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우리가 자유롭지 못한 가장 큰 이유, 자유로운 삶을 가로막는 가장 현실적인 장벽은 대개 ‘돈’이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말하는 속뜻은 결국 돈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열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이 많으면 정말 자유로울까?
통장 잔고가 억 단위로 쌓이면, 혹은 안정적인 월급이 보장되면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을까?
소득이 증가할수록 행복감이 커진다는 연구도 있지만, 행복과 자유는 동일한 개념이 아니다. 행복은 만족감의 문제라면, 자유는 시간에 대한 통제권의 문제다. 하버드의 ‘Good Life Study’에서는 고소득층일수록 오히려 시간 부족(time famine)을 호소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소득은 늘었지만, 시간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생긴다.
결국 사람들이 진짜 갈망하는 자유는 경제적 자유가 아닌 시간의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 자유는 반드시 거대한 자산을 볼모로 삼지 않는다. 최소한의 경제력과 선택만으로도 충분히 누릴 수 있음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자유를 꿈꿨다. 부모의 기대와 사회의 기준 속에서 살면서 돈이 많아지면 그 모든 구속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해방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억압은 돈으로 해소되는 것이 아니라 태도에 달렸다는 걸 나는 비교적 일찍 깨달았다. 지금도 자유를 꿈꾸냐 묻는다면, 아니다. 나는 이미 자유롭다. 부모로부터의 독립도, 집안일과 돌봄으로부터의 해방도. 물론 돈이 있으면 쉬이 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큰돈을 만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자유를 얻었다. 왜일까.
내 삶의 전환점들은, 그러니까 자유와 가까워지는 길은 언제나 돈이 많을 때가 아니라 최소 비용으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했을 때 비로소 보였다.
평범한 아파트를 정리하고 하수처리장 사택, 곰팡이가 피던 전원주택, 반지하 작은 집에서 살았다. 누군가는 실패라고 단정 지을 공간. 그 안에서 나는 불편했지만 자유로웠다. 덕분에 실거주와 투자를 분리하는 아이디어를 갖게 되면서 최소한의 경제력을 확보했다. 더는 남들에게 어떻게 보일까를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소비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의 월급이 반토막이 되어 월 200만 원으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했을 때, 처음엔 덜 쓰면 덜 행복할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200만 원이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필요한 건 큰 수입이 아니라, ‘이 정도면 된다’는 최소 기준이었다.
인도에서의 한 달은 그 확신을 굳혔다. 최소한의 돈과 배낭이 전부였지만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우리는 충만했다. 안전과 자유는 돈과 정비례하지 않았다. 창업 역시 마찬가지다. 경력 하나 없이 작은 지원사업으로 시작한 일이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지금의 길을 열어주었다. 거창한 자본이 아니라, 나다운 삶을 기록하고 설득하는 실험에서 자유는 열렸다.
집이 작아도 자유로웠고, 돈이 적어도 관계와 시간은 풍요로웠다. 나는 생활비가 적든, 많든 맞춰서 살 수 있는 소비 탄력성을 갖게 되었고, 아주 사소한 것에도 만족하고 감사할 줄 아는 미덕을 배웠다. 이 경험들이 내게 알려준 건 분명하다.
자유는 부족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지금 가진 것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에서 비롯된다.
자유는 통장 잔고가 아닌, 내가 매일 내리는 선택으로부터 시작한다.
누군가의 거대한 성공담이 아니라, 작지만 나에게 맞는 안전망이 있을 때 비로소 자유는 유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