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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세,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능력주의를 믿었습니다, 한때는.

by 나날 곽진영


지금까지 사회는 실패를 어떻게 설계하고, 경쟁과 비교가 어떻게 삶 전체를 압도하는지를 들여다봤다. 나 또한 그 구조 안에서 치열하게 살았다. 누구보다 철저하게 그 시스템을 믿고 따랐던 사람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나도 한때는 능력주의 옹호자였다. 열심히, 성실하게 노력하면 반드시 보상받는다고 생각했다. 학업 성취가 높았던 나는, 교사들의 애정을 받으며 비교적 편안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위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괴로움은 있었지만, 그 모든 혜택이 내 노력의 결과라고 굳게 믿었다. 왜 이렇게까지 달려야 하는지 의문이 들기 전까지는 말이다. 결과가 좋지 않은 사람을 게으르거나 무능력하다고 판단했고, 그랬기에 스스로 넘어졌을 때도 가혹하게 몰아붙였다.


고백하자면 지금도 완전히 그 믿음에서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나는 여전히 성실함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노력 없이 얻는 결과를 의심한다. 그러나 아이를 키우면서 이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내 아이가 나처럼 살면 어떡하지...?

한 번의 실수로 자기 존재를 의심하고 끊임없이 비교당하고 살아야 한다면, 조금 천천히 걷는다는 이유로 무가치한 사람 취급을 받아야 한다면, 공부를 못하고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했다고 해서 누군가의 시선에선 사회의 ‘필요악’이 된다면. 그 시선에 동조한 사람으로서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내 아이는 쉬어갈 수도, 넘어질 수도 있었으면 했다. 그 시간 동안 아이가 자신을 자책하거나, 망가뜨리지 않도록 가정이, 사회가 기다려줄 수 있었으면 했다. 그렇다. 엄마가 되고 난 후에야, 그제야 나는 내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사회 구조에 무언가 근본적인 문제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능력주의를 가장 공정한 시스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미 출발선이 다르다. 애초에 세상은 불공평한데, 어떻게 능력주의가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기회는 평등하지 않고, 자원은 불균형하며, 속도는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모두에게 같은 결과를 요구할까.


그래서 나는 다르게 살아보기로 했다. 거창한 결심이나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내 아이가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방식으로 살아보기로. 이 아이가 살아도 괜찮은 삶, 이 아이가 따라와도 나쁘지 않을 삶을 먼저 살아보기로 했다. 남들이 정답이라고 하는 길 말고, 내가 스스로 만들어가는 길. 애벌레들이 기어오르는 탑에서 바닥으로 추락해 보기로.


약 8년의 시간이 흘렀다. 나의 실험은 성공적이었을까?

그사이 나는 세 딸의 엄마가 되었고, 그때보다 자본은 열 배 가까이 늘었으며, 소비는 절반으로 줄었다. 아이를 키우며 오래 경력이 단절되었던 나는 세 권의 책을 낸 저자이자, 사회적 기업의 대표가 되었다.

이렇게만 보면 꽤나 성공적인 것 같지만 여전히 실패도 많고, 시행착오도 크다. 누군가가 부러워할 만한 삶을 살고 있지 않다. 나는 여전히 남들의 눈에는 지지리 궁상에, 돈도 안 되는 일에 시간을 쏟고 있는 사람일 테다.


그럼에도 나는 이제 내가 어떤 선택을 해도 괜찮다는 것을 안다. 정답이든 오답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이제 내가 내 인생의 방향키를 쥐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장에서는 내가 했던 다양한 실험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부자 되는 법도, 성공하는 비결도 아니다. 그저 다른 속도와 방식으로 살아본 한 사람의 기록이다.

'집은 자산일까, 터전일까?'

'덜 가지면 덜 행복할까?'

'좋은 부모는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가?'
...


인생에 필요한 질문과 실험을 통해 내가 어떻게 삶의 방향을 찾아갔는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조금 적게 벌고, 조금 덜 갖고,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그 속에서 충분히 만족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 그 이야기의 시작이다.


* 능력주의(能力主義, meritocracy)는 부(富)나 권력과 같은 희소한 자원을 분배할 때 사람의 재능, 노력 및 성취도를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그러한 외부적인 평가 기준에 따라 차등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긍정하는 정치 철학이라고 정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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