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인생이 결정되는 걸까?
“불안하지 않아요?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와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정중하든 무례하든 결론은 비슷하다. 정말 그럴 리 없다는 의심, 혹은 나는 절대 저렇게 못한다는 자조.
한국 사회가 내린 정답은 분명하다.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에 취업하면 인생은 안정된다는 것. 나 역시 그 길을 따르려 애썼지만, 취업부터 어려웠고 겨우 시작한 사회생활도 결혼과 출산으로 멈췄다. 세 아이를 키우며 경력은 끊겼고, 가진 자본도 없었다. 사회가 정해놓은 정답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런 내가 아이들에게 이 길만 정답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스스로 실패자라고 인정하는 꼴인데.
아이가 하나일 땐, 그래도 이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멈춰버린 내 삶의 또 다른 성과가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아이 인생은 아이의 것이지, 내 인생의 보상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닫기까지 세 번의 출산이 필요했다.
셋째 아이를 낳고 한동안 정말 아무 일도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동네 엄마들과 함께 기타를 배우러 다녔다. 떠듬떠듬 배운 기타를 치며 아이들과 동요를 부르고, 한 곡씩 연습할 때마다 SNS에 올리며 일상을 글로 썼다. 그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경험이 내 인생을 완전히 바꾸었다. SNS에 썼던 글이 모여 책이 되고, 강연으로 이어졌다. 집 거실에 작은 책방을 열어 함께 책을 읽고 대화하는 모임을 만들었다. 책, 글, 그리고 음악. 그 자리는 어느새 작은 살롱이 되었다.
집에서 시작한 책방의 한계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방향을 바꿀 고민을 시작했다. 아이만 키우던 주부가 내 사업에 돈을 투자할 깜냥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지원사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돈이 없으니 창업은 불가능하다”는 사회적 통념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길을 택했다. 처음부터 무엇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길도 아니었다. 작은 보조금을 바탕으로 법인을 만들고, 커뮤니티의 규모를 키우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했던 일들을 하나씩 시스템화했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엮었고, 재능 있는 여성들을 무대에 세웠다.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여성문화기획 플랫폼, 나아가 사회적 기업으로까지 확장되었다.
돌아보면 시작은 늘 사소했다. 보행기와 아기를 둘러업고 갔던 기타 수업, SNS에 올린 기록 한 줄, 거실에서 연 작은 모임. 돈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경험, 심지어 쓸데없다고 여겼던 것들까지 다 이어져 지금의 일을 만들었다. 돈 한 푼 없이 창업이 가능했던 이유는, 성공의 청사진이 아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한 궁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좋은 직장에 취업하지도 못했고, 거액의 자본을 투자하지도 못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꿈을 꾸고, 그 꿈을 향해 매일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살아가고 있다. 화려한 ‘파이어족’도 아니고, 자면서도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과도 거리가 멀다. 대신 내가 원하는 때에 원하는 일을 하며, 아이들이 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이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같은 고민도 하지 않는다. 지금 하는 일이 나를 계속 어딘가로 데려갈 거라는 기대 혹은 확신이 있다. 5년 뒤, 10년 뒤 무엇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지금보다 더 즐겁게 살고 있으리라는 기대는 있다.
그래서 나는 불안하지 않다. 배짱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 아이들이 지금 공부에 몰두하지 않아도 100세 인생을 사는 데 치명적 결격 사유가 되지 않음을 내가 몸소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20대에 인생이 결정된다는 말은 틀렸다. 취업에 실패해도, 돈이 없어도, 늦게 시작해도 괜찮다. 중요한 건 ‘하고 싶은 일을 찾는 집요함’과 그것을 이어가기 위한 작은 실행들이다.
교육, 주거, 소비, 결핍. 네 개의 실험이 삶의 방향을 바꿨다면, 마지막 다섯 번째 실험은 삶의 방식을 바꾸었다. 나답게 살기 위한 다섯 번의 실험은, 그동안 정답이라 불리던 것들에 대한 나의 작은 반항이었다. 내가 특별히 용감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의심과 불안이 큰 사람이었기에 가능했던 실험이었다. 정답에서 벗어나도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 실패해도 괜찮다는 걸 내 삶으로 증명해야 아이들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해본 오답 실험이 누군가도 자신의 속도로,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가도 괜찮다는 용기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그리고 이제, 실험을 통해 얻은 통찰을 바탕으로 ‘실패’와 ‘관계’라는 더 큰 질문으로 나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