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짐이 알려준 다른 길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실패는 아마도 취업을 앞두고 맞이한 20대의 무기력한 시간일 것이다. 12년을 열심히 공부해 대학에 들어간 뒤, 나는 인생의 목적을 잃었다. 대학 4년을 허송세월하다가 겨우 졸업장을 받고 취업할 곳을 찾지 못했던 나날. 지금은 우스갯소리처럼 말한다. “그랬으니까 지금 남편을 만났지.” 정식 취업을 하기 전, 잠시 계약직으로 있던 학교에서 대학원생이던 남편을 만났으니 운명이 아닐까. (웃음) 그 실패는 인생 전체로 보면 방향전환이었다. 지 잘난 맛에 살던 우물 안 개구리가 돌멩이 하나에 KO 되어 오랜 자아성찰을 한 시간.
책을 출판할 때도 비슷한 실패감을 느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무명작가의 책이 얼마나 팔리겠나. 그래도 나의 이야기를 믿고 책을 만들어준 출판사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홍보를 했다. 그때 한 블로그 리더가 협업을 제안했고, 책을 많이 팔 수 있겠다는 생각에 따지지도 않고 덥석 받아들였다. 하지만 애초에 목적이 달랐기에 번번이 부딪쳤고, 결국 몇 달도 못 가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기회를 잡지도 못하고 도망쳐버린 내가 너무 답답해서 사주를 보러 갔다. 내향적인 내가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그때 들은 말이 아직도 선명하다.
“당신은 작은 나무, 어찌 보면 들꽃 같은 사람이에요. 혼자 우뚝 서 있는 큰 나무가 되려 하지 마세요. 들꽃과 함께 어울려 살아야 더 잘 살 수 있어요.”
아마도 내가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그 실패 이후, 나는 내향인이라는 틀에 갇혀 도망치기보다 나와 결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도모하는 일을 해나가고 있다.
더 좋은 사람을 찾아 헤매는 것보다는 불편한 관계를 정리해 나가는 것, 누가 봐도 인생에 도움이 될 것이 자명한 일에 손을 대는 것보다 스스로에게 내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게 되는 것이, 내게는 나만의 옳은 순서로 보인다.
-료의 생각 없는 생각 중-
만약 내가 실패하지 않았더라면, 중간중간 넘어짐이 없었더라면, 나는 여전히 나와 맞지 않는 옷을 입고 대단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원사업에서 떨어진 일, 협업이 무너진 일, 기획이 좌초된 일. 매번 실패할 때마다 절망했지만, 그 일들은 결국 나를 돌려세웠다. 실패가 있었기에 방향을 바꿀 수 있었고, 더 나답게 살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는 야망이 없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천천히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한 단계씩 밟아가는 중이다.
실패는 끝이 아니다. 실패는 방향이다.
내가 할 일은 그 신호를 읽고, 다시 걸음을 떼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