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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실험: 실거주와 투자 분리하기

집이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by 나날 곽진영



어른이 되면 성적표는 사라지지만, 다른 성적표가 생긴다. 바로 집이다. 어디에 사느냐, 몇 평이냐, 자가냐 전세냐. 이제는 그것들이 그 사람의 능력과 성공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마치 집이 그 사람 자체를 설명해 주는 것처럼.


나도 한때는 그런 기준을 좇았다. 하지만 아이를 경쟁 없이 키우겠다고 마음먹은 뒤, 질문은 달라졌다. 어디에서 살아야 할까 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까로.


처음에는 단순히 도시를 떠나 전원주택에서 뛰어노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본질은 ‘어디에’가 아니라 ‘어떻게’였다. 도시를 벗어나 주택 살이를 하며 나는 환상이 아닌 현실을 마주했다. 크고 작은 불편과 예기치 못한 상황을 겪는 과정에서 나는 유연함을 배웠고, 무엇보다도 삶의 우선순위를 나답게 정하는 법을 익혔다. 그리고 그 가치에 공감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있다.


지난 10년 가까이 우리는 정형화되지 않은 집에서 살아왔다. 하수처리장 안의 작은 사택에서 시작한 거주의 실험은 비가 새고 곰팡이가 피던 전원주택, 북향이지만 마당이 넓었던 상가주택, 반지하의 개미굴 같은 집까지 이어졌다. 우리의 모습을 옆에서 계속 지켜봤다면 누군가는 기겁했을지도 모른다. 애들을 데리고 철없는 혹은 지나친 실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이 실험에 단 한 번도 의문을 가져보지 않았다. 오히려 해가 거듭할수록 ‘집’에 대한 생각은 또렷해졌다. 집의 목적은 언제든 쉴 수 있는 공간, 가족을 따뜻하게 맞이할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는 것. 크고 삐까뻔쩍하다고 해서 안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간을 가꾸는 내가, 가족이 편안해야 집은 비로소 집의 기능을 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내가 사는 마을의 집들은 도시의 아파트처럼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아이들은 평수도 구조도 제각각인 친구들의 집을 놀러 다니며 컸다. 그래서 애초에 누구의 집을 부러워하거나 비교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집을 기준으로 친구를 가려 사귀지도 않는다.


주변 엄마들은 종종 말한다. 좋은 학군에서 자란 아이들이 착하게 잘 자란다고. 그들은 비슷한 환경, 비슷한 학구열, 딴짓 없이 공부만 하는 분위기에서 순하게 자라는 친구를 만들어주려고 대출을 감수해서라도 좋은 동네에 이사 가려고 애를 쓴다. 그렇다 치면 나 역시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이웃과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고 싶은 마음으로 이 삶을 선택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가 말하는 ‘좋음’은 그들의 좋음과는 좀 다르겠지만.


누군가는 우리가 사는 방식이 정신승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집은 더 이상 나를 증명해야 할 무대가 아니다. 집은 사치도, 체면도, 비교도 빠진 그저 우리 가족의 안식처이자 내 삶의 우선순위와 태도를 설명해 주는 공간일 뿐. 나는 '좋은 집'이 아닌 '좋은 삶'을 중심에 두고 선택했고, 그 선택은 지금도 유효하다.


남편은 아이들이 어릴 때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 위해 대기업을 그만두고, 연봉이 훨씬 적은 공기업으로 이직했다. 나는 지난 8년 동안 주부로 살며, 오롯이 나를 계발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겉으로만 보면 우리가 자본주의를 거부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좋은 삶을 지속하려면 현실을 단단히 딛고 서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알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뚜렷한 전략이 있었던 건 아니다. 도시를 떠나 작은 집에서 전세로 살다 보니 손에 쥔 여윳돈이 생겼고, 몇 번의 매매를 거치며 자산이 조금씩 불어났다. 내가 하는 투자에 특별한 기술이 있었을 리 만무했다. 다만 단 하나의 기준은 분명히 지켜왔다. 실거주는 삶의 기준으로, 투자는 자본의 수단으로. 이 원칙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다.

심지어 지난 7년간 단 한 건의 투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때때로 ‘한창 일할 수 있는 젊은 부부가 안주하며 산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실은 누구보다 자본주의의 구조를 이해하고, 삶의 목적을 위해 그것을 능동적으로 활용한 선택이었다.


실거주는 언제나 아이 중심, 관계 중심이었다. 반면 투자로 마련한 집은 팔지도 않고, 자본이 자본을 증식시키는 구조 안에만 두었다. 그렇게 7년의 시간이 흘렀다. 실거주와 투자를 분리한 삶은 결과적으로 대성공이었다. 우리는 이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손에 쥘 수 없었을 자산을 만들었고, 지금도 그것들은 스스로 몸집을 불려 가고 있다.


결과만 보면 투자를 위한 몸빵(?)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나 역시 그 때문에 우리의 삶이 왜곡되지 않을까 우려했던 적도 있다. 아무렴 어떠랴. 용감하게 오답을 쓰다 얻어걸린 덤이라면, 그 기쁨은 기꺼이 누릴 일이다.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중요하다 여기는 가치를 지키며 살아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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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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