하고 나면 조금씩 힘들어지는 운동으로 대부분 이어진다. 동작을 따라 하기 힘들어서 한 템포씩 쉬었다가 하기도 할 정도로 정신 못 차리는 경우도 많다.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도 없이 힘들게 몰아치고 나면 가지고 간 손수건은 땀이 흥건하게 젖어있다. 땀을 많이 흘리다 보면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는데,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쿨다운까지 이어간다.
그러다 어느 순간 정신이 번쩍 들 때가 있다. 바로 '바스락'거리는 물티슈 소리다. 강사님이 소독제를 듬뿍 뿌려서 인원수에 맞게 물티슈를 뽑아 주는데, 바로 그 소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학교 다닐 때 마치는 시간을 기다리며 지루한 수업시간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는 그 순간 울리는 벨 소리와도 비슷하다고나 할까. 물티슈 뽑는 소리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아, 그 소리가 반가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상에서는 전혀 감흥이 없는 물티슈인데, 필라테스 수업 시간만 되면 그렇게 반가워진다. 오늘도 열심히 운동했구나,라는 생각, 이제 마무리하고 쉴 수 있겠구나, 결석하지 않고 수강권을 잘 쓰고 있구나,라는 생각까지 다양한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상기된 얼굴과 부스스해진 머리칼을 정리하고 옷을 입고 건물 밖을 나온다. 집 근처에 있는 동네 슈퍼에서 어떤 남자가 묵직한 물건 하나를 들고 계산대로 향하는 모습이 보인다. 네모난 비누같이 느껴진 그것은 가까이 가보니 천 원짜리 물티슈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내가 그토록 반기던 물티슈가 다른 이들도 즐겨 찾는 그것이라니 길에서 만난 물티슈가 더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