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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우리 Dec 10. 2019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회사를 다녀 본 사람들은 ‘내가 이 회사를 언제까지 다녀야 하나?’라는 회의가 들 때가 있다.  입사 초기에는 회사 사정을 잘 모르기에 이런 생각을 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있다.  필자의 개인적 경험으로는 입사 3개월, 입사 1년, 입사 3년이 고비다.  


 일반적으로 3개월까지 수습을 적용하기에 노사 모두 서로에 대해 평가하는 시기이다.  노동자는 적응하기 위해서 한눈을 팔 짬이 없다.  수습이 끝나고 시간이 지나면서 일하는 데 어려움이나 주변 사람들과 마찰이 생긴다.  그러나 일단 퇴직금은 받아야 하고, 1년 미만의 경력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조금 더 버텨본다.  이렇게 3년 정도 일하다 보면 맡은 일도 익숙해지고, 동료와 정이 든다.  이쯤에 드는 생각은 이 회사가 언제까지 나를 고용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회사에 머무르는 것보다 전직하는 것이 더 큰 경제적 가치를 얻을 수 있다고 판단되면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앨버트 허시먼(Albert O. Hirschman)은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는 저서에서 조직에 불만이 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카드로 회사에 등을 돌리는 ‘이탈(exit)’과 내부에 남아서  ‘항의(voice)’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한다.  회사에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는 회사의 미래 전망, 구성원의 의지 등뿐만 아니라 개별 노동자의 처해진 위치 및 성향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오랫동안 근무하고, 회사에서 입지가 탄탄하고, 심지가 굳은 노동자는 남아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러나 이와 반대의 경우 또는 회사 내부보다 외부 시장에서 인정 가능성이 높은 경우에는 미련 없이 회사를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떠날 때나 남을 때에는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떠나는 자는 말없이)

    사연 없는 무덤이 없듯이 사연 없는 퇴사자도 없다.  아무리 하고 싶은 말이 많더라도 남아있는 사람들의 사정도 생각해야 한다.  퇴사할 때 다른 노동자에게 회사에 대한 온갖 불만 불평을 쏟아 놓는 경우가 있다.  본인 속은 시원할지 몰라도 어쩔 수 없이 남아서 감당해야 하는 노동자의 마음은 편치 않다.  떠날 때 하고 싶은 말은 사용자에게 직접 말하고, 남아있는 동료에게 응원은 못할 망정 불씨를 남기지 말자. 


    (남은 자는 믿음으로)  

    고민 끝에 회사에 남아서 항의하기로 결정하였다면 노사 간 기본적인 신뢰관계는 유지해야 한다.  어떤 노동자는 재직 중에 회사에 대한 고소 고발을 남발하기도 하고, 또 다른 노동자는 “내게 불이익을 주면 회사 문을 닫게 하겠다”며 대 놓고 선전포고를 하는 경우도 목격했다.  “이쯤 되면 막가는 거죠?”라는 표현이 생각나는 상황이다.  남아서 항의를 하는 목적은 상생하기 위함이다.  수단이 지나치면 목적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  논쟁을 하더라도 기본적인 마지노선은 지켜야 한다.  노동위원회에서 해고를 인정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 있다. 

    노사 간 신뢰관계가 파탄에 이르러 더 이상 고용관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이탈할 것인지 항의할 것인지는 노동자가 선택하는 것이지만, 노동자에게 선택권이 없는 경우가 있다.  사용자로부터 해고를 당한 경우이다.  필자의 사무실이 노동위원회 건물 내에 위치해 있어서 해고 사건을 접하는 기회가 자주 있다.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노동위원회에 구제를 신청하는 취지는 ‘원직 복직과 임금 상당액 지급’ 크게 두 가지다.  노동자의 주장이 인정되면 원직 복직과 해고기간 동안의 임금상당액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사용자가 이기면 해고로 끝나게 되는 것이다.  사건이 진행되는 도중에 또는 노동위원회 심문회의에서 화해를 제안받기도 한다.  


화해란 노동자가 복직을 하지 않는 대신 금전적인 보상으로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반드시 화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화해할지 여부를 노동자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의사 결정 시 금액 수준도 중요하지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복직인지 금전적 보상인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복직은 회사에 남는 것을 의미하며, 금전 보상은 떠나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혼동하면 나중에 후회하는 결정을 할 수도 있다. 


    (case 1) 화해 후 후회 

    J는 인사 서류를 위조했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했다.  사실관계에 대해 상호 간 이견은 없었다.  다만, 노동자는 행위에 비해 징계 양정이 과도하다는 점을 주장하였다.  필자는 J의 대리를 맡았다.  해당 기업의 규모가 작아 복직 후 근무하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노동자는 스트레스로 인해 복직을 원하지도 않은 상황이었다.  이에 필자는 당사자에게 화해를 권유하였고, 노동위원회에서 비교적 높은 금액에 화해하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화해한 다음 주에 J에게 다음과 같은 전화가 걸려왔다.

    “그때 화해를 하지 않고 판정을 받을 걸 그랬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가 원한 것은 금전적 보상이 아니라, 사용자가 부당한 조치를 했다는 것을 국가기관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case 2) 화해 거부 후 만족

    F는 동료 노동자와 다투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이미 지방노동위원회서에서 기각 처분이 내려져 F에서 불리한 상황이었다.  필자는 중앙노동위원회 재심사건을 대리하였다.  노동위원회는 예상대로 화해를 권유하였고, F는 타협 없이 끝까지 밀어붙였다.  결과는 노동자의 주장이 기각당했다.  나중에 F에게 화해하지 않는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자.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원한 것은 해고의 당시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이고, 위원회에서 하고 싶은 말은 모두 다 하였기에 이것으로 충분하다.” 

 위 두 사건 모두 조직에서 이탈하기로 결심하였으나, 금전적 보상보다 ‘인정’이나 ‘항의’에 무게를 둔 예외적인 사건이었다.  조직에 문제가 생겼을 때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에 대해 신중히 결정하고, 이에 걸맞은 행동(이탈, 항의)을 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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