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아[시즌1] PART III. 에필로그

― 선택할 수 있다는 감각에 대하여

by 밀리폭

(2026년, 현미리의 기록 중에서)


나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설득하며 살아왔다.


돈이 전부는 아니라고,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가치가 먼저라고.


그 말들은
완전히 거짓도 아니었고,
완전히 진실도 아니었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성장 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주인공,
고동만의 대사가
오랫동안 내 안에 남아 있다.


“돈이 있어야 꿈도 꾸고 마음도 쓰는 거잖아요.
나요, 우리 엄마 집도 사주고 싶고요.
우리 아빠 똥차도 바꿔주고 싶어요.
그게 다 내 마음인데 그게 다 돈이잖아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다들 거짓말하면서
사실 이 마음들이 다 돈이었잖아요!”


이 말은
어떤 정치 구호보다 정확했다.


꿈을 꿀 수 있는 능력,
누군가를 돌보고 싶다는 마음,
부모의 삶을 바꾸고 싶다는 의지.


이 모든 것은
돈이 없으면
생각으로만 남는다.


돈은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이 현실로 이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우리는 자주
의지와 노력, 선택을 말한다.


그러나
실패해도 다시 시도할 수 있다는 여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의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
지금 침묵해도 내일 말할 수 있다는 감각은

결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조건의 문제다.


돈이 많고,
돈을 원하는 대로 쓸 수 있고,
생필품을 잘 고르느라
하루의 대부분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런 부자는
정말로 더 주체적인가.


대답은
조건부로 그렇다.


돈은
선택의 범위를 넓히고,
실패의 비용을 낮춘다.


주체성이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보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되느냐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
지금 실패해도 괜찮은 결정,
지금 설명하지 않아도
내일 설명할 수 있는 여지.


이 여백이
곧 주체성이다.


나는 이 여백을
누구나

조금은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늘 이렇게 말해왔다.


조금만 더 버티라고,

노력하면 된다고,

마음가짐의 문제라고.


그 말들이

얼마나 폭력적이었는지

우리는 그 말을 서로에게 반복하며

자신의 영혼을

조금씩 닳게 하고 있었다.


나는 오랫동안
세상의 문제들은

천천히, 하나씩 풀어야 한다고

믿어왔다.


세상을 한 번에 바꾸는

해답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러나 이제는
하나의,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스템이
이 구조 전체를
다르게 보이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

빠져나갈 수 없는 책임이 아니라

빠져나가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우리는 왜

한 번도

제대로 상상하지 않았는지.


이 확신은
결론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그래서 이후의 이야기는,

허미래가 증언한

한국의 기본소득 시스템에 대한

구제적인 기록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