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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망이 자유를 만든다

by 나날 곽진영

자유롭다는 말은 충분하다는 말과 비슷하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태도나 마음가짐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맞다. 그러나 삶을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없다면 그런 건 오래가지 않는다. 잠시 자유로운 척할 수는 있지만 곧 불안으로 바뀐다.


자유는 현실을 기반으로 이야기해야 한다. 대담한 도전, 과감한 선택, 거창한 성공은 겉으로 보기엔 멋있을지 모르지만, 안전망 없는 자유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나는 자유를 꿈꾸며 살던 모든 시기마다 이런 질문을 던졌다.

‘내가 실패한다면 어디로 돌아가야 하지?’

‘이 삶이 무너지면 내가 설 수 있는 바닥이 어디일까?’


하늘을 바라보며 살지만, 반드시 발을 디디고 있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설사 발끝으로 겨우 서서 위태로울지라도, 딛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바닥이 있다면 훨씬 과감한 선택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물론 나는 그 안전망을 거창하게 설계하진 않았다. 작은 집 한 채, 가족 단위의 생활비,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시작한 소박한 창업 경험. 이 세 가지가 나에겐 언제 망해도 괜찮은 최소 조건이 되어주었다.



집 — 체면보다 생존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나는 ‘집이 나를 증명해줄 필요는 없다’고 결정했다. 그래서 주변 시선에서 벗어난 공간을 선택했다. 2억 이하의 전세살이는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집을 삶의 과시 수단이 아니라 생존 장치로 바라보기 시작한 결정이었다. 그 안에 채워 넣을 물건도 고급스러울 필요가 없었다. 대신 주변 자연환경 전체를 내 삶의 공간으로 받아들였다. 집 안은 최소화했지만, 집 밖의 풍경은 오히려 더 넓어졌다.


대신 ‘살 집’은 소박하게, ‘가치가 오를 집’은 분리해서 투자했다. 나는 살지 않지만 사람들의 욕망이 몰리는 곳에 자산을 사두었고, 8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투자 수익은 10배가 되었다. 체면을 내려놓자 자산은 오히려 더 유연하게 움직였다.



생활비 — 200만 원으로 한 달 살기

다섯 식구가 월 200만 원으로도 살아낼 수 있다는 실험은 단순한 소비 절제가 아니었다. 숫자를 낮춤으로써 “적게 벌어도 괜찮다”는 심리적 해방을 얻는 과정이었다. 물론 우리는 1년 내내 200만 원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이번처럼 명절이 있거나, 아버지 칠순 같은 행사가 있으면 큰돈이 들기도 한다. 중요한 건 항상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면 언제든 소비를 줄일 수 있는 ‘소비 탄력성’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고정비를 낮추는 것 = 자유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라는 사실을 이 실험을 통해 배웠다.



창업 — 성공보다 경험

나는 창업을 성공의 수단이 아니라, 생계 구조를 확보하는 장치로 시작했다. 처음부터 잘되는 사업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정부 지원사업으로 시작한 작은 프로젝트, 그 정도면 충분했다. 망해도 빚지지 않는 크기, 다시 말해 반복 가능한 규모로 설계한 것이 핵심이었다.


그렇게 시작한 일들은 지금 나에게 프리랜서로서 먹고 살 수 있는기술이 되었다. 강의를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고, 기획을 하라고 하면 할 수 있고, 책을 만들라고 하면 만들 수 있다. 돈을 번 것이 아니라, 돈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얻은 것. 이 경험 자체가 나의 안전망이 되었다.



자유를 가능하게 해준 건 커다란 행운도, 거대한 자본도 아니었다. 집 한 채, 작은 고정비, 활용 가능한 노동 시스템. 이 세 가지 안전망이 있는 한, 나는 언제든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이 선택지가 있는 상태를, 나는 자유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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