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날 작가 Jan 31. 2024

가난한 행복을 배우러 간다.

행복의 기원

아이들이 어떻게 컸으면 좋겠어?

나는 많은 거 바라지 않아. 아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아이가 어릴 때 엄마들이 줄곧 하는 말이다.


아이의 나이가 먹어 갈수록 키가 컸으면 좋겠고, 친구들과 잘 지내면 좋겠고,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고, 좋은 대학에 갔으면 좋겠고,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전문직을 가지기를 바란다. 결혼 적령기에 좋은 배우자를 만나 결혼까지 하면 금상첨화지. 바라는 것들이 점점 많아진다.


엄마들은 욕심이 많은 걸까? 그렇게 잘 돼서 나중에 본인에게 갚으라고 그리 욕심을 부리는 걸까?


아니다. 저 중에 자신이 잘되길 바라는 마음은 없다. 그저 아이의 행복에 필요한 조건이나 배경을 바랄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행복'하려면 이 정도는 필요하다는 걸 이미 온몸으로 경험한 부모의 마음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먹고 자고 사랑할 때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이유. 결국은 생존을 위해서다. 행복, 즉 쾌감을 느껴야만, 혹은 쾌감을 느끼기 위해 인간은 먹고 자고 사랑하는 데 집중한다. 이 관점으로 보자면 행복은 삶의 최종 이유도 목적도 아니다. 생존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을 느끼는 것이다.’



<행복의 기원> 서은국 교수님의 이야기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살기 위해 행복하려고 하는 게 인간인데 무엇이 되고 무엇을 이뤄야만 행복해진다면 그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까. 행복을 위한 희망과 기대가 나의 아이를 가장 지독하게 괴롭히는 마음이 아닐까?



부모의 기대와 사랑 속에 외동딸로 컸다. 혹여 누구에게 뒤처질까 싶어 없는 형편에도 메이커 옷을 입히고, 최신 휴대폰과 컴퓨터를 사주셨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다닌다는 학원을 보내고, 고3 여름방학 때는 친구 부모님께 부탁해 친구네 차를 타고 강남의 단과 학원도 다녔다. 그 결과 나는 부모의 바람대로 대학 진학까지 성공했다. 그러나 행복은 잠시 뿐이었다.

공무원 시험 준비를 위해 들어갔던 고시원에서는 '이대로 시험에 떨어지면 어떡하지...' 두려움에 잠을 설쳤다. 매일 밤 만화방, PC방을 전전했다. 현실의 나는 너무나 형편이 없어 행복할 자격이 없으니 잠깐의 쾌락이라도 찾으려고 행복 주위를 배회했는지도 모른다. 겨우 잠이 들 때 즈음엔 그런 생각을 했다. 눈을 뜨면 할머니가 되어있기를. 세상이 끝나있기를.


생기 발랄한 20대였어야 할 나이의 나는 그렇게 시름시름 앓았다. 행복이 너무 멀리 있어서. 나는 도저히 그곳까지 갈 힘이 없어서. 이렇게 남들까지 불행하게만 하다가 생이 끝날 것 같아서.



자살률이 높고 출산율이 낮은 나라.

유난히 행복을 들먹이는 대한민국은 괜찮은가?

그때의 나처럼 병들어 있지는 않은가.


내가 세 아이와 첫 여행지로 선진국이 아닌 인도를 택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아주 작은 것에도, 별거 아닌 상황에도 행복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꼭대기만 바라보며 사는 게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고 가끔 땅도 내려다보며 천천히 사는 삶도 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우리는 이미 많은 것을 가졌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넉넉하게 살고 있으니 매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행복은 많이 가져야만, 많이 이뤄야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야. 어느 때라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행복할 수 있어. 그 비밀을 알기만 하면 어떤 순간에라도 우리는 살아낼 수 있어.


가난한 행복을 배우러 가자.





매거진의 이전글 배낭 속 비움을 책으로 채우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