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고요하게 만드는 사람들
자유를 이야기할 때, 관계를 빼놓을 수는 없다. 우리는 대부분 관계 때문에 흔들리고, 관계로 인해 지치고, 결국 관계 때문에 불행해진다. 그렇다고 혈혈단신으로 혼자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간은 관계 안에서 비로소 존재하기 때문이다. 관계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건 자유가 아니라 고립이다. 그렇기에 관계 안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지는 일이 진정한 자유라 할 수 있다.
나를 소란스럽게 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다. 하지만 스스로 소란스러워질 때가 더 많았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기대에 부응하려고, 도리를 다하려고 애쓰다 보면 내 마음은 늘 조용하지 못했다. 예전의 나는 모든 관계에 응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락이 오면 답해야 하고, 부탁이 오면 거절하지 말아야 하고, 불편해도 자리를 지켜야 예의라고 여겼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고 나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는데 지쳐 있었다. 극단적으로 이런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상대는 영문도 모른 채 손절을 당하기도 했다. 그 순간에도 내 마음은 소란스러웠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은 편하지 않았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조금은 나답게 살게 된 뒤로 이제는 사람들과 ‘적당히 잘 지내는 편’을 선택한다. 굳이 만나거나 연락하지 않아도 마주치면 반갑게 웃으며 인사할 수 있도록. 그게 내 에너지를 덜 쓰는 방식이다.
주변에서 보기엔 그리 평범한 삶은 아닐 것이다. 가난이 뭐 자랑이라고 책을 쓰고, 애 셋이 무슨 훈장이라고 강의를 한다. 자본금도 얼마 되지 않는 회사를 열고 대표라 불린다. 그러다 보니 시시때때로 사람들의 안줏거리가 된다. 믿고 따르던 이에게 뒤통수를 맞기도 하고, 뒤에서 험한 말도 듣는다. 물론 신경이 쓰인다. 사람인데 어떻게 안 그렇겠나. 순간순간 감정이 치솟아서 부르르 떨 때도 있지만, 그 감정을 오래 품지는 않는다. 내 삶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순둥이거나 호락호락한 사람도 아니다. 대신 그 에너지를 다른 쪽으로 돌린다. 그가 더 배 아플 만큼 잘살아보는 쪽으로, 나를 욕한 사람이 머쓱해질 만큼 단단해지는 방향으로. 어쩌면 내가 뼛속까지 효율적인 사람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감정에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까워서.
그래서 나는 싸우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반응도 하지 않는다. 착해서가 아니라, 자유로워지고 싶어서다. 그게 나를 고요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 이어서다.
누구에게나 기본적인 친절은 베풀지만, 아무에게나 마음을 쓰진 않는다. 그 대신 내가 마음을 연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헤프고, 바보처럼 보여도 괜찮다. 내 안의 평온을 지켜주는 관계는 많지 않지만 몇 사람만으로도 충분하다. 서로의 속도를 재촉하지 않고, 함께 있어도 나 자신으로 머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과 보낸 시간은 아무리 길어도 지치지 않는다. 오히려 풍요로워지는 느낌이다. 그런 이들에게 내 시간을 기꺼이 나눈다. 나를 고요하게 만드는 사람. 그게 결국 나를 자유롭게 하는 사람이다.
관계의 자유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법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싫은 사람에게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소란은 피할 수 없지만, 고요는 선택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선택의 순간마다, 나는 조금 더 자유로워진다. 누구와 있든, 어떤 말을 듣든, 내가 내 시간을 어떻게 쓸지 결정할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나는 진짜 자유를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