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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버는 기술

by 나날 곽진영

대부분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엉뚱한 데 시간을 쓰는 거 아닐까?

갓생이나 효율 같은 말에 휘둘리고 싶진 않다. 나 역시 잠을 줄여가며 생산성을 높이거나, 하루를 알뜰하게 갈아 쓰며 살진 않으니까. 가끔은 낮잠을 자고, 웹툰을 보고, 아무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니까. 이런 시간이 낭비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 시간은 내가 기꺼이 동의한, 내 에너지가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풍요로운 삶이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내가 가장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 가치를 두는 일에 시간을 많이 써야 할 테다. 누군가는 학교에서, 누군가는 직장에서, 또 누군가는 돌봄이나 집안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그 시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는 이가 많지는 않다. 늘 사직서를 품고 다닌다는 직장인의 농담이 얼마나 불행인가.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어쩔 수 없이 견뎌야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그 외의 남은 시간은 늘 보상처럼 쓰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많은 시간이 주어져도 부족한 이유다.

나는 인생의 한 시기를 내 시간이 전혀 없이 통과했다. 세 아이를 출산하고 기르며 가장 힘들었던 건 도무지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환경이었다. 먹고, 씻고, 자는 것마저 아이의 상황에 따라 결정되던 시간. 그 긴 결핍의 시간을 겪는 동안 내 시간을 타인이 가져가는 것에 점점 예민해졌다.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 머뭇거리다가 흘려보낸 시간, 막연한 도리를 하느라 소진되는 시간, 원하지 않았는데 반사적으로 소비되는 시간, 타인의 기대에 자동으로 반응하며 흘려보내는 시간 같은 것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아무리 경계를 해도 밥을 차리고, 메시지에 답하고, 자꾸 끼어드는 잡음을 처리하다 보면 하루는 금세 사라졌다. 어떻게든 시간을 확보하고 싶어서 새벽에 일어나고, 아이를 재운 밤에 다시 컴퓨터를 켜고, 관계에 무심해지기도 했다. 자유로운 삶은 이런 사소하고 반복되는 일들을 벗어나야 도달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많은 책임으로부터 벗어나 진짜 나만을 위한 시간이 오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애를 써도 그런 순간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이 지루하고 반복되는 일상은 내 선택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생각은 창업을 하고, 하루의 대부분을 일에 쓰던 가장 바쁜 시기에 찾아왔다. 내가 좋아하는 일,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여기는 일을 신나게 해내고 있던 순간, 내가 그토록 사소하고 하찮게 여겼던 일상의 시간을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었다는 걸 인지했다.


일찍 일어나 가벼운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시간,

후다닥 정리를 하고 나갔다가 돌아왔을 때 보이는 정돈된 집,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고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하는 시간,

간간히 서늘한 밤 이웃 언니들과 나누는 담소 같은 것들.


아침에 몸을 깨우는 행위, 공간을 정돈하는 행위, 누군가의 말을 들으며 시간을 내어주는 순간들이 ‘억울한 시간’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삶의 리듬’이라는 가능성. 한때는 더 나은 삶으로 가는 길목을 막는 장애물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이 또한 내가 선택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나는 일상을 미화하고 싶은 건 아니다. ‘이 시간만 아니면 내 삶이 나아질 텐데’라고 생각하며 밀어내던 시간 중 일부가, 사실은 내가 스스로 붙잡고 있던 시간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 그걸 깨닫게 되면 시간이 없다는 불평 대신 나는 지금 무엇에 시간을 쓰고 있는가라는 점검이 가능해진다.


“내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가.”

“나는 그것을 위해 어떻게 시간을 쓰고 있는가.”


자유는 시간을 많이 확보한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자기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진다. 결국 시간을 버는 기술이란, 시간을 절약하는 법이 아니라 시간의 주도권을 다시 내 쪽으로 되돌려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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